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 문화

    장사영웅루만금(長使英雄淚滿襟)…별보다 먼저 진 십자가의 기수들

    AI 생성 이미지 얼마 전 의사수필가협회에서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한국전쟁과 월남전에 참전한 박경석 장군님의 강연이 있었다. 강연 중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기수가 330명이었는데, 전선에 처음 나간 날 86명이 전사했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 나와 두 명의 의사는 그 노병의 베트남전 참전을 기리며 ‘맹호들은 간다’를 불렀다. 나는 그 숫자를 제대로 가늠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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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에라스무스 ‘우신예찬’과 김지하 ‘오적’, 시대를 넘어 권력을 비춘 풍자의 힘

    AI 생성 이미지 어제(7월 12일)은 에라스무스(Erasmus, 1466?~1536)가 세상을 떠난 지 490년이 되는 날이다. 며칠 전 그의 <우신예찬>을 다시 읽었다. 학생 시절에는 그 기지와 유머에 감탄했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 웃음 속에 숨은 깊은 성찰이 더욱 마음에 와닿았다. 문득 반세기 전 고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유신 시대에 시인 김지하의 ‘오적’을 읽으며 받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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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에라스무스와 원효가 만난 지점…”논쟁에도 품격이 있다”

    에라스무스와 원효는 서로 만난 적도 없고, 같은 신앙과 철학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한 사람은 르네상스 유럽의 기독교 인문주의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통일신라의 불교사상가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한 가지에서 깊이 만난다. 상대를 이겨 침묵시키기보다 대화를 통해 더 넓은 진실을 찾으려 했다는 점이다. 490년이 지난 오늘, 나는 다시 에라스무스를 떠올린다. 그리고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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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혀끝의 온기…”사람의 말에는 살아온 세월이 담겨 있다”

    얼마 전 ‘혀끝의 경계, 언어는 어떻게 칼이 되었나’라는 글을 썼다. 관동대지진 당시 발음 하나로 사람을 가려내고, 그 혀끝의 몇 음절이 생사를 갈랐던 역사를 돌아보며, 언어는 사람을 나누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적었다. 며칠 뒤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보낸 이는 나보다 여섯 살 위이신 전라도 출신의 은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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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두암교회 피안교를 건너 만난 순교자 23명의 미소

    멀리 순교기념탑이 보인다 <사진 황건> 정읍의 두암교회를 찾아갔다. 꽤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니 노란 금계국이 가득 핀 꽃밭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꽃밭 사이로 돌길 하나가 곧게 뻗어 있었고, 길 끝에는 철제 십자가가 서 있었다. 십자가의 밑동은 둥근 몽돌들이 감싸고 있었다. 그 뒤로 순교기념탑이, 다시 그 뒤로는 순교자들의 합장묘가 자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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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고창 덕암교회 ‘녹슨 종’이 들려준 가장 ‘맑은 소리’

    덕암교회 순교기념비와 녹슨 종 <사진 황건> 집에서 새벽같이 출발했지만 전북 고창의 덕암교회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가 다 되어서였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달리다 큰길에서 좁은 농로로 접어드는 길목에 ‘순교의 터 위에 선 교회, 덕암교회’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표지판을 지나 밭길을 따라가니 한적한 들판 너머로 작은 첨탑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교회 근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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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

    지장전의 스승…강단을 떠나도 가르침은 끝나지 않았다

    백상호 교수 <사진 황건> 7월 6일 서울 봉은사 지장전에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백상호 교수님의 49재가 봉행되었다. 나도 휴가를 내고 그 자리에 함께했다. 에어컨도 없는 작은 법당이었다. 의자 대신 방석 위에 앉아 한 시간 반 동안 독경을 들었다. 여름 더위에 다리는 저리고 등에 땀이 흘렀지만, 누구도 그 불편함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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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만경교회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서…’죽창’, 잊지 않는 것이 기억이다

    만경교회 ‘기다리는 사람들’ <사진 황건> 김제 만경중학교를 지나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니 작은 교회가 나타났다. 그 옆에는 마치 하얀 미술관을 닮은 건물이 서 있었다. 예전에는 주차장으로 사용하던 공간을 개조한 듯했다. 좁은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자 작은 광장이 펼쳐졌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흰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 남녀의 석고상이었다. 배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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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혀끝의 경계, 언어는 어떻게 칼이 되었나

    시대는 달라져도 우리는 여전히 사람의 말에서 출신을 짐작하고, 억양에서 정체성을 읽으려 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언어 표지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를 넘어 사람을 재단하는 잣대가 되는 순간, 역사는 다시 위험해진다. 문명은 서로 다른 말을 알아듣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야만은 서로 다른 말을 심판하는 순간, 시작된다. 혀는 사람을 나누기 위해 존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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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예일대에 남은 아흔아홉 의사의 농담…역사에는 가정법이 없지만 기억에는 남는다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99세 박소회 선생이 미국의 예일대 학생들에게 강연 후 찍은 사진 며칠 전 아흔아홉 살의 선배 의사 박소회 선생님에게서 사진 한 장과 짧은 편지가 도착했다. 사진은 예일대학교에서 한국전쟁을 주제로 강연을 마친 뒤 학생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었다.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의사가 미국의 젊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 자리였다. 편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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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아흔다섯 어머니에게 배운 존엄의 의미…”내 머리가 왜 이렇게 짧아졌니?”

    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 투표소에서 필자 황건 교수의 모친 김경선 여사 며칠 전, 만 아흔다섯 살의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사전투표를 하러 갔다. 어머니는 이제 혼자 걸을 수 없다. 화장실에 가실 때도 보호사의 부축을 받아야 한다. 기억력도 많이 떨어지셨다. 하지만 투표만큼은 꼭 하셔야 한다고 생각하셨는지, 투표소에 들어가실 때만큼은 표정이 무척 진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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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배재고 응원 논란을 보며 50년 전 ‘우리의 함성’을 떠올리다

    나는 1973년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04년 설립된 우리 학교는 당시 농구·야구·아이스하키의 강호였다. 학교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오전 수업만 마치고 장충체육관 농구장, 서울운동장 야구장, 동대문 아이스링크로 달려가 응원했다. 체육시간에 응원 연습을 하는 일도 흔했다. 그 시절 농구는 휘문, 용산, 경복이 우승을 다투었다. 휘문은 ‘신동파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1973년 어느 날, 휘문과 경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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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화의 무게’…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책임을 묵묵히 감당하며 걸어온 삶의 궤적이다

    개미고개 기념비 <사진 황건> 얼마 전 개미고개를 찾았다. 이곳에는 “The Splendor of Peace and Freedom”이라는 문구와 함께 미 제21보병연대의 전적을 새긴 기념탑이 서 있다. 1950년 7월 천안전투 이후, 리처드 스테펜스 대령이 이 낮은 능선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닷새 동안 지연시켰던 곳이다. 그러나 내 발길을 붙잡은 것은 기념탑보다도 작은 조형물이었다. 바위에 꽂힌 총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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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제2연평해전 24주년…”의무병이 있는 곳이 곧 의무실이었다”

    제2연평해전 박동혁 병장 어제는 6월 29일. 2002년 제2연평해전이 있었던 날이다. 얼마 전 찾은 서해수호관에서 나는 참수리 357호를 다시 만났다. 선체 측면에는 벌집처럼 총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사진으로는 여러 번 보았지만, 실제로 마주한 탄흔은 달랐다. 작은 경비정이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서 치열한 공격을 받았는지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오래 전에 보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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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잊지 말라”…삼전도 치욕 겪은 ‘남한산성 한남루’의 마지막 주련

    남한산성 한남루 <사진 황건> 보훈의 달이 끝나가는 6월의 어느 날, 남한산성을 찾았다. 여러 번 올랐던 성곽길이지만, 이날 내 발걸음을 붙잡은 곳은 성벽이 아니라 한남루(漢南樓)였다. 정조 22년(1798), 초대 광주유수 홍억(洪檍)이 한남루를 증축하면서 여덟 폭의 주련을 걸었다. 네 폭은 누각 앞기둥에, 네 폭은 안쪽 기둥에 남아 있었다. 한 구절 한 구절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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