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는 인간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의사로서의 소명, 다른 하나는 생명의 근원을 향한 신앙의 서원이었다.
그 겨울의 바람은 아직도 내 몸이 기억하고 있다. 1983년 2월, 의과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나는 대구 국군군의학교에 입학했다. 2주간의 교육을 마친 뒤 경북 영천의 육군3사관학교로 이동해 6주간의 군사훈련을 받았다.
그해 2월의 바람은 혹독했다. 우리는 그것을 ‘말좆바람’이라 불렀다. 살을 파고드는 칼바람이었다. 아침 6시에 기상하면 사방은 아직 어둠에 잠겨 있었다. 연병장에 집합해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른 뒤, 각자 고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하얀 입김이 허공에서 흩어졌다. 낮에는 제식훈련과 총검술, 사격술, 각개전투, 유격훈련이 이어졌다. 얼어붙은 땅을 군화로 내리찍을 때마다 둔탁한 울림이 올라왔다.

내무반에는 2층 침대 네 개가 놓여 있었고, 여덟 명이 함께 생활했다. 실내에 둔 물이 얼어 있던 날도 있었다. 밤에는 양말을 신은 채 털모자로 발을 감싸고 잠을 청했다. 이불 속에서도 발끝의 감각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이 6주를 무사히 견디는 것만을 바랐다.
일요일이 되면 종교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천주교의 장소는 성 바실리오 성당이었다. 행군을 마치고 돌아올 때 멀리 푸른 성모상이 보이면 마음이 놓였다. 혹한 속에서 그 푸른 색은 하나의 표지처럼 서 있었다.

대구교구에서 파견된 최휘인 신부님과 암브로시오 수녀님이 교리를 가르쳐 주셨다. 훈련과 교리교육이 겹쳐 흐르던 시간 끝에, 부활절 날 약 70명의 의사들이 세례를 받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물음을 들었다.
“당신은 무엇을 원합니까?”
“신앙을 원합니다.”
“신앙은 무엇을 줍니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훈련을 마친 우리는 대구로 복귀했고, 중위 또는 대위로 임관했다. 의과대학 졸업식에서 했던 히포크라테스 선서-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다짐-가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나는 같은 시기에 두 개의 약속을 했다.
하나는 인간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의사로서의 소명, 다른 하나는 생명의 근원을 향한 신앙의 서원이었다.
세월은 흘러 나는 다시 군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며칠 전 43년 만에 육군3사관학교를 찾았다. 바람은 여전히 매서웠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2층 제대 위의 철제 십자가 앞에 앉아 있으니, 얼어붙은 물과 털모자로 발을 감싸던 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문답이 조용히 되살아났다.
의과대학 졸업생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잊지 못하듯, 나는 그날의 세례 문답을 잊지 못한다. 긴 시간을 돌아, 나는 다시 그 겨울이 시작된 강물 위에 서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