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장] 공사 27기 구명수씨 “사관학교 폐교 안 돼…죽음에 대한 답 가르치는 곳”

구명수씨 “사관학교는 단순히 성적이 좋은 학생을 뽑아 교육하는 곳이 아니다”라며 “4년 동안 생도들에게 죽음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가르친다”며 “일반 대학의 교육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부분”이라고 했다. 사진은 구명수씨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 논의를 둘러싸고 예비역들의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공군사관학교 27기 구명수씨가 집회 현장에서 자신의 경험과 문제의식을 직접 밝혔다. 그는 공군사관학교 교수와 평가관리 업무를 맡았던 경험, 1985년 공군사관학교 이전 과정의 기억 등을 토대로 사관학교 교육의 특수성과 각 군 전통의 의미를 강조했다. <아시아엔>은 현장의 목소리를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하기 위해 구씨의 발언을 기사와 함께 전문 게재한다. <편집자>

공군사관학교 27기 구명수(전 공사 교수부장)씨가 사관학교 통합·폐교에 반대하며 “사관학교 교육의 본질과 각 군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씨는 9월 11일 오전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사관학교 폐교 반대’ 집회 발언에서 육·해·공군 사관학교 출신들이 칠순을 넘긴 나이에 모교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온 현실 자체가 이례적이라며 통합 추진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구씨는 자신을 “공군사관학교 27기”라고 소개한 뒤 “우리는 시위를 해본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시위를 하지 말라고 했던 사람들”이라며 이날 집회 참석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칠순잔치까지 끝낸 사람들이 모교가 없어진다며 반대 시위를 하는 경우가 세계 어디에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특히 사관학교 교육의 특수성을 강조했다. 공군사관학교 교수와 평가관리 업무를 맡았던 경험을 언급하며 “사관학교는 단순히 성적이 좋은 학생을 뽑아 교육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4년 동안 생도들에게 죽음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가르친다”며 “일반 대학의 교육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1985년 공군사관학교가 서울 대방동에서 충북 청원군 남일면으로 이전했던 경험도 소개했다. 그는 “새로운 터전이 안정되기까지 4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며 교육기관의 이전과 재편은 단순히 시설을 옮기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구씨는 육·해·공군 사관학교가 각기 축적해온 교가와 문화, 교육환경도 강조했다. “명칭이 없어지고 교가가 없어지고, 가장 중요한 필드가 사라지는데 그것이 사관학교를 그대로 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과거 생도 시절 육사·해사와 치열하게 경쟁했던 기억을 꺼내며 이날은 “이제는 서로 뭉치자”고 말했다. 공군 특유의 개인 중심 문화 때문에 동문들이 한자리에 잘 모이지 않지만 사관학교 문제만큼은 많은 동문들이 뜻을 함께하고 있다고도 했다.

연설 말미에는 산청에서 본 ‘부부 회화나무’와 제주에서 본 칡과 등나무를 대비시켰다. 서로 경쟁하지 않고 함께 자란 두 나무는 조화의 상징으로, 뒤엉켜 상대를 옥죄는 칡과 등나무는 ‘갈등’의 상징으로 들었다. 그는 “지금 필요한 것은 갈등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뭉치는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을 마쳤다.

이날 대회장에 자리한 육해공군 사관학교 졸업생들. 구명수씨가 다른 연설자 발언을 경청하는 모습도 보인다.

구명수 공군사관학교 27기 발언 전문

육사는 참 버릇을 못 고쳐요. 제가 보니까 이런 걸 꼭 공사 먼저 시켜요.

저는 공군사관학교 27기 구명수인데요. 제가 대표는 아니에요. 제가 말 잘하고 그래서 올라오거나 해본 적도 없고, 이런 것이 여러분들 다 마찬가지지만 생소하잖아요. 우리가 언제 시위를 한번 해봤어요? 우리가 시위하지 말라고 말렸지, 우리가 시위해본 적 없잖아요. 우리가 시위를 할 줄 알았으면 전 매일 시위대에 가서 있었을 거예요. 정말 시위대에 있었을 거예요.

공군사관학교에서 왜 저를 택했냐면 가나다순으로 하다 보니까 꼭 구씨가 걸려요. 그래서 조금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그랬더니 이번에는 거꾸로 또 공군사관학교 먼저 하라네요. 이게 참 숙명이야, 숙명. 육사는 가끔 마음에 안 들어.

그리고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두 사람을 개인적으로 소개 좀 하려 그럽니다. 공군사관학교가 잘 안 모여요. 공군이 잘 안 모이는 이유가 공군의 특성이 있어요. 공군은 조종사, 복싱 선수와 똑같아요. 링에서 혼자 싸우는 그 파워가 대단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은 속으로는 다 찬성을 해요.

사관학교 폐교에 대해서 공군사관학교 총동창회에 27기만큼 돈 많이 낸 사람이 없어요. 박수 한번 쳐줘요. 75명이 각출해 가지고, 금액은 얘기 안 할게요. 워낙 커 가지고. 한번 동기생끼리 물어보세요. 부탁드릴게요.

저는 사관학교에서 사실 “격파 육사, 격침 해사”를 외쳤던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생도 때 저는 축구 선수였습니다. 저의 원수가 누군지 알아요? 여기 해사 강용구네. 이 친구를 1978년에 보고 참 오랫만에 처음 보네. 반가우이. 정말 고생했어. 그때는 니네들이 격추하느라고 고생했는데 오늘은 뭉치자고.

육사에 맹승열이 왔나? 맹승열 안 왔나? 승열아, 일어나 봐라. 반가워요. 박대섭이도 있지? 대섭이 왔구나. 이게 공군사관학교의 정입니다. 용구는 끝나고 좀 보자. 이제는 서로 뭉치자고.

이 나이 돼가지고 70 돼서 우리 딸이 오늘 문자를 보냈는데 “아빠, 오늘 다른 일 있는데 어디 가?” 그래서 “아빠 지금 이만저만해서 어디 간다. 청와대 앞에.” 그랬더니 “아빠 대통령 만나?” 그러더라고. 대통령 뭐 못 만날 것도 없지.

그래서 사실 이렇게 동기생끼리 데모하러 간다고 그랬더니 “아빠 꼭 그래야 돼?” 그러더라고요. 몰라요, 사람들이. 내 딸인데도 몰라요. 이게 이렇게 망하는지 모른다고요.

사실 저는 오늘 올 자리가 아니에요. 전 돈 벌어야 될 사람이에요. 그렇다고 무슨 기업에 다녀가지고 돈 버는 거 아니에요. 대통령이 주식하라 그러더라고. 주식을 엄청 샀어요. 개털됐습니다, 개털.

맨 처음에 100만원, 200만원 오르더라고. 그런데 이게 떨어지기 시작하니까 감당을 못 하겠어. 연구 결과에 주식에서 3000만원을 잃으면 뇌가 맹수를 만난 것 같대요. 거기다 혼자 했으면 괜찮은데 딸내미한테까지 주식해라 그래가지고 완전 망했어요. 완전 망했어. 그래서 사실 오늘은 주식 아침에 보고 올까 말까 하다가 또 떨어졌을 것 같아. 내가 보기에 조졌어요, 아주.

제가 일반 장교 출신이었기 때문에 조종사나 배 타거나 육군에서 전방에서 하는 업무보다 조금 시간이 있었어요. 그래서 재테크에 조금 밝아요. 한 번도 실패해본 적이… 성공한 적은 없지만 눈은 떴어요.

그런데 철거민 특별공제가 있다는 것은 나는 처음 들었어. 철거민 특별분양. 이걸 알았으면 내가 여기 안 있지. 게다가 혼자만 된 게 또 아니더만. 본인, 아버지, 형, 이모인가 고모인가. 여러분, 지금 제가 빨리 끝내고 가야 되는 게 이 철거민 특별분양하는 데 이제 찾아가야 돼요. 양해 부탁드릴게요.

사실 오늘 이런 자리였는지 몰랐어요. 그냥 연락이 와서 “명수야, 가볍게 한마디 하라”고 그랬는데 이게 가볍게 안 되네. 여러분들이 다른 얘기들은, 합동성이고 뭐고 이런 얘기 저는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하도 많이 들어 가지고 말 같지 않은 일이라서 제가 얘기 안 합니다.

제가 사관학교에 꽤 오래 있었어요. 저희 졸업생들이, 삼사 졸업생들이 나이 칠십 먹어 가지고 칠순잔치 다 끝난 사람들이 여기 이렇게 모여 가지고 “내 모교 없앤다는 거 절대 반대”하며 시위를 하는 게 전 세계에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크게 한번 해봐요. 칠순잔치 다 끝나고 내 모교, 공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 교가 “우리의 영원한 기지 공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만만세”, 육사의 “육사 횃불”. 이게 사관학교가 없어진대.

명칭이 없어지는데 무슨 합동성이 어디 있어요. 명칭이 없어지고 교가가 없어지고 가장 중요한 필드가 없어지잖아요. 필드가 없어지는데 이게 사관학교 폐교가 말이 돼요, 안 돼요 여러분들?

안 됩니다.

동기생이 저보고 목소리가 커가지고 너 시켰다고 그러더라고요. 사실 전 이렇게 목소리 큰 사람은 아니에요. 말도 잘 안 해요. 한잔 먹어야 또 얘기 나오는데.

1985년 12월 19일 날 대방동에서 대한통운 큰 트럭 한 대씩 장교가 타고 캐비닛하고 침대 싣고 그 머나먼 산골, 청주도 아니에요. 청원군 남일면으로 이전했어요. 가면서 저는 그래도 청주 통과할 때 플래카드라도 하나 있을 줄 알았어. 플래카드라도. 오는지 안 오는지, 공사가 오는지 안 오는지 관심도 없어.

거기에 가서 지금 안정된 게 겨우 40년 됐습니다. 40년. 이제 안정됐는데 아무리 옮긴다고 해봐요. 제가 겁이 나는 게 다수당으로 입법화시키면 골치 아파지는 거예요. 그게 몇십 년 만에 되겠습니까. 이게 가능해요? 제가 경험을 해봤어요.

거기 가서 230미터의 성무봉에 생도들의 공간지각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행글라이딩, 패러글라이딩을 만들었어요. 지금처럼 차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한 대 차도 없어. 맨발로 걸어 다녔어. 진흙땅을.

여러분들 공군사관학교 체력단련장에 골프 치러 온 적 있죠. 공군은요, 골프만큼 치러가기를 좋아하지 않는 곳이 없어요. 왜? 매일 비상대기니까 나가지 못하니까. 선배가 뭐 하냐면 골프 시켜요. 그것도 최대 열네 개 있는 것도 아니야. 그냥 한두 개 줘. 따라와. 그게 공군의 골프예요. 그게 체력단련이에요. 왜 비상 걸리면 빨리빨리 오라고.

그 골프장을 저희가, 그 유명한 방위 얘기하면 안 되는데, 방위병 있을 때…. 방위병에서 높아진 사람도 있죠? 또 누구지? 탈영했어요! 이름이 뭐더라. 한규백 있죠? 1홀 만들고 2홀 만들고 그렇게 해서 만들었는데, 지금 보니까 아주 기가 막히잖아요. 그 돈 1원 한 푼 들인 게 없어요.

공군사관학교요. 제가 근무해서, 저는 교수에 있었어요. 저는 공군사관학교 교수한 걸 후회합니다. 정말 후회합니다. 일반 대학교보다 성적이 낫다고요? 아이고 그런 소리 하지 마요.

제가 평가관리실장, 삼사 평가관리실장을 하면서 전부 다 생도들 뽑았어요. 40대 1, 50대 1, 60대 1. 육군사관학교 성적이 가장 좋았어요. 이게 뭔지 알아요? 요새는 육사가 별로 인기 없던데.

왜 그러냐. 육군사관학교는 성적 위에서 상위 아주 똑똑한 최고의 엘리트들이 그냥 상위 성적으로 들어가요. 공군사관학교, 해사는 얘기 안 할게요. 공군사관학교요. 175명, 200명만 딱 위에서 서울대처럼 뽑았다 잘랐다, 대한민국 스카이보다 더 합니다.

들어오자마자부터 신체검사에서 잘라, 면접에서 잘라. 면접에서 1박2일로 잘라. 면접에서 자르는 거 봤어요? 성적만 좋아서 들어오는 게 아니에요.

또 하나, 사관학교 교수로서 후회하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교육을 4년 동안 시키면서 얘들한테 죽음을 가르치는 교육을 시킵니다. 이런 걸 서울대학교에서 시켜요?

사관학교는, 특히 공군사관학교는 죽음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교육시키는 데예요. 그것이 자운대에서 대학교 교수, 일반대학교 교수가 사관생도들을 가르친다? 죽음에 대한 대답을 유발할 수 있을까요?

생도수첩들 보면요, 무서워요. 저도 마찬가지고. 저 생도 1학년 때 수첩의 문구 뭔지 알아요? 뭐 같아요? 진급이요? 뭐 같아요?

죽음에 대한 확실한 대답입니다.

죽음에 대한 확실한 대답. 그게 사관학교 교육이에요. 죽음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가르치는 대한민국의 학교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러분들?

없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죽음에 대한 교육을 시키는 교육기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고 그러면 통합시키십시오.

제가 더 하고 싶은데 준비가 안 됐어요. 사실은 이렇게 이런 식으로 할 것 같으면 내가 준비를 참 많이 해가지고 왔을 텐데. 다음부터는 이제 안 나올 거예요, 난. 나오고 싶은 생각이 없어. 말이 안 통해. 행동뿐이 없어. 구호 필요 없어.

70 먹은 노병들이 이렇게 나와서 있는데 무슨…. 말이 안 돼. 그리고 여기 나오신 분들, 계급들 다 전술·전략 누구보다 잘하는 사람이야. 그거 가지고 사는 사람이야.

나도 축구했지만 축구에서도 훼인팅이라는 말 있잖아. 훼인팅이 뭐예요? 속이는 거 아니야. 그런데 저렇게 속이는 건 이 사람들이 몰라.

공군사관학교를 없애?

나는 여기 왜 왔냐. 내 사관생도들 91%가 반대하는, 가족들이 반대하는 그 사관학교. 그 사관학교를 당신이 뭔데 폐교시키냐고.

노, 노.

제가 끝으로, 요새 여행을 좀 다닙니다. 와이프와 여행을 다니는데 두 군데 나무를 보고 감명을 받았어요. 첫째는 산청에 가니까 여러분들도 가봤을 거예요. 부부 회화나무가 있더만요. 부부 회화나무.

그게 꽤 오래됐는데 사진들 많이 찍어요. 부부 회화나무. 정말 그 나무들이 어떻게 경쟁을 안 하고 조화롭게 그렇게 굵게, 그렇게 크면서 너무너무 아름답더라고요.

또 한 군데 제주도 수목원을 갔더니 그렇게 아름다운 데에 칡과 등나무가 얽혀가지고 구리로 감은 것보다 더 심하게 감은 거야. 아름다운 나무가 몇십 년 동안 감겨가지고. 이게 뭐예요. 칡과 등나무가 뭐라 그러죠?

갈등이죠. 갈등 유발자가 저기 있어. 계층에 대한 갈등, 부와 안 가진 사람의 갈등, 육사와 뭐의 갈등. 전부 갈등, 갈등.

아까 주식 얘기했죠. 주식하면 맹수 만난다고 그랬죠. 공군사관학교 폐교 얘기만 나오면 저는 그것보다도 아드레날린부터 시작해 가지고 분해서 잠이 안 와요. 잠이 안 와.

여러분들, 갈등 조정자, 갈등 유발자 있지 않습니까. 갈등 유발자는 퇴출해야 됩니다.

(청중: 맞습니다.)

갈등을 왜 조장합니까. 여러분들 칠십 먹은 이 노병들이 사관학교를 지키자고 나와 있는데, 나 같으면 나와 볼 거야. 나와서 “아유, 고생하십니다. 용사님들. 제가 뭐 잘못한 게 있습니다.” 이럴 거예요.

제가 구호 외칩니다. 요새 ‘아웃’ 좋아하네. TV에 보니까 누구누구 아웃, 아웃 하던데 여러분들은 “아웃, 아웃, 아웃” 세 번씩만 하면 돼요. 제가 세 번 할 테니까.

갈등 유발자! 아웃! 아웃! 아웃!
갈등 유발자! 아웃! 아웃! 아웃!
갈등 유발자! 아웃! 아웃! 아웃!

이제 내려갈게요. 목이 쉬어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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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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