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Infection & Chemotherapy’에 게재된 황건 교수의 논문 ‘St. Sebastian and the Epidemic Imagination: Why a Third-Century Martyr Still Matters in the Age of COVID-19’의 내용을 바탕으로, 일반인의 관점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핵심 내용을 정리해 소개한 것입니다.<편집자>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뒤흔들던 시기, 각국 사회는 공포를 견디고 고통에 의미를 부여할 상징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뜻밖에도 다시 주목받은 인물이 있다. 3세기 로마의 순교자 성 세바스티안이다. 그는 오랜 세월 전염병 환자들의 수호성인으로 불려온 존재다.
현대는 백신과 항바이러스제, 유전체 분석 기술까지 갖춘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바스티안의 이미지는 여전히 의미를 지닌다. 화살에 관통된 채 고통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의 모습은 전염병을 바라보는 인간의 심리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질병은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이 취약성과 생존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이야기와 상징 속에서 경험되기 때문이다.
고대 지중해 문화권에서는 보이지 않는 재앙을 ‘화살’로 표현했다. <일리아스>에서 아폴론이 화살로 전염병을 퍼뜨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초기 기독교는 이러한 상징을 이어받았고, 세바스티안이 화살에 맞고도 살아남은 이야기는 강렬한 은유로 자리 잡았다.
이 상징성은 14세기 흑사병 시기에 더욱 확산됐다. 유럽 전역의 공동체는 전염병의 ‘화살’을 견디고 살아남은 존재로서 세바스티안을 바라봤다. 만테냐, 귀도 레니 등 예술가들이 그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그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학이 무력했던 시대에 생존을 상상하게 하는 ‘정서적 백신’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전염병은 공포와 희망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세바스티안의 이미지는 바로 그 교차점에 서 있다. 상처 입고 노출된 몸은 공포를 상징하지만, 동시에 고통을 견디는 모습은 희망을 상징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팬데믹을 겪는 사회의 심리와 닮아 있다. 현대 의학이 질병을 치료할 수는 있어도, 대규모 재난이 가져오는 존재적 불안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이러한 상징적 필요는 코로나19 시기에도 다시 나타났다. 이탈리아, 스페인, 브라질, 필리핀 등에서는 세바스티안에 대한 신앙과 의례가 조용히 부활했다. 봉쇄 기간 동안 미사가 온라인으로 중계되고, 성직자들이 그의 유물을 들고 텅 빈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이는 의학적 효과와는 별개로, 집단적 불안을 견디기 위한 문화적 대응이었다.
의학적 관점에서도 세바스티안의 이미지는 의미를 지닌다. 그는 이상적으로 보이는 신체와 동시에 상처 입은 몸을 함께 보여준다. 이는 인간이 아무리 건강하고 강해 보여도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또한 치유는 단순한 신체적 회복을 넘어선다는 점을 시사한다.
코로나19로 중환자실이 포화되고 의료진이 극도의 피로에 시달리던 시기, 상처 입었지만 살아남은 세바스티안의 이미지는 강한 상징적 울림을 가졌다. 그는 한 차례 고통을 견뎌낸 뒤에도 다시 돌아와 불의에 맞섰다는 점에서, 의료진의 헌신과 회복력을 떠올리게 한다.
전문가들은 전염병을 단순한 생물학적 사건이 아니라 생물학·심리·사회가 결합된 복합적 현상으로 본다.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백신과 치료제뿐 아니라 공포, 낙인, 애도, 공동체 기억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흑사병에서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성 세바스티안의 상징성은 감염병이 결코 과학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영역임을 보여준다. 질병은 동시에 문화적이고 정서적인 사건이다. 이러한 인식이 앞으로의 팬데믹 대응 전략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