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상상 속에서 작은 차담이 열렸다. 군종목사, 군종신부, 군법사, 그리고 나, 군의관이 둘러앉아 있었다. 거기에 한 철학자가 조용히 자리를 더했다. 제1차 세계대전 참호에서 스스로를 단련했던 철학자, 비트겐스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이었다.
목사는 말했다.
“은혜로 마친 하루입니다.”
신부는 덧붙였다.
“섭리입니다.”
법사는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인연이 성숙했을 뿐입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저는 매뉴얼대로 했을 뿐입니다. 출혈을 막고, 뼈를 맞추고, 봉합했습니다. 그런데도 ‘무사히 끝났다’고 느끼는 이 마음은 무엇입니까?”
나는 그에게 오래 전 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스물한 살 무렵, “세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에게는 나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문장을 붙들고 살았다는 이야기. 그것은 자기암시였을까. 만약 내가 “보이지 않는 손길이 나를 이끌고 있다”고 믿는다면, 정말 그렇게 되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솔직히 신뢰보다는 귀납에 가까운 사람이다.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말한 칠면조처럼, 어제까지 안전했으니 내일도 그러하리라 여기는 쪽에 더 가깝다.
철학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문장은 예언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세계가 당신을 지켜준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결심이지요.”
차담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각자의 침묵이 말을 대신했다.
나는 내일도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에어샤워를 지나 수술실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끝날 무렵, 다시 등 뒤의 시계를 볼 것이다.
세계가 나를 보호한다는 확신 때문이 아니다.
내가 오늘 맡은 몫을 다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무사히 끝났다”는 말은 설명도, 증명도 아니다.
다만 하루를 건너온 사람이 스스로에게 건네는 조용한 인사다.
그리고 나는 내일도 그 인사를 기다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