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 나는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지냈다. 매주 일요일이면 세 아이와 함께 한 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포틀랜드 한국 순교자 성당(Portland Korean Martyrs Catholic Church)을 찾아 미사에 참석했다. 그 곳에서 아이들은 바바라(Barbara) 선생님이 이끄는 주일학교에서 교리를 배우며, 신앙과 함께 삶의 작은 가치를 하나씩 배워 나갔다. 당시 본당 사목은 대구대교구에서 파견된 김성한 신부님이 맡고 계셨다.
그해 성탄절, 아이들은 ‘뚜르망 왕자의 비밀’이라는 연극을 준비했다. 중세 유럽의 어느 왕국을 배경으로, 한 어린 왕자가 ‘하느님은 누구이며, 그리스도는 어떤 분인가’를 찾아 성을 떠나는 이야기였다. 왕자는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을 뒤로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 곁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길 위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다른 사람을 돕고, 삶을 다한 뒤에야 비로소 그가 찾던 존재를 만난다. 연극은 단순한 이야기였지만, 어린이의 눈으로 표현된 순수함과 헌신이 무대 위에 가득 차 있었다.
이 연극에서 어린 왕자를 연기한 아이가 바로 나의 큰아들, 당시 아홉 살이었다. 작은 몸의 아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성에서 쓰던 왕관 대신 누더기 차림으로 이렇게 외쳤다. “드디어… 드디어… 주님을 볼 수 있게 되다니!”
무대 뒤에서 나는 조용히 기도했다. “만약 이 아이를 의사로 부르신다면, 저 또한 이 아이가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되도록 돕겠습니다.”
그로부터 27년이 흘렀다. 그 애는 그리 총명하지는 못했지만, 느리더라도 자신의 길을 차근차근 찾아간 아이였다. 넘어지고 좌절하며 배우고, 묵묵히 자기 노력을 더하며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다. 지금 그는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과정을 마무리하며 내년 초 전문의 시험을 앞두고 있으며, 최근에는 같은 의사인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장인어른(영상의학과), 아내(산부인과)를 이어 3대째 의사 가문이 된 것도 그저 주어진 은총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나는 아버지로서, 한 사람의 의사로서, 조용히 아이를 세상이라는 무대로 여의어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날 성당 무대 위 작은 왕관과 무대 조명, 아이의 떨리는 목소리를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다시 기도한다. “사람 곁에 머무는 의사가 되어다오. 그것이 네가 찾던 길이라면, 끝까지 흔들리지 말아다오.”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아이의 길은 내가 상상한 것과 다를지라도, 그가 선택한 삶과 마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축복이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