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 4월 어느 일요일, 서울 혜화동성당 백동관에 외국인 노동자 30여명이 찾아왔다. 몸은 아팠지만 병원 문턱을 넘기 어려웠던 사람들이었다. 서울대 의대 의료진과 학생들이 그들을 진료했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라파엘클리닉의 첫걸음이었다.
그로부터 29년. 라파엘이 다시 혜화동성당에서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린다.
재단법인 라파엘나눔은 10월 2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혜화동성당에서 ‘제12회 라파엘 사랑나눔 바자회’를 연다. 물건을 사고파는 하루의 장터지만, 그 끝에는 병원에 가기 어려운 이웃들의 진료와 치료가 있다.
라파엘의 의료나눔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1997년 시작한 라파엘클리닉은 이주노동자 무료진료를 이어왔고, 2007년 출범한 라파엘인터내셔널은 몽골·미얀마·네팔 등에서 현지 의료진 교육과 의료지원 사업을 펼쳤다. 2015년 설립된 라파엘나눔은 국내외 의료지원과 의료진 교육, 소외계층 지원을 뒷받침해왔다.
라파엘클리닉 20주년이던 2017년까지 무료진료를 받은 이주노동자는 77개국 23만6000여명에 달했다. 2019년에는 누적 진료 인원이 약 30만명으로 집계됐다. 숫자 뒤에는 건강보험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거나 언어와 비용 문제 때문에 치료를 미뤄온 사람들의 사연이 있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또 다른 의료 사각지대가 보였다. 공공병원들이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전환되면서 노숙인들이 치료받을 곳을 잃자 라파엘나눔은 2021년 명동성당 옛 계성여고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홈리스 클리닉을 열었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이웃들에게 대가 없는 의료를 나누겠다’는 취지였다.
이번 바자회 수익도 이 같은 국내외 의료나눔 사업에 쓰인다.
참여 방법은 어렵지 않다. 바자회 티켓은 한 장에 1만원이다. 현장을 찾아 필요한 물건을 사도 되고, 후원금을 보내도 된다. 9월 14일부터 10월 23일까지는 온라인 바자회도 열린다. 김치와 와인, 올해 새롭게 추가된 올리브오일 등을 구입할 수 있다.
무엇보다 라파엘나눔은 시민들의 ‘물품 나눔’을 기다리고 있다.
집 한쪽에 오래 보관해 둔 양주나 와인, 선물받았지만 사용하지 않은 물품이 있다면 이번에는 다른 쓰임을 생각해볼 만하다. 누군가에게는 쓰지 않는 물건 한 점이지만, 바자회에서는 의료 소외계층을 돕는 재원이 될 수 있다. 라파엘은 과거 바자회에서도 사용하지 않은 새 물품과 후원 제품을 기증받아 의료나눔 사업비를 마련해왔다.
물품 후원은 10월 16일까지 서울 성북구 창경궁로43길 7 라파엘센터 4층 대외협력팀으로 보내면 된다. 후원할 물품이 적절한지 궁금할 경우 먼저 사무국에 문의하면 된다.
라파엘의 역사를 돌아보면 거창한 시작은 아니었다. 의사 몇 명과 학생들이 일요일 하루를 내놓았고, 혜화동성당 한 공간에서 환자 30여명을 만난 것이 출발이었다. 그 작은 진료가 수십만명의 이주민을 만나는 의료나눔으로 자랐다.
그래서 이번 바자회에서 필요한 것도 반드시 큰 기부만은 아니다. 1만원짜리 티켓 한 장, 필요한 물건 하나를 사는 일, 집에 잠들어 있는 와인 한 병을 내놓는 일도 참여다.
29년 전 아픈 이주노동자들이 문을 두드렸던 혜화동성당에서, 오는 10월 25일에는 그들을 돕기 위한 사람들이 다시 모인다.
누군가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치료를 이어가는 힘이 될 수 있다. 라파엘 사랑나눔 바자회가 열리는 이유다.
바자회는 10월 25일 오전 10시~오후 5시 혜화동성당에서 열린다. 온라인 판매는 10월 23일까지다. 티켓은 1매 1만원이며 후원계좌는 신한은행 100-031-742996, 예금주는 (재)라파엘나눔이다. 금전 후원은 기부금 영수증 발급이 가능하다. 문의 02-744-7595, 라파엘센터 주소와 문의전화는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