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목요일 미사 뒤의 성당은 깊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십자가는 자색 천으로 덮여 있었고, 성가정의 성상은 붉은 천 아래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감실은 열려 있었으나 텅 비어 있었고, 성체조배실은 전날 세족례에 참여한 어린이의 손끝 실수로 문까지 잠겨 있었다. 그 안에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충만함 속에 서 있었다. 도상이 사라진 자리에서야, 주인의 부재가 더 강하게 다가왔다.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았던 ‘스투파의 숲’ 특별전이 떠올랐다. 불상을 조각하지 않던 시대, 빈 법좌와 보리수, 그리고 불족적(佛足跡)이 부처의 자리를 대신했다. 부처의 얼굴은 없었지만, 발자국 하나에 그의 존재 전체가 담겨 있었다. ‘형상의 부재’가 오히려 존재의 깊이를 만들어내던 시대.
그 중심에는 부처가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긴 말이 서 있다.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라.” 스승은 떠났고, 제자들은 스스로 걸어야 했다. 부처의 부재는 결코 공백이 아니라, 수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기독교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 후,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어떤 이는 숨어 떨었다. 성당의 자색 천, 빈 감실, 닫혀버린 조배실 문은 그 시기의 공기를 그대로 닮아 있었다. 스승이 부재한 시간은 혼돈이었지만, 그 시간 덕분에 제자들은 다시 ‘기억’과 ‘말씀’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부재 속에서야 비로소 “그는 다시 살아났다”는 믿음의 불씨가 켜졌다. 스승이 사라졌기에, 제자는 자신 안에서 스승을 다시 찾게 되었다.
사실 이런 경험은 종교의 세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외과의로 살아온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수술실에서 선배가 바로 옆에 서 있을 때보다, 어느 순간 더 이상 누군가의 그림자에 기대어 설 수 없을 때, 비로소 손끝의 책임과 내면의 스승이 깨어난다는 것을.
부재는 공백이 아니라 성숙의 시작이다. 불상 없는 법당에서 제자들은 부처의 걸음을 상상하며 길을 찾았다. 십자가가 가려진 성당에서 제자들은 주인의 부재 속에서 새벽의 기적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빈 감실 앞에서 조용히 되묻는다.
“스승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
그 답은 어쩌면 이미 나에게 주어져 있다. 불족적 앞에서처럼, 스승은 눈앞에 서 있지 않아도 우리가 다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부재의 방식으로, 깊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