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사람을 알아보게 하는 것은 얼굴이 아니라 흉터였다”

어릴 때 매주 토요일이면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그때 보던 프로그램 가운데 오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디즈니랜드였다. 한 시간짜리 영화가 방영되곤 했다. 그중에 마크 트웨인 원작의 <거지왕자(The Prince and the Pauper)>가 있었다.
왕자와 거지가 우연히 만나 옷을 바꾸어 입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왕자는 거지가 되고, 거지는 왕자가 된다. 옷이 바뀌자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진다. 왕자는 왕궁에서 쫓겨나고, 거지는 왕자의 자리에 앉는다. 어린 나는 그것을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로 보았다.
그런데 이번에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를 보다가 오래전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디세우스도 거지가 되어 있었다.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오랜 세월 바다를 떠돌던 그는 마침내 고향 이타카로 돌아온다. 그러나 곧바로 자신이 왕이라고 밝히지 않는다. 아테나의 도움으로 늙고 초라한 거지의 모습으로 변장한다. 그래서 아들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아내 페넬로페도 알아보지 못한다.
왕인데 왕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왕의 옷을 입은 사람을 왕이라고 생각하고, 거지의 옷을 입은 사람을 거지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보았던 <거지왕자>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를 알아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늙은 하녀 에우리클레이아였다. 그녀는 오디세우스의 발을 씻겨주다가 다리에 난 오래된 흉터를 발견한다. 젊은 시절 사냥을 하다가 멧돼지에게 입은 상처였다. 그 순간 그녀는 알아본다. 거지로 변장한 사람이 오디세우스라는 것을.
나는 영화관에서 그 장면을 보면서 잠시 멈추어 생각했다. 그를 알아본 것은 얼굴이 아니었다. 흉터였다. 얼굴은 달라져 있었다. 옷도 달라져 있었다. 왕이라는 신분도 감추어져 있었다. 그런데 흉터는 그대로였다.
어쩌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매일 보는 얼굴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함께 살아온 시간, 한때 입었던 상처, 남들이 알지 못하는 삶의 흔적이 그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거지왕자>에서도 왕자와 거지는 옷을 바꾸어 입었다. 그러나 서로의 옷만 바꾼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의 삶을 살았다. 왕자 에드워드는 궁궐 밖으로 나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보게 되었고, 거지 톰은 왕궁 안에서 왕자의 삶이 얼마나 자유롭지 못한지도 알게 되었다.
마침내 두 사람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예전과 똑같은 사람은 아니다. 서로의 삶을 조금씩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거지왕자>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거지왕자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본 뒤 자기 자리로 돌아온 이야기이고,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다른 사람처럼 보였던 이야기다.
그러나 두 이야기에는 공통된 질문이 하나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그 사람인가? 옷인가. 얼굴인가. 이름인가. 왕이라는 신분인가.
오디세우스에게는 결국 흉터가 그를 알아보게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 <오디세이>를 다시 펼쳐보고 싶어졌다.
어릴 때 <거지왕자>를 보던 나는 옷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옷은 사람을 속일 수 있고, 얼굴도 사람을 속일 수 있다. 그러나 오래된 상처는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