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서 ‘민간외교가’로…권기식의 한중도시우호협회 10년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은 한중관계를 이야기할 때 정부 간 외교만 바라보지 않는다. 도시와 도시, 기업과 기업, 청년과 청년이 만나야 관계가 오래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가 2016년 한중도시우호협회를 만든 것도 그런 생각에서였다. 올해로 꼭 10년이다.
출발점은 기자였다. 권 회장은 1988년 인천일보 공채 1기로 입사해 줄곧 사회부 경찰기자로 활동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현장을 뛰는 습관도 이때 몸에 뱄다. 당시 경찰 주변에서는 그를 ‘독종’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번 취재를 시작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는 의미였다.
지역 기자였지만 시야는 일찌감치 해외로 향했다. 1988 서울올림픽 취재 과정에서 소련 선수단장과 인연을 맺은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1990년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 현지 취재에 나섰다. 한국 지방언론으로서는 드문 소련 현지 취재였다. 훗날 중국 곳곳을 직접 누비며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만드는 그의 ‘글로벌 현장주의’는 이 무렵부터 싹을 틔웠다고 볼 수 있다.
1995년에는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경기북부 지역을 취재했다. 지역기자는 중앙의 큰 담론보다 사람과 현장, 지역사회의 구체적인 움직임을 좇는다. 이후 청와대와 대학, 언론계 등을 거쳤지만 사람을 만나고 관계의 맥락을 읽는 기자의 습관은 그의 민간외교 방식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중도시우호협회 10년의 특징 역시 ‘현장형 네트워크’다. 중앙정부 관계가 냉각될 때도 지방정부와 기업, 대학, 문화계 인사를 연결하는 통로를 만들었다. 중국 여러 도시와 교류를 확대하고 경제·문화·청년 분야 협력을 추진했으며, 한중경제협력센터를 출범시키는 등 교류의 폭도 넓혔다. 한중관계가 정치·안보 현안에 따라 출렁일수록 민간과 지방 차원의 관계를 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
그에게 중국은 단순한 외교 대상도, 취재 대상도 아니다. 일본 시즈오카현립대에서 연구하고 중국 외교부 초청으로 베이징대와 칭화대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하며 중국을 안에서 들여다봤다. 이후에도 중국의 지방정부와 기업, 학계와 언론계를 꾸준히 오갔다.
최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인터넷판 런민망이 권 회장의 기고문을 게재한 것도 이런 활동의 연장선에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관영매체가 한국의 민간외교 인사가 쓴 국제정세 관련 글을 소개했다는 것은 그가 중국 사회에서 쌓아온 인적·언론적 접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권 회장이 요즘 특히 강조하는 분야는 청년이다. 경제적 이해만으로 이어진 관계는 상황에 따라 흔들릴 수 있지만, 젊은 세대가 서로 만나 상대 사회를 직접 경험하면 관계의 뿌리가 달라진다고 본다. 대학생 교류와 역사·문화 체험, 환경 분야 협력을 확대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지난 10년을 “한중관계의 풍파를 돛단배를 타고 헤쳐온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사드 갈등과 코로나19, 미중 전략경쟁 등으로 양국 관계가 여러 차례 출렁였지만 민간교류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의미다.
앞으로의 구상은 보다 구체적이다. 권 회장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한중관계가 정상화 국면에 들어선 만큼 경제·문화·청소년 교류에 더욱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한중도시우호협회는 중국에 14개 지회와 5개 경제협력센터, 1개 문화교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권 회장은 “한중도시우호협회를 한중 공공 및 민간교류의 가장 강력한 엔진이자 플랫폼으로 만들어가겠다”며 “한중 우호와 교류의 길을 가는 기업인과 청소년, 문화인들이 믿고 건널 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한중관계의 출발점은 신뢰와 존중이다. 1992년 수교의 정신과 수천년 교류의 역사가 양국 신뢰의 중요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동시에 서로 다른 정치·사회 체제와 선택을 존중해야 지속 가능한 관계가 가능하다고 본다.
권 회장은 신뢰와 존중의 기반 위에 경제와 안보 분야의 협력이 더해질 때 한중관계가 단순한 양자관계를 넘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까운 이웃일수록 차이를 없애려 하기보다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통의 이익을 넓혀가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10년이면 한 단체의 성과뿐 아니라 한계도 점검할 시기다. 한중도시우호협회 역시 앞으로는 교류 건수보다 무엇을 남겼는지, 지방정부와 기업 간 협력이 실제 사업으로 얼마나 이어졌는지, 한중 청년 간 지속 가능한 네트워크를 얼마나 만들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럼에도 지난 10년의 의미는 분명하다. 정부 간 관계가 얼어붙고 국제정세가 흔들릴 때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통로까지 닫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1988년 인천의 경찰서를 새벽부터 밤까지 뛰어다니던 젊은 기자는 30여년이 흐른 지금 중국의 도시와 기업, 청년과 문화인을 만나고 있다. 한겨레 기자로 사람과 현장을 좇던 권기식은 지금도 본질적으로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취재수첩에 적던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제는 한중 두 나라 사이에서 직접 연결하고 있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한중도시우호협회는 어쩌면 권기식이 기자 시절부터 지금까지 써 내려온 가장 긴 ‘현장기사’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