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사람이 평생 짊어져야 할 상처가 있다. 어린 나이에 받은 수술. 믿었던 의료진에게 맡긴 몸.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장애. 그 경험은 한 사람의 삶을 바꾼다. 그러한 경험을 한 사람이 이후 환자 안전과 제도 개선을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먼저 그 목소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이해해야 한다. 고통에서 나온 문제 제기는 사회가 귀 기울여야 할 중요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개인의 비극에서 출발한 해결책이 사회 전체의 제도가 될 때에는 또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우리는 정말 더 안전해지는가?
예방의학에는 오래된 교훈이 있다. 건널목에서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어떤 상황에서 사고가 났는가”를 물어보면, 많은 사람이 보행신호를 지키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대답한다. 그렇다고 보행신호 때 건너는 것이 위험하다는 뜻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보행신호 때 길을 건너기 때문에 사고의 절대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다.
위험을 평가하려면 숫자 하나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분모를 보아야 한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고난도 수술을 많이 하는 의사, 응급환자와 중증환자를 맡는 의사는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 단순히 의료사고 건수만 공개한다면, 가장 어려운 환자를 치료한 사람이 가장 위험한 의사로 보일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통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의 문제다.
역사는 공개된 낙인이 가진 힘을 보여준다. 문화대혁명 시기 지식인들의 목에 걸린 죄패,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공개 망신 행렬은 사람을 하나의 이름표로 바꾸어 버렸다. 이름표가 붙는 순간 그 사람의 사정, 맥락, 공헌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오직 표식만 보게 된다.
물론 의료인의 책임은 엄격해야 한다. 반복되는 과실, 명백한 위법,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는 투명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고와 과실을 구분하지 않고, 위험을 감수한 결과와 무책임한 행위를 구별하지 않은 채 하나의 숫자로 공개한다면 그것은 안전을 위한 정보가 아니라 낙인이 될 수 있다.
“Damaged people damage others.” 상처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모든 상처받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상처받은 사람은 오히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우리는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기억해야 한다. “Hurt people heal people.” 중요한 것은 상처받은 사람을 비난하는 것도, 그 상처에서 나온 목소리를 절대화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맥락 없는 낙인이다. 안전한 사회는 모든 위험을 숨기는 사회도 아니고, 모든 실패를 공개적으로 처벌하는 사회도 아니다. 진정한 안전은 실패에서 배우되, 사람을 숫자 하나로 판단하지 않는 사회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