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

“정의는 법정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어쩌면, 한 장의 진단서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한 장의 진단서’…의사는 단지 병을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진실을 기록하는 마지막 사람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두 검사(Two Prosecutors)’를 아무 정보 없이 보았다. 보는 내내 살이 떨렸다. 영화 속에서 젊은 검사는 한 통의 편지를 붙잡고 진실을 찾아 나선다. 고문을 당한 것으로 보이는 수감자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그는 지방에서 모스크바까지 올라간다. 수많은 문을 통과하고, 끝내 검찰총장을 만난다.

그때 돌아온 대답은 뜻밖에도 단순했다. “수사를 하려면 의사의 진단서가 필요하다.” 그 말은 옳다. 고문을 입증하려면 신체의 손상이 기록되어야 하고, 그 기록은 의사의 몫이다. 법은 결국 몸 위에 남은 흔적을 통해 진실에 다가간다. 그러나 영화는 곧 그 말의 공허함을 드러낸다.

그 진단서를 써야 할 의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아마도 쓰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 정의는 법정이 아니라 단 한 장의 종이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나는 전문의를 받은 직후 1년 동안 안양의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했다. 어느 날, 인근 교도소에서 온 환자가 실려 왔다. 다른 재소자에게 맞아 얼굴뼈가 부러진 상태였다. 수술은 잘 되었다. 뼈는 정확히 맞추어졌다. 문제는 수술 후였다.

이런 환자는 반쯤 상체를 일으킨 semi-Fowler 자세를 유지해야 하고, 등을 두드려 가래를 뱉게 해야 한다. 그래야 무기폐를 막을 수 있다. 폐가 무너지지 않도록 돕는, 아주 기본적인 관리였다.

그런데 교도관들은 환자의 양손을 수갑으로 묶어 침대에 고정해 놓았다. 나는 설명했다. 이 상태로는 호흡이 제한되고, 폐합병증의 위험이 커진다고.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우리는 이 수감자를 도망 못 가게 지키러 온 것이지, 간병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 말에 나는 경악했다. 그 병상 위에는 두 개의 논리가 있었다. 하나는 도망을 막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숨을 지키는 것이었다. 수갑은 전자를 위해 존재했지만, 동시에 후자를 방해하고 있었다.

한 달쯤 후, 또 다른 교도소 환자가 왔다. 그는 물리치료실장의 이복동생이었다. 그날 병실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교도관들은 협조적이었고, 환자에게는 놀랄 만큼 친절했다. 같은 수감자였지만, 대우는 전혀 같지 않았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제도는 같아도, 인간은 같지 않다는 것을. 윤리는 원칙이 아니라, 관계에 따라 작동하기도 한다는 것을.

코로나 시기 함께 일했던 간호사로부터 얼마 전에 연락이 왔다. 지금은 청주의 한 소년원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의사가 은퇴하여 자리가 비었으니 와 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나는 갈 수 없었다. 대신 다른 의사를 소개했다. 그러나 그 역시 “청주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리고 이번 영화를 보고 나니 앞으로도 그런 곳에서 일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영화 속 젊은 검사는 끝내 진단서를 얻지 못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진단서를 쓸 수 있는 구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정의는 거기서 멈춘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의사는 단지 병을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진실을 기록하는 마지막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 기록이 사라지는 순간, 정의 역시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수갑은 탈출을 막는다. 그러나 동시에 폐의 팽창도 막는다. 문제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수갑을 풀지 않는 인간이다. 나는 아직도 수술 후 병상에서 숨을 쉬기 위해 몸을 일으키던 그 환자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리고 영화 속, 끝내 만나지 못한 한 의사를 떠올린다.

정의는 법정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어쩌면, 한 장의 진단서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두 검사>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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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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