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영화 <프로젝트 헤일 메리>를 보았다. 우정과 희생, 인류 구원의 서사를 담은 감동적인 SF 영화다. 그런데 끝난 뒤에도 마음 한구석이 오래도록 답답했다. 그 이유는 주인공인 학교 교사이자 생물학자 ‘라이언 그레이스’가 자신의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인류를 구하는 우주 미션에 강제로 투입되는 대목 때문이었다. 그는 ‘선택된 영웅’이 아니라, ‘동원된 자원’이었다. 기억까지 조작된 채 떠나는 그의 모습은, 아무리 영화적 설정이라 하더라도 결코 가볍게 넘길 장면이 아니다.
인류 전체의 생존이라는 거대한 명분 앞에서 개인의 의지나 동의는 너무나 손쉽게 무시된다. 역사는 이런 순간마다 사회가 전체주의 방향으로 미끄러져 내려갔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이 장면이 오히려 가장 현실적으로 두려웠다. 대의라는 이름은 언제나 그럴듯하지만, 그 뒤에는 종종 인간의 자유를 침묵시키고 도구화하는 냉혹한 구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오른 인물은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였다. 그는 인류를 먹여 살린 비료 생산법을 개발한 천재였지만, 동시에 독가스전의 창시자이기도 했다. 하버는 “국가가 죽어가는데 윤리는 사치”라고 말했다. 전쟁을 더 빨리 끝내는 것이 더 많은 목숨을 살리는 길이라며 자신을 정당화했다. 영화 속에서 인류를 구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레이스를 희생시키는 Eva Stratt의 논리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하버의 삶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그의 아내 클라라 임머바르가 남편의 독가스 개발을 반대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하버는 아내의 시신이 거실에 놓여 있던 그 밤, 전선으로 복귀해 독가스 실전 살포를 지휘했다. 대의라는 이름 아래 인간성까지 밀려난 순간이었다. 이것이 바로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는 말이 얼마나 잔혹하게 개인을 소모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실례다.
전체주의가 과학자와 의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체를 위해 개인을 도구로 쓴다”는 논리에 가장 적합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과학과 의학은 효율과 정확성을 제공하는 기술이기에, 권력은 이를 자연스럽게 무기로 삼는다. 나치의 의학 실험, 제국 일본의 731부대, 프리츠 하버의 독가스, 전시 정신의학의 정치적 남용은 모두 “국가를 위해”, “생존을 위해”, “대의를 위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윤리가 ‘나중에 생각할 문제’가 되는 순간, 과학은 전체주의의 기술자가 되고 의학은 인간을 살리는 일이 아니라 ‘사용’하는 일이 된다.
<헤일 메리>에서 많은 관객은 “지구가 멸망하니 어쩔 수 없지”, “그레이스가 갔으니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감상은 위험한 함정을 품고 있다. 대의를 위해 개인의 자유의지를 희생해도 된다는 식의 소영웅주의는 전체주의가 가장 그럴듯하게 사용하는 얼굴 중 하나다. 영화는 우정과 감동을 보여주지만, 초반의 폭력적 강제성을 가볍게 넘기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모르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사고”에 익숙해진다. 이는 의학의 기초가 되는 자기결정권, 자발적 동의, 인간 존엄성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럼에도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다. 강제로 출발한 그레이스는 마지막 순간, 거대한 대의를 넘어 오로지 자신의 자유의지로 새로운 희생을 선택한다. 억지로 떠난 영웅이 결국 자발적 결단으로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다는 점은, 인간이 윤리적 존재가 되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주는 듯하다. 자유의지 없는 희생은 폭력이지만, 스스로 선택한 희생은 인간적이다. 영화는 이 차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국가를 위해서”, “모두를 위해서”, “살고 보자”는 말은 언제나 가장 고상해 보이지만, 그 뒤에는 개인의 자유를 침묵시키는 폭력이 숨어 있을 때가 많다. 프리츠 하버가 걸었던 길, 그의 아내 클라라가 희생된 자리, 그리고 <헤일 메리> 속 강제된 우주비행은 모두 같은 질문을 던진다. 대의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자유를 빼앗아도 되는가? 과연 누구에게 그런 권한이 있는가?
나는 그 답이 분명하다고 믿는다. 아무리 위기가 크고 아무리 대의가 숭고해 보일지라도, 개인의 자유의지 위에 설 수는 없다. 그것이 무너지는 순간, 과학은 인간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사용하는’ 기술이 되고 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