[박종성의 한국 계파정치⑬] 재야·진보 제도권 편입···김대중·김종필·박태준 DJP정권 탄생
[아시아엔=박종성 서원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제도권의 정치적 손익은 주요 정당 간, 계파 간 이해관계와 게임의 법칙에 따라 치밀하게 추산된다. 그들이 반드시 게임의 법칙을 준수하느냐는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각 정당들과 정당내 계파의 정치적 예상실익추정은 자파의 패배가 곧 다른 계파나 제3계파의 반대급부가 될 것이란 판단 아래 진행된다. 이는 바로 게임의 진행과 맥을 같이 한다.
권력지분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계파의 노력은 실물경제 현장에서 오너가 자신의 재산을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자세와 같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각 계파의 정치적 행동방향이나 정책수립은 자기 소속의 실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명분을 발견해 나가면서 구체화된다. 따라서 이들의 정치적 행동은 가능한 한 위험부담이 적은 대안을 통해 궁리될 수밖에 없다. 정당과 계파의 정치적 행동우선순위는 여기서 나오는 셈이다.
15대 총선 후만 해도 신한국당은 계파 간 이해를 조절하며 지속적인 집권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새정치국민회의 역시 정치적 도덕성과 민주적 정치윤리를 명분으로 강한 대여투쟁을 전개해 나간다. 자민련과 민주당은 상대적 열세 속에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운신 폭과 정책적 설득기반을 넓혀 나가려 애쓰고 있었다. 수권(授權)을 향한 이 같은 몸부림은 그러나 단지 잠정적 수준에서만 의미를 지닐 뿐, 한국 정당구조의 근본이나 체계적 개선을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각 당의 당면과제가 아무리 긴박했어도 재야와 진보를 제도정치권이 어떻게 흡수할 것인지는 변함없이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제도권 정당들이 그들을 온전히 흡수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나 이는 유권자들의 정치의식수준을 감안할 때 무시할 수 없었다. 만일 재야·진보에 대한 제도권 정당들의 ‘거리두기’가 계속될 경우, 그래서 그들의 정치적 잠재력을 제도적으로 흡수하는 데 끝내 실패할 경우 그 책임은 제도권 스스로 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14대 총선에서 단 한 석도 확보하지 못한 채 밀려난 민중당이나 ‘전국연합·전노협·전농’ 등 주요 재야세력들 간에는 이념과 노선이 다르거나 이상적 정책대안을 표방하는 비 정치영역들 또한 엄존했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외면하면 안 되었던 건 등장배경 때문이다. 즉 재야·진보란 기존의 강제적 양당구조나 과거 보수야당이 범한 오류와 그에 대한 정치적 환멸의 반사작용으로 전면에 부각한 집단적 반대세력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건전한 민주적 중간계층이 있어 오래도록 정치적 통제나 감시가 원활했다거나 그들이 제도정당과 그 외곽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었다면 문제는 물론 달랐을 것이다. 정치변동의 담지주체로 중간계층은 이 같은 정치통제에 인색했다. 정치적 중간계층은 줄곧 표로 말해 왔고 자신이 선택한 엘리트의 변절에 관해 집단적 항의나 리콜 등 비토를 실천하지 않는다. 재야에 대한 정치적 지지 역시 냉담했다. 민중당 침몰이 좋은 예다.
재야와 진보의 합법화는 한국정치의 아킬레스 건(腱)이다. 여야가 합의할 수 없다면 제도 권력의 정치력에 의존해서라도 성사시키지 않으면 안 될 문제가 이것이다. 재야와 진보의 제도권 흡수는 기존 정당들이 제 역할을 다할 때 가능한 문제다. 재야의 제도화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무엇보다 기존 보수정당구도에 자극을 가하고 이념적 균형과 양당 경쟁구조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폭이 확산된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는 물론 자기의 위상 약화와 자칫 미래의 정당 과잉이나 정치적 혼미가 예상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과 조직, 사람과 계파까지 거머쥐고 정치적 탐욕마저 버리지 않는 오늘의 정당정치현실에서 이같은 당위론이 어느 정도 실현될 지는 미지수다. 정당에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집권층의 결단과 정치력 발휘는 가능할까? 이같은 물음은 계속 제기될 것이다. 하지만 제도권의 정치력 발휘나 국민들의 선택여부와 관계없이 재야와 진보는 스스로 제도권 진입과 정치세력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게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재야의 보수 이미지는 NGO활동을 통해 급부상한 시민운동세력의 약진과 맞물렸던 게 지난 세기말 상황이다.
문제는 간단치 않았다. 그것은 재야와 진보가 대중적 합법성이나 제도적 정치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 보다 더 중요한 문제였다. 게다가 그들 역시 해방 후 제도정치권이 보인 계파화 경향을 갖는지 여부와 직결된다. 그들도 이념과 정세변화에 따라 이합 집산한 제도권의 ‘무리짓기’를 답습했는가, 그렇지 않았는가? 그들도 만약 계파화 경향을 보인다면 이들을 유인한 요소는 질적으로 같은가, 다른가? 예외적 요소를 지닌다면 그건 뭘까? 그들 역시 대권 도전을 향한 제도권의 이익집약과 강한 친화력을 보인다면 그 또한 계속되는 정치적 좌절은 뭘 뜻할까?
이같은 의문들은 정치적으로 맞물린다. 제도권이 그들의 접근을 용납하지 않으려고 적극 제지한 적은 물론 없다. 제도권 때문에 그들이 정치적으로 실패와 좌절을 반복한 것도 아니다. 또 제도권이 적극 흡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의 재야와 진보가 분열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제도정치권은 그들을 자신과 같은 조건 속에서 경쟁하는 정치집단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간헐적으로 ‘경청할 가치 있는’ 어느 한 세력 정도로 홀대받아 왔고 유권자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그들을 제도정치권과 유권자 사이의 ‘머무는 존재’로 고립시킨다. 바로 이 같은 어설픈 상황이 그들로 하여금 제도권의 어느 진영을 자기 동조세력으로 이용할 것인지 고민하게 했고 그들마저 불가피한 계파화 경향으로 치닫게 만든 직?간접 배경이 된다.
탈권위주의적 민주화 추진과 제도정치권의 계파표류, 권력교체기마다 극심하게 요동치는 정당구조의 기형성, 제도정치권의 무관심과 유권자들의 지속적 거부, 그 속에서 암중 도전하는 재야와 진보의 또 다른 무리짓기 그리고 대권을 향한 치열한 권력경쟁에서 가열되는 정치권의 또 다른 흔들림 및 그 가운데 열병 같은 한국사회의 과잉 정치화 경향과 시민들의 정치변화욕구는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계파정치의 역사적 맥은 어떤 줄기로 이루어졌을까? 인물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파 역시 내다버릴 수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정치를 지배하는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이들에게 모여들고 등 돌린 이들의 정치적 행각은 또 무엇이었을까? 이런 물음들에 하나하나 답하자면 계파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라졌는지 그 기원과 현주소부터 살펴보는 게 순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