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칼럼

부처님오신날 앞두고 생각하는 ‘노동’…”맡겨진 일을 묵묵히 감당하려는 태도”

파브르의 마지막 말과 백장선사의 밥그릇

부처님오신날을 앞두면 오래전 읽었던 선문답이나 고승들의 일화가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백장선사의 한마디다. “一日不作 一日不食(일일부작 일일부식).”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그 말은 단순한 근면의 구호가 아니었다. 늙은 선사의 일을 말리기 위해 제자들이 농기구를 숨기자, 그는 그날 끝내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노동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기 이전에 삶의 질서를 지키는 일이었고, 수행의 일부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말 끝에는 어린 시절 만화 <파브르 곤충기>에서 읽었던 낯선 라틴어가 이어져 생각난다. “라보레무스(Laboremus).”

그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한 채, 그 말은 오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훗날 그것이 라틴어로 “일하자”, “계속 자신의 일을 하자”라는 뜻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파브르의 그 말 역시 단순한 근면의 표어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출세나 경쟁의 언어도 아니었다.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자연을 관찰하며 살아간 한 노학자의 조용한 다짐처럼 느껴졌다.

파브르와 백장선사 <AI 생성 이미지>

생각해 보면 파브르와 백장선사는 서로 너무 먼 사람들이다. 한 사람은 19세기 프랑스의 곤충학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당나라의 선승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말에는 묘하게 닮은 기운이 있다. 노동을 권력이나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품위와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는 노동을 둘러싼 거대한 언어 속에 살아간다. 노동은 때로 생존의 불안이 되고, 때로는 정치와 힘의 문제가 된다. 뉴스에서는 파업과 대립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분노하거나 피로해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 문득 잊히는 것이 있다. “인간은 왜 일하는가” 하는 오래된 질문이다.

파브르의 “라보레무스”와 백장선사의 “일일부작 일일부식”에는 상대를 제압하려는 목소리가 없다. 다만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묵묵히 감당하려는 태도가 있다. 그것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노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무너지지 않게 붙드는 노동에 가깝다.

어쩌면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감각으로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문득 파브르의 마지막 말과 백장선사의 밥그릇을 함께 떠올린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진료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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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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