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오디세우스는 왜 세이렌의 노래를 들었는가

AI 생성 이미지

영화에서 세이렌의 장면을 보았다. 선원들은 귀에 밀랍을 막고 노를 젓는다. 오디세우스만은 돛대에 단단히 묶여 있다. 그런데 한 선원이 귀에서 밀랍을 빼낸다. 그는 세이렌의 노래를 들은 뒤 그들에게 다가가고, 결국 목숨을 잃는다. 이 장면에서 이상한 것은 정작 세이렌이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노래에 홀린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만 본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세이렌의 유혹을 아름다운 목소리와 성적인 매력의 이야기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오디세이아』에는 키클롭스, 키르케, 세이렌,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같은 괴물과 마녀가 등장한다. 호메로스의 다른 작품 세계를 생각하면 조금 의외다. 인간을 닮은 올림포스의 신들을 제외하면 그의 세계에는 후대의 민담이나 설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귀신이나 괴물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과 인간의 삶을 묘사하는 호메로스의 세계는 대체로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

그런데 오디세우스가 들려주는 귀향길의 이야기는 다르다. 그곳에는 외눈박이 거인이 살고, 사람을 짐승으로 바꾸는 마녀가 있으며, 뱃사람을 노래로 유혹하는 세이렌이 있다. 현실의 지리와 인간의 세계에서 갑자기 환상의 세계로 넘어간다. 그래서 이 부분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보고라기보다 알레고리와 상징으로 읽어볼 수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오디세우스가 겪은 위험과 고난이 괴물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키클롭스도 그렇다. 말로도 힘으로도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포악하고 막된 사람을 만나 목숨을 빼앗길 뻔한 사람이라면, 그 상대가 기억 속에서 어느 순간 외눈박이 괴물처럼 커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괴물은 실제로 존재했던 어떤 생물의 기록이라기보다,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웠던 위험의 크기를 보여주는 형상일 수 있다.

연꽃을 먹고 현실을 잊어버리는 장면은 마약이나 다른 중독에 빠진 사람과 닮았다. 키르케에게 붙잡혀 돼지가 된 선원들은 욕망에 빠져 인간다운 삶을 잃어버린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집을 떠나 낯선 곳을 떠도는 사람에게 주먹질과 싸움만 위험한 것은 아니다. 마약이나 술이나 성적 욕망에 빠져 자신의 삶을 망치는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세이렌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앞의 괴물들보다 대답하기 어렵다. 키클롭스는 폭력이다. 연꽃은 망각이다. 키르케는 욕망이다. 그런데 세이렌은 무엇인가. 아름다운 노래를 듣다가 죽는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인간을 죽음으로 이끄는 것은 아름다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세이렌의 노래를 다시 들어볼 필요가 있다. 호메로스의 세이렌은 오디세우스에게 자신들이 트로이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으며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세이렌이 파는 것은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앎이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바로 이 점을 붙잡았다. 그는 세이렌의 유혹을 지식에 대한 인간의 욕망으로 읽었다. 인간에게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아니 때로는 그보다 더 강하게 알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고전학자 이태수의 해석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의 「세이렌과 무사」에서 세이렌은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뮤즈(Muse)에 가깝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오디세우스가 이미 떠나온 『일리아스』의 영웅적 세계를 다시 불러낸다. 그러므로 세이렌의 유혹은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누구였는지 기억하라.”

트로이의 영웅이었던 오디세우스. 전쟁과 명예와 승리의 세계에서 살았던 사람.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세이렌은 그가 가장 익숙했던 세계의 노래를 다시 들려준다.

오디세우스는 그 노래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귀를 막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돛대에 묶었다. 이것이 세이렌 이야기에서 가장 기묘하고도 중요한 장면이다. 그는 노래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래가 부르는 세계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문학을 읽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는 소설 속으로 들어간다. 영웅의 승리에 환호하고 그의 죽음에 슬퍼한다. 주인공의 사랑을 자신의 사랑처럼 느끼고 그의 공포를 자신의 공포처럼 느낀다. 그러나 책을 덮으면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오디세우스의 밧줄은 어쩌면 그 거리를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허구는 현실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거짓말도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너무 복잡해서 쉽게 보이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과 유혹을 괴물과 마녀와 세이렌의 모습으로 보여줌으로써, 허구는 때때로 현실보다 더 진실한 것을 말한다. 그래서 『오디세이아』의 괴물들은 단순한 괴물이 아니다. 그들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위험이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세이렌은 그 가운데 가장 특별하다. 그녀가 유혹하는 것은 단순히 육체가 아니다. 앎이다. 영광이다. 과거의 자기 자신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이야기 그 자체다.

오디세우스는 그 노래를 들었다. 그러나 그 노래를 따라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살아서 집으로 돌아갔다.

▼ 아시아엔 후원계좌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아시아엔과 아시아 저널리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은행 1005-601-878699 (주식회사 아자미디어앤컬처)

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
AI 에이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