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 사회

    혀끝의 경계, 언어는 어떻게 칼이 되었나

    시대는 달라져도 우리는 여전히 사람의 말에서 출신을 짐작하고, 억양에서 정체성을 읽으려 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언어 표지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를 넘어 사람을 재단하는 잣대가 되는 순간, 역사는 다시 위험해진다. 문명은 서로 다른 말을 알아듣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야만은 서로 다른 말을 심판하는 순간, 시작된다. 혀는 사람을 나누기 위해 존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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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예일대에 남은 아흔아홉 의사의 농담…역사에는 가정법이 없지만 기억에는 남는다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99세 박소회 선생이 미국의 예일대 학생들에게 강연 후 찍은 사진 며칠 전 아흔아홉 살의 선배 의사 박소회 선생님에게서 사진 한 장과 짧은 편지가 도착했다. 사진은 예일대학교에서 한국전쟁을 주제로 강연을 마친 뒤 학생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었다.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의사가 미국의 젊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 자리였다. 편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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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아흔다섯 어머니에게 배운 존엄의 의미…”내 머리가 왜 이렇게 짧아졌니?”

    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 투표소에서 필자 황건 교수의 모친 김경선 여사 며칠 전, 만 아흔다섯 살의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사전투표를 하러 갔다. 어머니는 이제 혼자 걸을 수 없다. 화장실에 가실 때도 보호사의 부축을 받아야 한다. 기억력도 많이 떨어지셨다. 하지만 투표만큼은 꼭 하셔야 한다고 생각하셨는지, 투표소에 들어가실 때만큼은 표정이 무척 진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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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배재고 응원 논란을 보며 50년 전 ‘우리의 함성’을 떠올리다

    나는 1973년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04년 설립된 우리 학교는 당시 농구·야구·아이스하키의 강호였다. 학교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오전 수업만 마치고 장충체육관 농구장, 서울운동장 야구장, 동대문 아이스링크로 달려가 응원했다. 체육시간에 응원 연습을 하는 일도 흔했다. 그 시절 농구는 휘문, 용산, 경복이 우승을 다투었다. 휘문은 ‘신동파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1973년 어느 날, 휘문과 경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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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화의 무게’…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책임을 묵묵히 감당하며 걸어온 삶의 궤적이다

    개미고개 기념비 <사진 황건> 얼마 전 개미고개를 찾았다. 이곳에는 “The Splendor of Peace and Freedom”이라는 문구와 함께 미 제21보병연대의 전적을 새긴 기념탑이 서 있다. 1950년 7월 천안전투 이후, 리처드 스테펜스 대령이 이 낮은 능선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닷새 동안 지연시켰던 곳이다. 그러나 내 발길을 붙잡은 것은 기념탑보다도 작은 조형물이었다. 바위에 꽂힌 총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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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제2연평해전 24주년…”의무병이 있는 곳이 곧 의무실이었다”

    제2연평해전 박동혁 병장 어제는 6월 29일. 2002년 제2연평해전이 있었던 날이다. 얼마 전 찾은 서해수호관에서 나는 참수리 357호를 다시 만났다. 선체 측면에는 벌집처럼 총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사진으로는 여러 번 보았지만, 실제로 마주한 탄흔은 달랐다. 작은 경비정이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서 치열한 공격을 받았는지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오래 전에 보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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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잊지 말라”…삼전도 치욕 겪은 ‘남한산성 한남루’의 마지막 주련

    남한산성 한남루 <사진 황건> 보훈의 달이 끝나가는 6월의 어느 날, 남한산성을 찾았다. 여러 번 올랐던 성곽길이지만, 이날 내 발걸음을 붙잡은 곳은 성벽이 아니라 한남루(漢南樓)였다. 정조 22년(1798), 초대 광주유수 홍억(洪檍)이 한남루를 증축하면서 여덟 폭의 주련을 걸었다. 네 폭은 누각 앞기둥에, 네 폭은 안쪽 기둥에 남아 있었다. 한 구절 한 구절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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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스무살에 전쟁을 겪은 어머니는 탱크보다 꽃을 먼저 보셨다

    나는 휠체어를 밀며 말했다. “어머니, 탱크 앞에서 사진 찍으셔요.” 그러나 어머니의 눈길은 탱크가 아니라 작은 화분에 머물렀다. “어쩌면 이렇게 예쁘냐.” <사진 황건> 오늘은 어머니를 모시고 인하대병원 외래에 다녀왔다. 대장암 수술을 받으신 지 꼭 1년. 만 아흔다섯의 어머니는 휠체어를 타고도 여전히 세상 구경을 좋아하신다. 진료를 마치고 문득 생각난 곳이 있었다. 의사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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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해자가 메워진 날, 역사는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사카성 해자가 메워지던 날, 높은 성벽과 거대한 천수각을 자랑하던 난공불락의 오사카성. 그러나 평화협정이라는 이름 아래 가장 강력한 방어선이었던 해자가 메워지기 시작했다. 이 그림은 성을 지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성벽만이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기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준비와 경계심이라는 사실을 역사적 한 장면으로 보여준다. <AI 생성 이미지> 오사카성에 가본 적이 있다. 임진왜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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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어깨의 태극기, 명예와 책임을 달다

    <더 라스트 캐슬>에서 로버트 레드포드 날씨가 약간 선선할 때면 나는 국방색 겉옷을 입는다. 왼편에는 의무사령부 견장을, 오른편에는 위장태극기를 벨크로로 부착한다. 견장에 사용하는 일반 태극기는 흰 바탕에 붉고 푸른 태극, 그리고 건곤감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반면 위장태극기는 전투복과 같은 국방색 계열의 고무 재질로 만들어져 있다. 전장에서는 국기조차 적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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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오늘 6.25전쟁 76주년…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수많은 전사통지서

    김일성 박헌영이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 머릿말 김일성 박헌영이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 2번째 김일성 박헌영이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 3번째 김일성 박헌영이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 끝부분 모스크바 크레믈리. 유엔평화기념관 진열장 속 네 장의 편지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존경하는 이오시프 스탈린 동지에게.” 나는 한참 동안 내용을 읽지 못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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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인천 재활용센터에서 발견된 다리, 6.25참전 웨버 대령·참군인 이종명 중령의 다리

    윌리엄 E. 웨버 대령. 한국전쟁에서 한 팔과 한 다리를 잃었지만 그는 다시 군복을 입고 복무를 이어갔다. 결국 장성에 올랐고, 전역 후에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권익을 위해 헌신했으며,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건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부산 유엔평화기념관에서. 며칠 전 재활용센터에서 절단된 다리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사람들은 의료폐기물 관리의 허점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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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내일 6·25전쟁 76주년, 던컨의 사진 속 총구는 적을 향했지만 마음은 아이를 향했다

    오늘은 6월 24일이다. 내일이면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6년이 된다. 며칠 전 부산 유엔평화기념관에서 데이비드 더글러스 던컨(David Douglas Duncan)의 기증사진전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전쟁 사진 가운데 오래 발걸음을 붙든 것은, 총을 쏘는 병사도, 돌격하는 부대도 아니었다. 참호 한쪽에 앉아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있는 두 어린아이였다. 아이들의 머리에는 병사의 철모가 씌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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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스파르타의 기억은 어떻게 한반도에 도착했나”…테르모필레에서 하로스까지,

    테르모필레 전투의 상징이 된 스파르타 호플리테스. 스파르타는 단순한 도시국가의 이름을 넘어 ‘물러서지 않는 전사’라는 문화적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사진 황건> 작년 그리스를 방문했을 때, 나는 테르모필레(Thermopylae)협곡에 서 있었다. 좁은 길목을 사이에 두고 대군에 맞섰던 스파르타 전사들의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역사였지만, 현장의 공기는 교과서 속 서술과는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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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태백중학교 열여덟 소년은 군번줄 목에 건 채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다”

    태백중 학도병 <사진 황건> 먼 길을 달려 태백중학교 학도병기념관을 찾았다. 기념관은 태백중학교 운동장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는 학생들이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그 곁에는 충혼탑과 열여덟 명의 학도병 동상이 서 있었다. 총을 들고 전진하는 학생도 있었고, 수류탄을 움켜쥔 학생도 있었으며, 태극기를 높이 든 학생도 있었다. 청동으로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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