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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해 동안 잣나무를 붙든 친구…오현 스님 “그놈 미친놈이구나, 얼른 놓아버려야지”

화두도 마찬가지다. 화두는 문장이 아니라 문을 여는 손잡이인데, 사람은 손잡이만 꼭 쥐고 문 앞에 서 있다. 내 친구의 스무 해가 꼭 그러했다.
의사인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환자의 기능을 붙들고, 검사 수치를 붙들고, 영상 결과를 붙든다. 때로는 치료보다 먼저 놓아야 할 것이 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 예전의 몸으로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는 집착이다. 재활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되찾을 수 없는 것과 화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AI 생성 이미지>

내 가장 가까운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은 재활의학과 의사다. 불교 집안에서 자랐고, 우리나라에서 이름난 학자 가문의 후손이다. 학생 시절 그가 웃으며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 집은 가족 모임에서 박사학위가 없으면 발언권이 없어.”

물론 농담이었다. 그러나 농담은 대개 진실을 품고 있다. 학문과 성취, 지적 권위가 자연스러운 공기처럼 흐르는 집안이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여동생도 있었다. 단정하고 괜찮은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나는 감히 마음을 내보려 했으나, 서류심사에서 탈락할 수준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또한 청춘의 겸손한 기록이다.

그 친구는 학생 때부터 선불교 화두 하나를 붙들고 살았다.

“뜰 앞의 잣나무.”

조주 선사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조주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말했다.

“뜰 앞의 잣나무.”

수많은 사람이 이 짧은 답 앞에서 멈춘다. 왜 하필 잣나무인가. 왜 뜰 앞인가. 왜 철학적 질문에 식물로 답하는가. 내 친구도 그랬다. 의사가 되고, 환자를 보고, 세월이 흘러도 그 화두를 스무 해 가까이 놓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무산 조오현 선사를 찾아뵌 적이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말씀드렸다.

“제 친한 친구 중에 ‘뜰 앞의 잣나무’ 화두를 스무 해째 붙들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산 스님은 지체 없이 말씀하셨다.

“그놈 미친놈이구나. 얼른 놓아버려야지.”

짧고 단호한 이야기였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 뒤로 오래 생각했다.

우리는 대개 좋은 것을 붙들려 한다. 명예를 붙들고, 젊음을 붙들고, 직함을 붙들고, 과거를 붙든다. 심지어 진리와 깨달음마저 붙들려 한다. 그러나 붙드는 순간,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짐이 된다.

화두도 마찬가지다. 화두는 문장이 아니라 문을 여는 손잡이인데, 사람은 손잡이만 꼭 쥐고 문 앞에 서 있다. 내 친구의 스무 해가 꼭 그러했다.

의사인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환자의 기능을 붙들고, 검사 수치를 붙들고, 영상 결과를 붙든다. 때로는 치료보다 먼저 놓아야 할 것이 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 예전의 몸으로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는 집착이다. 재활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되찾을 수 없는 것과 화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조주의 답도, 무산 스님의 한마디도 같은 자리에서 만난다. 뜰 앞의 잣나무는 늘 거기 서 있다.

붙든다고 더 가까워지지 않고, 놓는다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봄이면 새순이 나고, 겨울에도 푸르다. 말이 없고, 설명도 없다. 다만 서 있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평생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을 더 붙드는 기술이 아니라, 언제 놓아야 하는지를 아는 지혜인지 모른다.

스무 해 동안 잣나무를 붙든 친구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가끔 내 손을 들여다본다. 지금 무엇을 쥐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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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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