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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포이펫 르포 – 사람을 ‘자산’처럼 사고 파는 스캠 제국의 심장부

중국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착공됐던 포이펫 국제터미널. 그러나 현재는 폐업해 흉물스러운 모습만 남아있다.
[아시아엔=이신석 분쟁지역전문기자] 기자는 지난 9월 중순부터 약 1주일 간 태국과의 국경 분쟁으로 한창 시끄러운 캄보디아를 다녀왔다. 문제의 캄보디아-태국 국경 부근이 인신매매 사기범죄의 온상이라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캄보디아로 향하기 직전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취재원을 만나 사전 정보를 구했다.

“당신이 분쟁지역기자로 어떠한 험지를 다녔는지는 중요치 않다. 현지 조직들은 사람을 한낱 돈으로만 보기 때문에 그 누구든 그 곳에 가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캄보디아에 진출한 국내 조직들이 이 같은 범죄행위를 벌이는 가장 큰 이유는 대포통장이다. 납치한 사람들의 명의로 통장을 만들고 돈을 세탁해 범죄 자금을 순환시킨다. 사람을 납치하든 얼마를 주고 사오든 통장만 만들면 본전 이상은 뽑는다. 캄보디아는 그 루트의 중심으로 농업, IT, 뷰티, 환치기, 성매매까지 복잡하게 뿌리내려 있다.”

포이펫의 뒷골목 풍경. 기자는 곳곳으로 펼쳐져 있는 전선줄을 보며 네트워크 범죄의 단면을 떠올렸다.

9월 17일 이른 새벽,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도착한 기자는 곧장 포이펫으로 향했다. 프놈펜에서 서북부 국경도시 포이펫까지의 풍경은 말그대로 회색지대였다. 자욱한 흙먼지를 지나가니 범죄의 잿빛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스캠 공장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정부의 손길이 좀처럼 닿지 않는 이 곳엔 카지노, 정체불명의 창고들, 폐허가 된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이 곳은 수천 명의 외국인들이 갇혀 있는 스캠산업의 심장부이기도 하다. 21세기가 낳은 가장 잔혹한 산업은 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포이펫에 집중돼 있었다.

2025년 인터폴이 발간한 ‘인신매매 사기범죄’(Human trafficking-fueled scam centres)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신매매 피해자의 70% 이상이 사기조직의 강제노동에 동원되고 있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IT 전문가’ ‘농장 관리인’ 등의 구인광고에 현혹되지만, 이들의 종착지는 변두리의 격리된 창고다. 이러한 유형의 범죄가 가장 밀집된 곳이 캄보디아-미얀마-라오스 국경지대다.

피해자들의 국적도 다양하다. 한국, 베트남, 대만, 중국, 말레이시아는 물론 저 멀리 유럽 각국까지… 납치된 피해자들은 여권을 빼앗긴 채 어딘가에 감금돼 하루 15시간씩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 전화를 걸거나 메시지를 보내는 중노동에 시달린다.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면 전기충격기를 맞거나 구타당하기 일쑤이며 다른 조직으로 판매되기도 한다.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조직은 사람을 가상화폐처럼 사고 판다. 한 사람의 몸값은 500~5,000달러 사이를 오간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이 지적은 잔혹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범죄조직들은 인간을 ‘노동력’이 아닌 ‘자산’으로 취급하며 가상화폐의 개인지갑으로 거래하듯이 언제든 신속하게 거래할 수 있는 재화로 여긴다. 이들의 몸값은 단순 노동력이 아닌 신분증, 통장, 휴대폰 등에 따라 결정된다.

기자가 다녀온 캄보디아의 포이펫과 바탐방의 낮과 밤은 명백히 달랐다. 낮에는 여느 변두리 도시와 다를 바 없지만 , 해가 지면 스캠 사업장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범죄의 온상으로 변모한다. 포이펫의 관광명소인 카지노 외곽에서 바탐방까지 이어지는 폐건물들은 현재 스캠 조직들의 사무실로 탈바꿈돼 성업하고 있었다. 조직들은 폐쇄된 공간에서 감시카메라와 전기충격기를 동원해 피해자들을 통제한다고 한다.

기자가 묶었던 숙소 인근의 풍경. 기자가 묵은 호텔은 뷰티샵 직원 등 한국인들이 장기로 체류하던 숙소였으며,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무리들이 호텔 1층의 ATM 기기를 수시로 드나들었다.

기자는 숙소 인근의 거리에서 휴대폰이나 노트북 등 전자기기를 고치는 수리공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 곳에서 사업을 벌이는 한국인들이나 중국인들이 서버를 운영하는 것으로 안다. 고장이 접수되면 종종 수리하러 가서 보수도 넉넉히 받고 오지만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이 도시에선 다들 조금씩 발을 담그고 있다. 이제는 누가 진짜 범죄자인지 분간하기도 어렵다”

포이펫이라는 도시는 여러 서버들이 촘촘히 연결돼 있는 네트워크와도 같았다. 누군가는 사람을 납치하고, 누군가는 이들의 명의로 통장을 개설하고, 또 누군가는 이들의 고장 난 기계를 고친다. 이 모든 행위들이 범죄 네트워크 속에 녹아 들어 이 곳의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포이펫의 거리에서 촬영한 뷰티샵. 포이펫은 캄보디아의 외곽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샵들이 곳곳에 위치해 있었다. 샵 주변에는 항상 고급 승용차가 주차돼 있었는데, 이 차량들은 한 시간 정도 머물다 이 곳을 떠나곤 했다.

이들 조직은 이른바 ‘지하 경제’를 통해 수익을 발생키기 때문에 자금 관리에 특히 민감하다고 한다. 취재 직전 만났던 취재원에 따르면 필리핀에서 활동하던 국내 조직들은 소규모 자금의 경우 작은 상점들을 환치기나 송금 창구로 이용했다고 하며, 대규모 자금의 경우 카지노 등을 통해 세탁했다고 한다. 그는 필리핀에선 조직과 연관된 상점이 실제로 적발된 사례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국제앰네스티는 2025년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정부는 이 산업의 공범이다. 일부의 부패한 경찰과 지방공무원들이 스캠 산업을 방관하면서 이익을 챙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인터폴 또한 2023년 보고서를 통해 “캄보디아 포이펫 지역은 전 세계 스캠네트워크의 허브로, 공권력의 묵인 하에 유지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바탐방 행 버스에서 하차한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사먹었던 간식. 찹쌀로 만든 전통 찰떡류로, 캄보디아에서는 행운과 번영을 상징한다고 한다.

캄보디아, 특히 포이펫이 인신매매 사기범죄의 온상이 된 연유는 지리적 요인에 기인한다. 캄보디아의 국경도시 포이펫은 오랫동안 태국으로 인력을 보내온 거점도시였고, 인접해 있는 바탐방은 태국으로 향하는 노동자들의 집결지였다.

수많은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브로커를 통해서 농수산업, 제조업 등의 저숙련 일자리를 구해 국경을 넘었다. 기자 역시 프놈펜에서 포이펫으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했는데 그 안에는 흙먼지로 뒤범벅된 농부들로 가득했었다. 이들 중에는 정당한 절차를 거쳐 국경을 넘은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브로커를 통해 밀입국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과거 수십년 간 바탐방-포이펫 구간에서 캄보디아 노동자들을 태국으로 보내온 브로커들의 인적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스캠 조직들이 악용하면서 포이펫 일대는 이들의 본거지로 변해버렸다. ‘일자리’로 향하던 길도 ‘감옥’으로 향하는 길로 변해버렸다. 그 사이 캄보디아 포이펫도 전 세계 피해자들이 납치·감금되는 스캠 제국의 심장부로 악명을 떨치게 됐다.

포이펫 길거리 초입의 한 식당에서 촬영한 사진. 포이펫은 불교와 자이나교, 그리고 토속신앙이 결합된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사진 속 공간은 먼 길을 떠나는 이들의 안전을 비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인신매매 사기범죄 조직의 피해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개인지갑을 통해 가상자산을 거래하듯 손쉽게 사고 팔리고 있다. 누가 감히 인간을 팔고, 누가 감히 인간을 살 수 있겠는가? 사람을 자산처럼 여기는 스캠 제국의 심장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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