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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동두천 미 제2사단은 떠났지만, 노래가 남았다
동두천 평화호국기념관에 갔다. 무엇을 특별히 찾아가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전시관을 둘러보다가 한쪽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미 제2보병사단, 이른바 Indianhead Division의 전시 코너였다. 미 제2사단은 동두천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었던 부대다. 이제는 대부분의 병력이 평택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학예사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2사단이 떠나면서 자신들이 사용하던 무기와 부대기, 훈장, 그리고 여러 역사 자료를 동두천에 기증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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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군인의 명예’…봉투 돌려보낸 지휘관, 세월 뒤 다시 빛난 훈장
이 기사는 황건 인하대의대 명예교수와 이상기 아시아엔 발행인이 지난 6월 6~8일 충북 영동의 한 펜션에서 민병돈 예비역 육군 중장을 공동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베트남전 당시 훈장 상신을 둘러싼 경험과 동료 장교에게 전해 들은 미국 은성훈장 일화를 통해 군인의 명예와 국가의 책임을 돌아본다. 당시 상황은 민 장군의 기억에 따른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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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워카, 워커, 군화…한 켤레에 담긴 군인들의 시간
워커커 군화를 우리는 워카라고도 불렀다. 적어도 내가 젊었을 때는 그랬다. 1976년 대학생 병영집체교육을 받을 때도 워카라고 했고, 1983년 군의관 훈련을 받을 때도 워카라고 했다. 군화라고 해도 알아들었지만, 워카라는 말에는 군대 냄새가 조금 더 났다. 누군가는 워커라고 했다. 두 말은 한동안 나란히 쓰였다. 남대문시장에 가서 군용 물품을 살 때도 그랬다. “워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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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혀끝의 경계…언어는 다리인가, 칼인가
혀끝의 몇 음절이 생사를 가르던 거리. 관동대지진 당시 발음으로 조선인을 가려내려 했던 폭력을 형상화한 AI 삽화.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일본 사회는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방화를 저지른다”는 유언비어가 삽시간에 퍼졌고, 자경단은 거리에서 사람들을 세워 신분을 확인했다. 그들이 사람을 가려내는 데 쓴 것은 발음이었다. 특정한 말을 따라 해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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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 ‘이방인’을 보고…슬픔을 판단하는 사람들, 이름 없이 남은 죽음
영화 이방인 포스터 오늘 아내와 멜리에스 빈티지 시네마에서 알베르 카뮈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이방인>을 보았다. 흑백 화면에 담긴 알제리의 한적한 해변이 아름다웠다. 영화관을 나와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자막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긴장해서 보았더니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남는 것은 달랐다. 나는 프랑스 문학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다. 오래전에 카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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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조종사와 외과의사의 ‘출격일지’와 ‘수술기록지’
출격일지는 조종사의 수술기록지이고, 수술기록지는 외과의의 출격일지다. 전쟁에서는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간다. 비행기도, 폭탄도, 총탄도, 피도 지나간다. 그 순간의 판단은 몇 초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나간 순간을 다시 들여다보고 적는 일은 다르다. 기록하는 동안 사람은 자신이 본 것을 다시 배열한다. 혼란스러운 현장을 하나의 구조로 바꾼다. 내가 연구했던 손정주 군의관의 수술기록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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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화원에서 빌린 백년…사진 속에서는 누구나 주연이다
이화원에서 전통복장과 금빛 호갑투로 꾸민 여성이 사진을 찍고 있다. 황실의 정원에서 잠시 옛 귀부인이 되어보는 순간이다. <사진 황건> 이화원에 갔다. 728m에 이르는 긴 회랑을 인파에 밀려 반쯤 걸었다. 273칸의 회랑에는 1만4천여 폭의 그림이 이어져 있었다. <서유기>의 이야기도 있고, 역사와 전설의 장면들도 있었다. 그림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었다. 문득 피렌체에서 바사리 회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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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왕부정거리에 울려퍼진 윤극영 ‘반달’…중국말 노래에 되살아난 어린 시절
왕부정거리에서 아코디언 반주에 맞춰 들려온 중국어 ‘반달’. 익숙한 선율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냈다. 글 속 장면을 재구성한 AI 삽화. 며칠 전 왕부정거리에서 한 시간 반쯤 머물렀다. 벤치에 앉아 있는데, 흰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옆에는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동료가 앉아 있었다. 마이크도 없었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다. 외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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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흔여섯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며…다시 떠올린 ‘노래당’
필자 황건 교수의 모친 김경선 여사 6년 전 이맘때, 어머니를 모시고 화성행궁에 간 적이 있다. 당시 어머니는 아흔이었다. 아내와 딸아이도 함께한 나들이였다. 봉수당에 차려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진찬상을 한참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음식의 모양과 높이까지 살펴보셨다. 한옥의 구조와 주련도 눈여겨보셨다. 나는 그곳에서 노래당(老來堂)을 보았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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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베이징 성요셉성당의 닫힌 문 앞에서…묵주기도는 이어졌다
그녀는 성당 문 앞에 서서 묵주를 손에 들고 기도하고 있었다. 다섯 단을 바치고 나면 성호를 그었다. 그리고 다시 사도신경으로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성호를 긋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았다. 그녀는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했다. 그저 서서 묵주를 돌리며 한 알 한 알 기도를 바쳤다. 그런데 오래 바라볼수록 그 평범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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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황건 칼럼] 팔달령에서 떠올린 몽염과 무산 스님…무엇을 위해 쌓았는가
만리장성 <사진 황건> 팔달령에 올랐다. 눈앞에 펼쳐진 만리장성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파르고 단단했다. 내가 걷고 있는 것은 진시황 때 몽염이 쌓았다는 장성이 아니다. 지금의 팔달령 장성은 명나라 때 축조된 것으로, 약 600년의 시간을 견뎌온 성벽이다. 그러나 산등성이를 따라 이어지는 성벽을 걷다 보니 이천여 년 전의 몽염이 떠올랐다. 몽염은 진시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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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6·25전쟁 중에도 고쳐 쓴 이승만의 육필…오늘의 대통령들, SNS 글은 얼마나 다듬는가
이승만 대통령 친필, 전쟁기념관 6·25전쟁실 2에 있다. <사진 황건> 전쟁기념관 6·25전쟁실 2에 갔다. 9·28 서울 수복 이후 북진을 독려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육필 원고가 전시되어 있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단정한 글씨였다. 세로로 가지런히 내려쓴 글씨 사이에는 고쳐 쓴 흔적도 보였다. 그런데 내 시선을 더 오래 붙잡은 것은 글씨가 아니라 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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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우의 시신 싣고 떠난 트럭…전쟁 끝나도 계속되는 ‘전우 찾기’
눈 덮인 전장에서 미 해병들이 전우의 시신을 트럭에 싣고 있다. 사진은 전쟁기념관 전시 자료 전쟁기념관에 갔다가 한 장의 사진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눈 덮인 전장. 미 해병들이 트럭에 전우의 시신을 싣고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부상자와 전사자의 대부분, 그리고 장비를 가지고 나왔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한 문장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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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서부전선 지뢰사고와 76년 전 김일성의 명령서…“도로 교차점에 지뢰를 묻으라”
전쟁기념관에 갔다. 아내는 다른 전시를 보러 가고, 나는 6·25전쟁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한 장의 종이 앞에 발길이 멈췄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절대비밀 제0070호. 1950년 10월 14일자 명령서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과 총정치국장 박헌영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전쟁이 시작된 지 넉 달 가까이 지난 때였다.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된 뒤이기도 했다. 명령서는 앞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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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황건 칼럼] 속눈썹…나를 보러 와준 얼굴
몇 년 전 델포이에 갔을 때였다. 고대 그리스의 델포이 고고학박물관에서 한참 전시물을 둘러보다가 뜻밖의 곳에서 눈길을 멈추었다. 기원전 47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델포이의 전차병」이었다. 청동으로 주조된 젊은 남자의 얼굴은 놀라울 만큼 고요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눈가에 아주 가느다란 선들이 보였다. 속눈썹이었다. 그 작은 속눈썹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 후 속눈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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