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 명예교수는 한국 의학교육의 현대화와 국가시험 개혁, 교수개발에 큰 족적을 남긴 의학교육자다. 이 글은 백 교수의 제자이자 오랜 동료로 지낸 필자가 스승과 함께한 거의 50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쓴 추모문으로, 2026년 영문 학술지에 ‘Personal View’ 형식으로 게재됐다. “의학교육의 목적은 좋은 의사를 만드는 것”이라는 백 교수의 신념이 강의실을 넘어 한국 의학교육의 제도와 다음 세대 의사들에게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제자의 기억을 통해 전한다. <편집자>

백상호(1934~2026)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 명예교수는 나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이자 전문직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스승 가운데 한 분이다. 1979년 3월 서울대 의대 신입생 입학식에서 처음 만났고, 10여년 뒤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던 성기준 교수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백 교수는 나를 자신의 연구실로 받아들여 학위를 마칠 때까지 지도했다.
학생에서 동료와 친구로, 거의 50년 가까이 곁에서 본 백 교수는 한국 의학교육의 제도를 바꾼 교육자이면서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깊이 살핀 스승이었다. 그의 수많은 직책과 업적 가운데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은 세 가지다. ‘좋은 의사’를 길러내야 한다는 교육철학, 한국 의학교육의 현대화, 그리고 의사 국가시험의 개혁이다.
“의학교육의 목적은 좋은 의사를 만드는 것이다.”
백 교수의 교육철학은 이 한 문장에 압축돼 있었다. 의학교육은 과학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궁극적인 목적은 좋은 의사를 만드는 데 있다고 했다. 그의 대표적인 글 ‘좋은 의사를 만드는 길(The way of making a good doctor)’에서도 좋은 의사는 의학지식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품성, 가정교육, 일반교양, 전문지식, 윤리적 가치, 평생의 자기수양이 어우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상능력과 도덕성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철학은 나의 교육관에도 스며들었다. 해부학 실습실에서 의대 1학년 학생들을 가르칠 때마다 나는 단순히 인체 구조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의사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식은 언제나 실제에 쓰여야 한다.”
해부학자였던 백 교수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에서 보건의료인 교육에 관한 전문교육을 받은 뒤 한국 의학교육 개혁의 중심에 섰다. 통합교육과정, 교수개발, 의학교육 연구, 국가시험 개혁, 의학교육 인증을 따로 떨어진 사업이 아니라 한국 의학교육을 현대화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보았다.
그의 교육혁신을 처음 경험한 것은 1979년 해부학 수업이었다. 당시 해부학은 인체 구조와 명칭을 외우는 과목에 가까웠다. 그러나 백 교수는 오버헤드 프로젝터에 투명 필름을 여러 장 겹쳐 얼굴 윤곽, 동맥, 신경을 차례로 보여줬다. 학생들이 색연필로 하나씩 따라 그리다 보면 복잡한 구조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해부학과 임상의학을 곧바로 연결한 방식이었다. 두개골과 두피를 배울 때 신경외과와 영상의학과 교수를 실습실로 불러 경막외혈종과 경막하혈종을 실제 환자 사례와 함께 설명하게 했다. 레슬링을 하다 손톱에 두피가 긁힌 아이에게 감염이 생긴 사례를 통해서는 두피의 층별 구조가 임상에서 왜 중요한지를 보여줬다. 해부학은 더 이상 외워야 할 과목이 아니라 의학을 이해하는 언어가 됐다.
오늘날 말하는 ‘수직통합교육’이나 ‘사례 중심 교육’을 그는 그런 용어가 한국 의학교육계에 자리 잡기 훨씬 전부터 실천하고 있었다.
그의 활동은 강의실 밖으로 이어졌다. 백 교수는 1983년 창립된 한국의학교육학회의 태동과 발전에도 깊이 관여했다. 창립 뒤 약 6년간 활발하지 못했던 학회는 1989년 재정비를 거쳐 한국 의학교육의 대표 학술단체로 성장했다. 백 교수는 전국적인 교수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의대 교수들을 교육했고, 그 교수들은 다시 다음 세대의 의사를 길러냈다.
그가 강조한 또 하나의 원칙은 “평가가 교육을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교육과정을 바꿔도 시험이 그대로라면 교육은 결국 과거 방식으로 돌아간다고 봤다. 교수개발과 의학교육 연구, 인증제도와 함께 보건의료인 국가시험의 정비를 한국 의학교육 현대화의 핵심 축으로 본 이유다.
단순히 얼마나 많이 외웠는지를 묻는 시험에서 벗어나 실제 의사에게 필요한 역량을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역량 중심 평가와 임상수행능력 평가로 이어졌다. 오늘날에는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새로운 발상이었다. 백 교수는 교육철학을 강의실에 머물게 하지 않고 국가 제도의 변화로 연결한 선구자였다.
그러나 제도는 업적을 기억하고, 제자는 대화를 기억한다.
나는 한국 의학교육의 개혁자이기 전에 그를 나의 스승으로 기억한다. 박사과정 지도교수를 갑자기 잃고 백 교수 연구실에 들어간 뒤 나는 연구하는 법만 배운 것이 아니다.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과학적으로 글을 쓰며, 교육자로서 책임지는 법을 배웠다.
그가 나를 두고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안다”고 한 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평생 받은 칭찬 가운데 가장 크게 남아 있다.
백 교수의 조언은 길지 않았다. 성형외과 전공의 과정을 마친 뒤 내부 경쟁으로 진로를 고민하며 찾아갔을 때도 그는 내 말을 끝까지 듣고 잠시 침묵한 뒤 한마디 했다.
“섭섭하겠지만 놓아라.”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그 말이 어쩌면 내 길이 아니었을 선택에서 나를 자유롭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제자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기보다 제자가 정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보게 하는 스승이었다.
퇴임 뒤에도 매년 박사과정 제자들을 불러 모았고 비용도 자신이 부담했다. 제자들과의 인연을 끊지 않았다. 퇴임식에서는 “소나무 두 그루를 키우겠다”고 했다. 미래의 의사와 교육자를 길러내겠다는 뜻이었다.
돌아보면 그는 두 그루가 아니라 숱한 소나무를 키웠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의사들이 교수가 되고,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의 교육은 한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
백상호 교수의 가장 큰 유산은 어떤 직책이나 제도 하나가 아닐 것이다.
“좋은 의사를 만드는 것이 의학교육의 목적이다.”
평생 붙든 이 단순한 문장에 그의 교육철학과 실천, 제도개혁과 제자 사랑이 모두 담겨 있다. 그것이 백상호 교수가 한국 의학교육에 남긴 가장 오래가는 유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