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 문화

    천사의 성별을 논하는 사이, 누가 국민의 울부짖음을 듣는가

    여수 향일암으로 향하는 좁은 바위틈 길. 몸을 낮추고 서로에게 길을 내어주어야 하는 이곳에서 배려와 겸손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향일암에서 배운 관세음보살의 가르침, 그후 7년 동로마제국이 천사의 성별을 놓고 논쟁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천사는 남성인가, 여성인가.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인 상황에서도 그런 논쟁에 매달렸다는 풍자다. 실제로 콘스탄티노플 함락 직전에 그런 논쟁이 벌어졌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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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의사가 오기 전에는 부모가 있었다…루크 필즈의 두 그림이 전하는 돌봄의 의미

    영국 화가 루크 필즈(1844~1927)의 1875~1876년 작품 홀아비(The Widower). 아내를 잃은 아버지가 병든 아이를 품에 안고 슬픔에 잠겨 있다. 가난과 상실 속에서도 이어지는 부모의 돌봄을 보여준다. 호주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주립미술관 소장. 지난여름 시드니의 뉴사우스웨일스주립미술관(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을 찾았다. 여러 작품 사이를 걷다가 한 그림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영국 화가 루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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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죽은 자의 이름으로 말하는 사람들…제갈량은 수레에, 엘 시드는 백마에

    죽어서도 군대를 움직인 제갈량과 백마에 실려 전장에 나선 엘 시드, 그리고 국민 배우의 죽음을 추모하는 오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구성했다. 고인을 기억하는 것과 그 이름을 빌리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AI 생성 삽화> 30년 전 선거 경쟁자의 추모에서 떠올린 질문…고인을 기억하는 것과 그 이름을 빌리는 것은 같은 일인가 죽은 사람은 말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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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최불암’ 수사반장을 위한 레퀴엠…박 반장은 서 형사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1957년생인 나는 흑백TV 시절부터 두 형사를 만났다. 한 사람은 미국의 콜롬보였고, 다른 한 사람은 우리나라의 박반장이었다. 피터 포크가 연기한 형사 콜롬보는 구겨진 트렌치코트 차림에 시가를 물고 다녔다. 어딘가 어수룩해 보이는 외모와 느릿느릿한 말투로 상대를 대하다가 돌아서기 직전이면 어김없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Just one more thing.” 그 짧은 질문 하나가 범인의 완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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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명예회복짜장면’이 가르쳐준 공적인 책임

    인천 차이나타운의 유서 깊은 중국음식점 ‘풍미’. 한 성형외과 교수와 제자들은 이곳에서 맛을 되찾은 짜장면을 ‘명예회복짜장면’이라고 불렀다. 한 그릇의 음식에 담긴 실력과 책임, 신뢰 회복의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성형외과학회, 특히 눈성형연구회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중국집에는 여러 가지 요리가 있지만, 결국 짜장면이 맛있는 집의 주방장이 진짜 실력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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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황후의 눈썹에서 시작된 역사…영락제와 세조, 숙부는 왜 조카의 왕위를 빼앗았나

    베이징 경산공원에서 내려다본 자금성 전경. 붉은 등롱 사이로 명·청 황제들이 권력을 이어온 궁궐의 지붕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생을 마친 경산공원에서 바라보는 자금성은 영락제의 황위 찬탈을 비롯해 권력을 둘러싼 황실의 갈등과 흥망성쇠를 떠올리게 한다. 몇 해 전 중국에 갔을 때 황후들의 초상화를 보다가 마황후의 눈썹에 눈길이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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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국민이 편히 잠드는 밤, 지도자의 책임은 깨어 있어야 한다

    AI 생성 이미지 기독교에는 신망애(信望愛)의 삼덕이 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정치의 근본을 묻는 자공에게 식량과 군비, 백성의 신뢰를 들었다. 그중 둘을 버려야 한다면 군비와 식량을 차례로 버릴 수 있지만, 백성의 신뢰만은 버릴 수 없다고 했다.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뜻이다. 기독교와 유교는 서로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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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철원 ‘저격능선전투’ 전승·위령제…호박떡과 군가, 그리고 ‘국화 한송이’

    철원 쉬리공원에서 열린 저격능선 전투 전승·위령제에 참석한 노병들 저격능선 전투 전승·위령제를 다녀와서 10월 24일 아침 8시, 청량리역에서 출발한 45인승 버스는 빈자리 없이 찼다. 총무가 뜨끈뜨끈한 호박떡을 나누어 주었다. 철원으로 향하는 동안 회장은 참가자들을 한 사람씩 소개하며 누구인지, 어떻게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 물었다. 참가자들 가운데는 참전용사의 가족도 있었고, 가족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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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유홍준의 ‘호찌민 목민심서’ 발언 논란…두 초상화 앞에서 나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 거처 내부에 걸린 카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레닌의 초상화. 필자는 이 공간에서 호찌민의 역사적 역할과 그가 따랐던 이념, 그리고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참전을 함께 떠올렸다. 최근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둘러싼 이야기가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호찌민이 평소 이 책을 즐겨 읽었다는 일화다. 유홍준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둘러싼 논란과 함께 이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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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시드니 성 메리 대성당에서 만난 전사자…‘정복되지 않는 평화’

    평화는 정복돼선 안된다…<사진 황건> 시드니의 St Mary’s Cathedral을 찾았다. Hyde Park 바로 옆에 자리한 이 성당은 웅장한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다. 그런데 성당 안에서 뜻밖의 작은 전사자 기념비 하나를 만났다. 성당 안은 비교적 어두웠다. 오후가 되자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이 반대편에서 들어왔다. 그 어둠 속에 한 병사가 네모난 석판 위에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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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김여정의 ‘달구지’ 발언에서 떠올린 대승의 큰 수레…누구를 태울 것인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사진=조선중앙TV 방영분 중 일부>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라는 말을 떠올리면 수레의 크기가 눈에 들어온다. 승(乘)은 수레라는 뜻이다. 대승(大乘)은 큰 수레이고 소승(小乘)은 작은 수레다. 대승불교는 자신만의 해탈에 머물지 않고 더 많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겠다는 보살의 이상을 강조했다. 다만 소승이라는 명칭은 대승 측에서 기존의 불교 전통을 비판하며 붙인 이름이므로, 오늘날 부파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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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적을 조롱하는 행진곡, 전쟁터의 두려움을 웃음으로 바꾸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 한 장면. 고등학교 시절 교련 검열을 받을 때면 밴드부의 반주에 맞추어 열병과 분열을 했다. 이후 3사관학교에서 훈련받을 때도 사열 경연대회를 앞두고 행진 연습을 수없이 반복했다. 팔을 앞으로 100도, 뒤로 30도 흔들며 발을 맞추었다. 그 노력 덕분이었을까. 우리 7중대는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당시 행진곡으로 자주 접했던 곡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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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전쟁터에선 적군, 병상에선 환자…노르웨이 청년이 본 한국전쟁

    (위) 노르웨이 이동외과병원(NORMASH)에서 전기 기술자로 근무했던 청년 다비드 란뷔(1931~2024)의 전쟁 기록을 담은 책 표지. (아래) 한국전쟁 당시 눈 내리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군인들의 모습. 동두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에 갔다.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NORMASH, 노르웨이 이동외과병원의 유물이 전시된 곳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그 가운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설명에는 NORMASH에서 사용했던 수술 기구라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의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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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푸른 바다는 기억하고 있었다…1983년 그날 밤, 두 해병의 이름

    월성 해안침투 공비 섬멸 전적비 지난 10월 15일 아침, 경북의 한 바닷가를 찾았다. 전날 영천호국기념관을 둘러본 뒤 대구에서 묵었다. 인터넷으로 경북 지역의 전적지를 검색하다가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을 발견했다. 무장공비 격멸 전적비였다. 꼬불꼬불한 산고개를 몇 번이나 넘었을까. 길은 마침내 바닷가에 닿았다. 별도의 주차장도 없었다. 길 건너 아직 문을 열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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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M1 소총의 무게, 50년이 지나도 내 손은 기억한다

    50년 전 처음 잡았던 M1 소총. 무기는 시대와 함께 바뀌었지만, 손끝에 남은 그 무게와 젊은 날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얼마 전 호국기념관에 들렀다. 전시실 한쪽에 낯익은 소총이 놓여 있었다. M1 개런드(Garand)였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그저 오래된 소총 한 자루일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렇지 않다. 나는 이 총을 실제로 들고, 쏘고, 분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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