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나는 만 아흔한 살의 노병과, 나와 동갑인 언론인 한 분과 함께 충북 영동의 한 펜션에서 2박 3일을 보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이었다. 나는 식재료를 준비해 가서 여섯 끼의 식사를 만들었고, 우리는 식탁과 산책길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병은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한 세대이다. 이후 직업군인의 길을 걸으며 우리 군의 발전을 지켜본 산증인이다.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기억은 또렷했고, 전우들과 군에 대한 애정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

그가 들려준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육군사관학교 15기 동기생인 이춘근 대위에 대한 회고였다. 1966년 베트남전 둑코(Duc Co) 전투 당시, 이춘근 대위는 맹호부대 3대대 9중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이임 하루 뒤 후임자도 결정돼 떠나야 했지만 중대원들의 만류로 진지에 하루 더 머물렀고, 그날 밤 월맹군 정규부대의 대규모 공격이 시작되었다. 적의 포격이 시작되자 먼저 뛰어나간 신임 중대장이 전사했고, 이춘근 대위는 다시 지휘권을 행사해야 했다.
그가 병사들에게 내린 첫 명령은 단순했다. “내가 지휘한다. 준비한 대로 싸워라.”
우리가 2박 3일을 함께 한 노병은 “그 한마디가 혼란스러운 전장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누가 지휘하는지 명확히 하고, 함께 구축한 진지와 훈련을 믿게 만든 것이다. 결국 적은 압도적인 병력을 투입하고도 실패했다.
전투 후에도 이춘근 대위는 화려한 영웅으로 남지 못했다. 그는 상관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고, 술자리에서도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노병은 웃으며 말했다. “그 친구 술 먹으면 실수를 해서 그런지 중령으로 전역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사기> 권109 「이장군열전」의 이광(李廣)을 떠올렸다.
이광은 한나라를 대표하는 명장이었지만 전공에 비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인물이다. 사마천은 그런 그를 기록하며 깊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전장에서의 능력과 조직 안에서의 성공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중국 고사에 나오는 조괄(趙括)은 병법에는 밝았으나 실제 전장에서는 대패한 인물로, 오늘날에도 ‘탁상공론의 장수’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춘근 대위를 떠올리며 생각난 인물은 조괄의 반대편에 있는 어떤 명장이 아니라 바로 이광이었다. 병사들의 신뢰를 받았고 실전에서는 강했지만, 자신을 드러내거나 처세하는 데에는 서툴렀던 사람 말이다.
2박 3일의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헤어지는 날, 노병은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아마도 내가 준비한 여섯 끼 식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6·25 때 학도병으로 나라를 지켜주셨잖아요. 사흘 동안 배운 것은 하나입니다. 원칙대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 말을 곱씹었다. 생각해 보면 이춘근 대위의 승리도 원칙의 승리였다. 철저한 준비와 훈련, 그리고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지휘가 전투를 이끌었다. 노병이 평생 강조해 온 것도 결국 같은 것이었다.
원칙을 지키는 군인. 그것이 참군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문득 참 군의관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으며, 자신의 양심과 직업적 기준을 지키는 사람. 화려한 말이나 직함보다 원칙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말이다.
영동에서 내가 배운 것은 전쟁사가 아니었다. 노병이 평생 지켜 온 삶의 태도였다. “원칙대로 행동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