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

평택 서해수호관 ‘천안함’의 철판을 만지며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 피격 사건은 2010년 3월 26일 밤 백령도 인근 서해상에서 발생, 해군 장병 46명이 전사했다. 이후 구조 작업 중 한주호 준위가 순직했고, 사건 조사 결과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에 의한 피격으로 결론 내려졌다. <편집자>

천안함을 공격한 어뢰 <사진 황건>

5월 15일 평택의 서해수호관(West Sea Protection Hall)을 찾았다. 서해수호관의 단체 견학은 일요일과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 오후 1시와 3시에 진행된다. 나는 오후 3시 견학보다 한 시간 반 먼저 도착해 해군회관 2층에서 개인 접수를 했다.

오후 3시 견학 인원은 모두 10명이었다. 홍익대학교 학군단 후보생 7명과 인솔 중령 1명, 그리고 나와 젊은 예비역 한 명이었다. 그는 2년 전에 군에서 제대했는데, 군 복무 당시에는 코로나 시기여서 이곳을 와보지 못했다고 했다. 시간을 내어 혼자 찾아왔다고 했다.

우리 일행을 인솔한 이는 흰색 해군 정복을 입은 젊은 여자 해군 중위였다. 정훈장교인 그녀의 안내를 따라 우리는 제2함대사령부 안으로 들어갔다.

천안함 <사진 황건>

먼저 제2연평해전 당시 피격된 참수리 357호를 보았다. 선체 곳곳에 남아 있는 총탄 자국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이어 호국관 전시장에서는 천안함 피격 사건의 원인에 대한 설명이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실제 한글 표기가 남아 있는 어뢰 추진체 부품과, 호주에서 시행된 수중폭발 실험 영상도 보여주었다. 어뢰 폭발로 발생한 거대한 공기방울이 선체 아래에서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배를 두 동강 내는 장면이었다. 아마도 오래 지속되어 온 이른바 ‘음모론’에 대해 과학적 설명을 제시하려는 듯했다.

천안함 <사진 황건>

이후 다시 차를 타고 인양된 천안함 선체가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나는 배 밑으로 들어가 절단된 부분을 올려다보았다. 찢긴 철판은 안쪽으로 말려 있었다. 손으로 직접 절단면을 만져보았다. 철판의 두께는 약 1cm 정도 되어 보였다. 학생 시절 들었던 “조선공학은 결국 용접공학이다”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 내 옆에 서 있던 젊은 예비역 친구가 작은 목소리로 철판의 휘어진 방향을 이야기하며 영화 <더 헌트>(The Hunt for Red Octover)를 언급했다. 나는 그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그는 잠수함 영화 속에서 내부 폭발과 외부 공격에 따라 선체의 변형 양상이 다르게 표현된다고 말했다. 영화 속 장면을 기억하는 젊은 세대의 언어와 실제 천안함 절단면의 물성이 묘하게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견학이 끝난 뒤 우리는 금세 흩어졌다. 나는 그 젊은 친구에게 커피 한 잔도 사주지 못했다.

천안함 <사진 황건>

그래도 마음 한편은 이상하게 든든했다. 전역 후에도 시간을 내어 서해수호관을 찾는 젊은이가 있었고, 초급장교가 되기 위해 학군단 제복을 입은 학생들도 있었다. 나라를 지키다 숨진 이들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아직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작은 희망처럼 느껴졌다.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 피격 사건은 2010년 3월 26일 밤 백령도 인근 서해상에서 발생, 해군 장병 46명이 전사했다. 이후 구조 작업 중 한주호 준위가 순직했고, 사건 조사 결과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에 의한 피격으로 결론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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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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