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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는 나라의 근간이다”…양구 피의능선에서 들린 ‘묵특선우’의 한마디

양구 피의능선 전투 안내문 <사진 황건>

몇 달 전 양구전쟁기념관을 찾았다. 바로 곁의 도솔산지구 전적비와 양구통일관도 함께 둘러보았다. 아쉽게도 전망대는 보수공사 중이었다. 펀치볼을 직접 내려다보며 능선들을 눈에 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전망이 아니라 전시장이었다.

기념관에서는 이른바 ‘펀치볼(Punchbowl)’을 둘러싼 전투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었다. 펀치볼은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의 거대한 분지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거대한 화채 그릇(punch bowl)을 닮았다 하여 미군이 붙인 이름이다. 한국전쟁 후반 이 분지를 둘러싼 도솔산,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백석산에서는 군사적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고지전이 이어졌다. 오늘은 평화로운 산줄기이지만, 당시에는 능선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었던 곳이다.

전시장을 걷다 보니 발 아래가 유리로 된 통로가 나타났다. 조심스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흙 속에는 당시 사용하였던 탄피뿐 아니라 전사한 병사의 모습도 반쯤 묻힌 채 재현되어 있었고, 곁에는 녹슨 철모와 수통, 총기가 당시 모습 그대로 놓여 있었다. 마치 70여 년 전의 전장이 시간 속에 봉인되어 발 아래 놓여 있는 듯했다. <사진 황건>

전시장을 걷다 보니 발 아래가 유리로 된 통로가 나타났다. 조심스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흙 속에는 당시 사용하였던 탄피뿐 아니라 전사한 병사의 모습도 반쯤 묻힌 채 재현되어 있었고, 곁에는 녹슨 철모와 수통, 총기가 당시 모습 그대로 놓여 있었다. 마치 70여 년 전의 전장이 시간 속에 봉인되어 발 아래 놓여 있는 듯했다.

마침 안보 견학을 온 어르신들이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모두 여든은 훌쩍 넘어 보였다. 한참 동안 말없이 내려다보던 한 분이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저 산 하나를 지키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사진 황건>

다른 분도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 우리 또래였지.” 그 이상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전시장에는 설명하는 음성보다 침묵이 더 크게 들렸다.

몇 달이 지났지만 그 장면은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사마천의 <사기> ‘흉노열전’에 나오는 묵특선우(冒頓單于)가 떠올랐다.

이웃 나라의 군주가 처음에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는 명마를 요구했다. 신하들은 “나라의 보배이니 결코 내주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간언하였다. 그러나 묵특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말 한 필 때문에 이웃 나라와 원한을 맺을 수는 없다.” 그는 명마를 선뜻 내주었다.

얼마 뒤 그 나라는 다시 사신을 보내 이번에는 묵특선우가 가장 총애하던 연지(흉노 왕비의 칭호)를 요구했다. 신하들은 모두 분노하며 “이는 나라의 치욕이니 절대로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아뢰었다. 그러나 묵특선우는 이번에도 크게 웃으며 말했다. “여인 한 사람 때문에 이웃과 다툴 이유가 무엇이냐.” 그는 연지마저 내주었다.

그러자 이웃 나라 왕은 더욱 교만해졌다. 이번에는 국경의 황무지를 넘겨 달라고 요구했다. 신하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니 내주어도 무방하다고 아뢰었다. 그 순간 묵특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국토는 나라의 근간이다. 어찌 남에게 줄 수 있겠는가.” 그는 땅을 내주자고 한 신하들을 엄히 다스리고 군사를 일으켜 침략자를 물리쳤다.

물론 오늘의 우리는 그의 가혹한 처벌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국토는 나라의 근간”이라는 말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양구의 이름 없는 능선에서 스러져 간 젊은 장병들도 지키려 했던 것은 몇 미터의 흙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그 땅은 나라였고, 가족이었으며, 후손들이 살아갈 삶의 터전이었다.

전쟁은 한 치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벌어지지만, 그 한 치의 땅을 지키기 위해 희생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다. 국토는 면적이나 경제적 가치만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 그 위에 스며 있는 이름 없는 이들의 삶과 희생까지 함께 기억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완성된다.

묵특선우는 “국토는 나라의 근간”이라고 말했다. 양구의 이름 없는 장병들은 그 말을 글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했다.

양구의 능선에는 지금도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승리의 함성을 전하지 않는다. 다만 그곳을 지키다 이름도 남기지 못한 젊은이들을 기억하라고, 오늘도 조용히 우리 곁을 스쳐 갈 뿐이다.

양구 전적비 <사진 황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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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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