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의 한국 계파정치 27] 전두환에 무너진 80년 ‘1차 양김시대’
[아시아엔=박종성 서원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신민당의 세력판도는 양김이 가르고 있었다. 주변에는 ‘이철승·김재광·이기택·신도환’ 등이 포진하고 있었다. 왜 이들이 신민당이란 급조 야당에 일시적으로 대거 집결했는지는 전혀 의문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들은 각자 양김에 대한 개인적 존경보다 달라진 정국과 다가올 대권 도전기회를 이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6공 말기, 이철승과 신도환을 뺀 두 인물이 각기 어떻게 계파를 갈아타는지만 보더라도 이 점은 잘 확인된다. 김재광의 친 김영삼적 행태나 이기택의 친 김대중적 행태를 헤아릴 때 문제의 이해는 그리 어렵지 않다.
각 계파의 중간보스들이나 힘없는 멤버들은 대부분 유리한 때가 오길 기대하고 있었다. 때가 오면 미련 없이 둥지를 떠나 새 보스에게 형식적 충성이나마 맹세하려 했던 것이다. 이같은 행태는 세기말까지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세기가 바뀐다 한들 이는 마치 변해선 안 될 정치문화의 상수(常數)처럼 튼튼한 뿌리를 자랑한다.
당시 양김 휘하에 포함되지 않았던 유동세력은 어떻게든 어느 한 사람과 인연을 맺으려 애쓴다. 정치적으로 인연이 닿을 경우 자신의 과거를 세탁하려 혼신의 힘을 쏟았던 건 당연했다. 그같은 상황 속에서 80년의 정치계파는 재구성된다. 특히 13대 대선을 향한 권력 재편기 동안 계파간 이합집산은 다시 극심해진다. 이것이 곧 신민당 해체와 양김이 이끄는 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의 복수야당 탄생을 유도했고 여소야대를 만든 직접적 요인이 된다.
당시 양김은 기왕의 확실한 충성파들과 믿을만한 중간보스를 축으로 삼아 그 원심력을 최대한 활용해 중간계보의 흡인작업을 계속한다. 12대 국회 개원을 전후하여 김대중에게는 ‘김상현·조연하·박종률·김록영’ 등 4인 측근들 외에 신민당에서 ‘송원영·이택돈·유제연·조순형·송천영·신기하·신순범·이영권·강삼재·박왕식·김현수·허경만·임춘원·한석봉·김용오·최훈’ 등이 추종세력으로 모여든다. 또 민한당과 기타 정당에서 ‘이중재·이용희·김성식·고재청·이진연·유준상·김봉욱·임종기·이재근·송현섭·김봉호·김득수·유갑종’ 등이 접근을 시도한다. 뒷날 이들 대부분은 김대중이 이끄는 평민당으로 옮긴다.
한편 김영삼은 좀처럼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김동영·최형우·문부식 등 측근을 옆에 두고 세를 몰아간다. 평소 그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인물들로는 보좌관·비서관 출신의 ‘서석재·김봉조·문정수·김형경·유성환·정재원’ 등이 있었고 윗세대들로 ‘박해충·박용만·박한상·황낙주·박일·김현규·유한열·김동욱·황병우’ 등이 원내 동조세력이 된다. 과거 다른 당에 있었거나 원내에 진출하여 계보에 흡수된 사람들은 ‘박찬종·권오태·조홍래·김동규·홍사덕·목요상·윤영정·조영수·정상구·신재휴·최운지·김정길·서종열·김완태·조영봉’ 등이었고 ‘이건일·명화섭·심완구·조종익·김태룡·김동주’ 등 구 신민당 시절 원외 측근들도 다시 주변에 두기 시작한다. 또 김덕룡과 ‘민추협’의 ‘김명윤·홍영기·황명수’ 등을 기용, 주변을 보강한다. 이들 역시 신민당 해체 후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김영삼이 이끄는 통일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다.
다른 한편, 당대의 여권 계파는 어떻게 균열되어 있었을까. 1981년 1월15일 창당한 ‘민주정의당’이 ‘민주자유당’으로 변신하기까지 전두환은 어떤 계파와 인맥구조로 당을 유지하는가? 민정당 태동과 명맥의 유지를 살피려면 세 가지 시간대의 전후맥락에 유념해야 한다. 그 주요 축은 1)창당이후 11·12대 총선까지 2)12·13대 총선까지 그리고 3)1990년 1월 민주자유당 결성까지로 나뉜다. 이 시간대를 가로지르는 힘은 ‘하나회’와 유신세력의 민간 잔여파벌, 그리고 구 야권 영입세력 등 세 꼭지를 정점으로 한다. 그러나 권력 상층부의 지각변동은 전두환의 그것에 훨씬 못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