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사회세계

[이신석의 ‘옐로우 레인’ 추적①] 테르메즈에서 칸다하르까지…20여년 추적 끝에 캄보디아로

1980년 10월호 <리더스 다이제스트> 원본 표지. ‘Gas Warfare in Laos: Communism’s Drive to Annihilate a People’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당시 열여덟 살이던 이신석 기자는 이 글을 통해 이른바 ‘옐로우 레인’ 문제를 처음 접했고, 그 의문은 46년 뒤 캄보디아 라타나키리 현장 취재로 이어졌다.

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는 20여 년간 발칸·카프카스·중앙아시아·아프가니스탄·시리아 등 분쟁현장을 찾아다녔다. 이번에는 베트남전쟁의 후방전선이었던 캄보디아 북동부 라타나키리로 향했다. 호치민 루트와 미군 폭격, 지뢰·불발탄의 흔적, 그리고 냉전기 ‘옐로우 레인(Yellow Rain)’ 논쟁이 남긴 기억을 추적하기 위해서다. <아시아엔>은 이신석 기자의 현장 취재와 관련 문서·증언을 토대로 연재한다. 주민 증언은 증언대로 기록하되, 옐로우 레인을 둘러싼 당시 미국 정부의 주장과 이후 과학계의 반론은 구분해 다룬다. <편집자>

방첩대 장교 아버지 기록에서 시작된 ‘국경 취재’
하카리 강제출국·나고르노-카라바흐 입국 제한…“국경 닫히면 다른 길로”
1980년 처음 만난 ‘옐로우 레인’…46년 뒤 라타나키리 정글에서 다시 묻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한국군 방첩대 장교였던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아버지는 냉전 초기 OSS(현재 CIA) 요원들과 협력하며 국경지대를 오갔고, 그 흔적은 오래된 가족 앨범과 군사 문서에 남아 있다. 그 기록들은 내가 전쟁을 단순히 역사책 속 사건으로만 보지 않게 만든 첫 배경이었다. 어쩌면 훗날 내가 끊임없이 국경과 분쟁지역을 찾아다니게 된 출발점도 그 오래된 앨범 속에 있었는지 모른다.

1980년, 열여덟 살이던 해였다. 베트남전쟁은 이미 끝나 있었다. 그러나 그해 가을 <리더스 다이제스트> 10월호에서 한 제목을 만났다.

“Gas Warfare in Laos: Communism’s Drive to Annihilate a People.”

라오스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가스전쟁과 주민들의 죽음을 다룬 글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황색 물질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사람들이 쓰러진다는 내용이었다. 훗날 ‘옐로우 레인’이라고 불린 사건이었다.

나는 이상했다. 전쟁은 끝났다는데 왜 화학무기와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는가. 실제 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 의문은 오래 남았다.

2025년 1월 이신석 기자가 아프가니스탄 현지에 잠입해 취재한 칸다하르 소녀들

전쟁이 끝난 뒤의 전쟁 흔적을 찾아

2005년 이후 나는 중부 유럽에서 발칸의 여러 국경을 넘었고 그리스의 난민촌을 찾았다. 튀르키예 남동부 분쟁지역을 거쳐 이란의 사막과 국경지대를 다녔다. 카프카스와 중앙아시아를 지나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의 차만 국경에서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로 들어갔다. 시리아에서는 코바니와 알레포의 폐허를 걸었다.

내가 찾아다닌 곳은 대개 전쟁의 중심에서 조금 비켜난 곳이었다.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났어도 총과 지뢰, 난민과 국경통제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었다. 전쟁은 뉴스에서는 시작과 끝이 분명해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국경은 그 사실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곳이었다.

2016년 2월 튀르키예 남동부 하카리 일대를 취재하다 강제출국 결정 통지서를 받았다. 문서에는 관련 법률과 이의제기 절차까지 적혀 있었다. 취재기자의 여권 한 권에 분쟁지역의 정치와 안보가 그대로 찍혀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2020년 7월 16일 주한 아제르바이잔대사관이 이신석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 대사관은 나고르노-카라바흐 등 아제르바이잔이 자국 영토로 보는 지역을 정부 허가 없이 방문했다며, 입국 제한 등 법적 조치 가능성을 통보했다. <이신석 제공>

또 다른 경험은 나고르노-카라바흐였다. 현장을 다녀온 기록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2020년 7월 16일 주한 아제르바이잔대사관은 내게 공식 이메일을 보내왔다. 내가 아르메니아 측을 통해 나고르노-카라바흐 등 아제르바이잔이 자국 영토로 간주하는 지역에 정부 허가 없이 방문한 기록이 있다며, 이를 자국 법률상 ‘불법 방문’으로 보고 입국 제한 등의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분쟁지역에서 한 번 넘은 국경은 몇 년 뒤 다른 국경에서 다시 나타났다. 그때 새삼 느꼈다. 냉전과 전쟁은 끝나도 국경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테르메즈에서 칸다하르까지

국경이 닫히면 다른 길을 찾았다. 중앙아시아는 그 길 가운데 하나였다. 투르크메니스탄을 지나 우즈베키스탄 테르메즈와 타지키스탄 두샨베를 반복해서 찾았다. 테르메즈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프가니스탄이 나온다. 다시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의 퀘타와 차만을 거쳐 칸다하르로 이어졌다.

이 지역들은 19세기 영국과 러시아가 맞섰던 ‘그레이트 게임’의 무대였고, 이후에도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겹쳐온 곳이다. 냉전의 병참기지와 군사도로가 사라진 뒤에도 국경과 회랑, 오래된 군사시설은 남았다. 전쟁은 끝나도 전쟁을 가능하게 했던 지형과 구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제정치의 거대한 구호가 아니었다. 누가 이기느냐도 아니었다. 언제 총소리가 멈추고 가족이 살아남느냐가 먼저였다.

한 주민의 말이 오래 남았다.

“우리는 어느 나라가 이기든 관심 없다. 전쟁만 멈추면 된다.”

시리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코바니와 알레포에서는 여러 국가와 무장세력의 이해관계가 한 도시의 폐허 위에 겹쳐 있었다. 그곳에서 확인한 것은 전쟁이 형태를 바꾸더라도 전쟁 뒤에 남는 구조는 놀랄 만큼 비슷하다는 사실이었다. 국경, 보급로, 난민의 이동로, 버려진 군사시설, 지뢰와 불발탄. 지도에서 선 하나를 지운다고 사라지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캄보디아

그렇게 20여 년을 돌고 나니 다시 1980년에 품었던 질문으로 돌아오게 됐다.

옐로우 레인.

그 질문을 다시 확인할 장소가 캄보디아였다. 특히 북동부 라타나키리였다.

베트남전쟁 당시 북베트남의 병력과 물자를 남쪽으로 이동시키는 호치민 루트는 라오스를 거쳐 캄보디아 북동부까지 이어졌다. 미국은 병력과 물자의 이동을 차단하기 위해 이 일대에 대규모 폭격을 가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 지역에는 지뢰와 불발탄, 내전과 보복의 기억이 남았다.

전쟁의 지도에서 가장 오래 남는 흔적은 어쩌면 국경선이 아니라 길인지도 모른다. 사람과 무기가 지나간 길, 폭탄이 떨어진 길, 사람들이 달아난 길이다.

1982년 3월 미국 국무부가 의회에 제출한 특별보고서 <동남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의 화학전(Chemical Warfare in Southeast Asia and Afghanistan)>. 당시 미국 정부는 이른바 ‘옐로우 레인’을 소련계 독소무기 사용의 증거로 제기했다. 이후 과학계에서는 꽃가루와 벌의 배설물 등 자연현상 가능성을 제시하며 반론을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미 육군 장성, 백악관 비서실장, NATO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을 거쳐 1981년 레이건 행정부 국무장관에 취임한 알렉산더 헤이그가 의회에 제출했다.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정글을 통과한 호치민 루트 주변은 전쟁 이후에도 오랫동안 분쟁의 흔적을 품었다. 냉전기에 ‘옐로우 레인’과 관련된 증언이 제기된 것도 이런 인도차이나의 전쟁 공간이었다.

그래서 라타나키리로 향했다.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미리 정해놓은 결론이 아니었다. ‘옐로우 레인은 화학무기였다’고 단정한 뒤 증언을 찾으려는 것도 아니었고, 오래된 주민들의 기억을 과학적 논쟁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워버리고 싶지도 않았다.

누가 무엇을 보았는가. 당시 사람들은 무엇을 두려워했는가. 4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마을 사람들의 기억에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 그리고 그 기억은 당시 미국 정부와 정보기관이 내놓은 주장, 이후 과학자들이 제기한 반론과 어디에서 만나고 어디에서 갈라지는가.

1980년 열여덟 살 소년이 잡지 한 권을 읽으며 품었던 질문이 46년 뒤 나를 캄보디아 정글로 데려왔다.

아버지의 낡은 군사 문서에서 시작된 국경의 기억, 발칸과 카프카스, 하카리와 나고르노-카라바흐, 테르메즈와 칸다하르, 코바니와 알레포를 지나 마침내 라타나키리까지 왔다.

이제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전쟁은 끝났지만 기억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옐로우 레인’에 대한 질문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2편에서는 냉전기 미국 정부가 제기한 ‘옐로우 레인=소련계 독소무기’ 주장과 이후 과학계에서 제기된 반론을 당시 자료와 연구를 토대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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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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