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의료는 선언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의료는 공간을 필요로 하고, 지속되는 관계를 요구하며, 법적 보호와 물적 기반 위에서만 반복 가능하다. 임시정부가 조직한 적십자와 간호 교육이 상징적으로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 실천의 기록이 빈약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의지의 부족이 아니라 조건의 부재였다.
의료의 선언과 의료의 실천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한다. 이 간극은 단지 역사적 불운의 문제가 아니다. 의료는 선의나 의지만으로 지속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며, 반복 가능성을 담보하는 조건을 필요로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임시정부의 의료는 구조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임시정부 역시 의료를 외면하지 않았다. 상해와 충칭에서 대한적십자사 조직을 선언하고, 간호원 양성을 시도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시도들은 체계적 의료 제도의 출발점이라기보다 국가가 갖추어야 할 윤리적 형식을 미리 그려본 시도에 가까웠다. 고정된 병원도, 지속 가능한 교육 체계도, 간호 인력을 보호할 법적 장치도 없었던 조건에서 의료는 반복 가능한 실천이 아니라 선언적 행위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이 점에서 임시정부의 의료 사업은 그 성취보다 한계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한계는 의지의 부족이 아니라 조건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국토 없는 의료는 공간을 가질 수 없고, 국민 없는 의료는 연속성을 가질 수 없으며, 주권 없는 의료는 의료인을 보호하지 못한다. 결국 의료는 선언으로 시작되었으되 실천으로 축적되지는 못했다.
오늘날 우리는 국가가 있는 의료를 살아간다. 법은 의료인을 보호하고, 제도는 실패를 흡수하며, 시스템은 의료를 개인의 선의가 아닌 공적 기능으로 만든다. 그러나 바로 이 안정성 때문에 의료는 쉽게 당연한 것으로 오해된다. 그 결과 의료의 비용은 보이지 않고, 노동은 투명해지며, 의사는 종종 ‘돈벌이의 주체’로 환원된다.
이 인식의 전도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국가 없는 의료가 할 수 없었던 것을 가능하게 만든 조건-국토, 국민, 주권-이 오히려 의료의 무게를 가볍게 느끼게 만든다. 선언조차 하기 어려웠던 시대와 실천을 당연시하는 시대 사이에서 의료는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소비의 대상이 된다.
임시정부의 의료는 미완이었다. 그러나 그 미완은 실패가 아니라 전제 조건의 결핍이었다. 그리고 오늘의 의료가 완전한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개인 의사의 덕이 아니라 국가가 제공한 조건 덕분이다. 이 사실을 망각할 때 우리는 의료를 오해하고, 의사를 오독한다.
의료는 언제나 국가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국가 없는 의료는 윤리의 선언으로 남고, 국가 있는 의료는 실천의 의무로 남는다. 그 사이의 간극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과거를 낭만화하거나 현재를 폄훼할 뿐이다.


정독하여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