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칼럼

전쟁이 남긴 편지 속 행간을 읽다

[아시아엔=황건 이화여대 초빙교수] 전쟁은 총과 포로만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전시관의 유리 진열장 안에 남겨진 몇 장의 종이에도, 그 시대가 허락한 말과 허락하지 않은 말이 함께 남아 있다.

전시실에서 시작된 질문
전쟁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동원되는 것은 통계와 연표다. 사망자 수, 참전국, 작전명, 휴전선. 그러나 전시실 한켠에 놓인 몇 장의 육필 편지는 그 모든 설명을 우회한다. 나는 최근 전쟁기념관에서 다섯 통의 편지를 읽었다. 국적도, 이념도, 전쟁도 달랐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모두 전쟁 한가운데서, 검열을 전제로 쓰인 편지였다. 글씨는 흔들리고 문장은 짧다. 무엇보다 말하지 않은 것이 많다. 이 편지들을 읽는 일은 문장을 해독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 사이를 읽는 일에 가깝다. 영어 노랫말에서 말하는 read between the lines, 한자어로 하면 ‘행간독법(行間讀法)’이다.

내가 읽은 다섯 편의 육필은 다음과 같다. 한국전쟁의 남한 피난민이 보낸 편지, 6·25전쟁에 참전한 터키 병사에게 아버지가 보낸 답장, 북한군 병사의 편지, 베트남 파병 장교의 편지, 그리고 옥중에서 작성된 주베트남 공사의 편지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쓰였지만, 이 편지들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전쟁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쓰게 했는가?

남한 피난민의 편지: 살아남았다는 보고
남한 피난민의 편지는 담담하다. 가족의 안부, 현재 머물고 있는 곳, 먹고사는 문제. 이 편지의 핵심은 감정이 아니라 ‘보고’에 가깝다.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아직 가족이라는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최소한의 증명이다. 전쟁 초기의 편지들이 대체로 그렇듯, 이 글에는 해석의 여지가 많지 않다. 그러나 이 편지가 출발점이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후의 편지들이 점점 더 많은 해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터키군 부사관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 “국적을 넘어 남은 것은 아버지의 말투였다.”

터키 병사의 아버지: 위로라는 이름의 공적 언어
(6·25전쟁에 파병된 터키군 제3여단 소속 부사관 오스만 야사르 에켄에게 보낸 편지)

“네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알라께서 너를 보호하시길 빈다.” “너는 우리 가문의 자랑이다.”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것은 큰 영광이다.” “승리보다 네 생명이 더 중요하다.” “반드시 무사히 돌아와라.”

아버지의 편지는 사적인 듯 보이지만,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개인의 언어라기보다 사회가 허용한 위로의 형식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면서도, 임무의 정당성과 명예를 반복해서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검열의 결과만은 아니다. 전쟁에 참여한 ‘아들의 아버지’가 사회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범위가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편지는 부모의 마음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마음이 어떤 질서로 배열되어야 했는지를 보여준다.

북한군 병사의 편지-“개인의 편지에 스며든 이념의 문장이다”

북한군의 편지: ‘쌀밥과 고기’라는 수상한 문장
이흥환 작가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발굴해 엮은 북한군 편지 가운데 한 편에는 유독 눈에 걸리는 문장이 있다. “고기가 멀미 나고 쌀밥이 싫다.” 편지의 주인공은 충청북도 청원 출신의 청년으로, 동생과 함께 북으로 갔다가 인민군에 편입됐다. 그는 아버지와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집을 떠났고, ‘조선인민군 우편함’이라는 주소로 고향에 편지 한 장을 보냈다.

“부모를 모시지 못한 불효를 용서해 달라”, “진실로 집에서 먹던 죽과 보리가 다시 먹고 싶습니다”는 문장 뒤에 이 표현이 이어진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보급 상황을 고려하면, 이 문장은 사실의 보고라기보다 상징에 가깝다.

편집자인 이흥환 씨는 이 문장이 검열자의 대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김일성 정권의 대표적 구호가 ‘기와집에서 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해주겠다’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 문장은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체제가 스스로에게 보내는 확인서처럼 읽힌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의심 때문에 편지는 더 진실에 가까워진다. 반복되는 ‘집’, ‘부모’, ‘다시 집의 죽과 보리가 먹고 싶다’는 말들은 선전 문구와 달리 너무 개인적이고 절실하다. 이 편지는 말한다기보다, 검열의 틈 사이로 새어 나온다.

베트남 파병 장교의 편지: 또 다른 전선
베트남 파병 장교의 편지는 어조가 다르다. 날짜는 정확하고 문장은 정돈되어 있다. 전투의 긴장보다 지연과 일상의 반복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단기 전투의 편지가 아니라 장기 파병자의 글쓰기다. 이미 한국전쟁을 경험한 국가의 군대가 또 다른 전쟁에 참여하며 생산한 언어다. 감정은 배제되거나 최소화되어 있고, 임무 수행에 대한 기술적 언급이 중심을 이룬다. 이 편지는 전쟁이 반복될수록 개인의 언어가 어떻게 관료화되는지를 보여준다.

옥중의 주베트남 공사 편지-“국가가 사라진 자리에서 남은 인간의 언어.”

옥중의 주베트남 공사: 말할 수 없는 자리
(한국 외교관 이대용, 1970년대 북베트남 포로수용소)

“이 편지가 무사히 닿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얼마나 컸을까.” “아버지 노릇을 못 해서 미안하다.” “언젠가 다시 만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이 편지는 전쟁의 이념도, 정치도 지워진 자리에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목소리만 남아 있다. 문장은 조심스럽고 단어 선택은 극도로 제한적이다.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조건 자체를 기록한 글이다.

문장 사이에 남은 전쟁
이 다섯 편의 편지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으로 나눌 수도 있다. 그러나 편지를 중심에 놓으면 하나로 묶는 방식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전쟁의 종류보다, 전쟁이 만들어낸 언어의 공통점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편지들은 사실을 말하기보다, 사실이 어떻게 가려졌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행간독법이다. 무엇이 쓰였는가보다, 왜 그렇게 쓰일 수밖에 없었는가를 묻는 읽기다.

전쟁은 사람들에게 말할 자유를 주지 않았고, 대신 말해야 할 문장을 제공했다. 남겨진 육필은 그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아직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개인의 흔적을 드러낸다. 전쟁은 기록으로 남지만, 그 기록의 진실은 언제나 문장 사이에 남는다.

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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