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법현 스님, 열린선원 원장] 동기(同期)는 벗이나, 동창생, 군대 훈련을 같이 받은 사람들을 일컫는다. 아마도 한 스승 아래에서 같은 공부를 오래 한 이들은 애틋하고 따뜻하며 때로는
Author: 법현스님
[법현스님의 동행] 마음을 나타내는 말 제대도 이해하려면
[아시아엔=법현 스님, 열린선원 원장] 옛날 어떤 젊은 수행자가 있었다. 그는 아주 계율을 잘 지키고 참선수행을 열심히 하였다. 그야말로 불교의 모범생이었다. 그가 있는 사찰에 열심히 다니던
[법현스님의 동행] 메르스도 한마음으로 뭉치면 이길 수 있어
[아시아엔=법현스님 열린선원장] “멈췄거라, 어디를 가는 게냐. 서라!” “다른 사람에게 멈추라고 하지 말고 헐떡이는 네 마음부터 멈춰라!” 나쁜 스승에게 잘못된 가르침을 받고도 어리석어 그것이 진실인 줄
부처님오신날, “이웃종교와 만나 인사하고 밥먹으면, 그게 천국이고 극락이지요”
[아시아엔=법현스님 열린선원 원장] 7년 동안이나 가뭄이 들어 아무 것도 살아남지 않은 것 같은 사막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말라 비틀어져 도저히 살아날 것 같지 않았던 바위틈의 이끼도
법현스님, 변선환 목사 20주기 추모사 “이웃종교간 대화는 부처님 최고의 가르침”
[아시아엔=법현 열린선원 스님,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종교간대화위원장] 20년 전 이 땅의 다른 종교들이 이웃종교로 더 가까이 살아가게 하는데 커다란 마중물 역할을 하신 ‘일아’ 변선환 목사님 영전에 깊은
몽골 ‘바양노르솜’ 사막이 ‘푸른 숲지대’로 탈바꿈한 사연
“만나고 대화하면?이해하게 됩니다.?물방울이 사막을 적셔 기화요초(奇花妖草) 피워내듯” 우리?NGO인 ‘푸른 아시아’와 ‘푸른 지구’ ‘호수연대’가?바양노르솜 지역에 함께 하면서 변화가 일어난 겁니다. 자원봉사자들은 나무를 심으면서 현지인을 고용해서
[법현스님의 즉문즉설]소동파 무릎 꿇린 승호대사 ” 내 기합소리가 몇근이나 되겠소?”
적벽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적벽부>(赤壁賦) 등으로 중국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동파(東坡)거사 소식(蘇軾, 1037~1101)은 “아무리 많은 글을 읽어도 율(律)을 읽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을 어렵게 하는데
[즉문즉설 법현스님의 동행] 아빠, 아버지, 아버님···당신이 너무 그립습니다
스승이요 벗인 당신을 불러봅니다 [아시아엔=법현스님 열린선원 원장] 내 고향은 전남 화순군 남면 검산리 산골마을이다. 산길을 지나 마을 몇 개 너머로 어머니가 어린 시절을 보내신 외갓집이
[즉문즉설 법현스님의 동행] 자비경이 가르치는 547 지혜
[아시아엔=법현 스님?열린선원 원장] 세상에는 여러 가지 믿음의 전통이 있다. 각 나라의 민족마다 각각의 신앙이 있다. 그 가운데는 거대종교로 자리 잡은 것이 있고 자그마하게 씨족신의 형태로
[스님이 교황님께] 법현 “방한 큰뜻 벌써 잊어 안타깝습니다”
[아시아엔=법현 스님] 먼저 교황님과 교황님의 지도아래 사목하시는 여러 신부, 수녀님들의 사랑으로 온 누리의 가톨릭인들이 슬기와 사랑 가득한 삶 사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교황님이?한국을 다녀가신지 두달 반이
[법현스님의 동행] 화내는 이는 도를 이루지 못한다
수행하는데 견디고 참는 것이 제일이라. 부처님의 아들인 라훌라가 사리뿟따 존자를 따라 수행정진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왕사성으로 들어가 걸식을 하고 있는데, 어떤 키 큰 사내가
[법현스님의 동행] 숨 쉬는 데에도 삼천 가지 품위가 들어있다
눈이 왔을 때 첫 길을 가는 이 발걸음을 어지럽히지 말자 고타마 싯타르타는 세속 생활에서는 참 평화를 얻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왕궁을 떠나 출가를 결행하여
[법현스님의 동행] 모름지기 다섯 가지를 갖춰야 비구이다
불교계에는 나라와 국민을 위한 기원법회라는 형식의 행사가 있다. 이 법회는 대통령 내외와 정관계 인사들 및 불교계 종단의 총무 원장을 비롯한 수장들, 스님 및 재가불자 지도자들이
[법현 스님의 동행] 더럽혀진 물은 아까워하지 않는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남몰래 착한 일을 많이 하기로 이름난 제자는 라훌라다. 그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가하기 직전에 낳은 아들이다. 우리말의 ‘애물단지’ 정도의 뜻을 가진 ‘라훌라’가
[법현 스님의 동행] 어떻게 살 것인가
한국전쟁 당시 한암(법명; 중원) 스님은 오대산 상원사에 주석하고 계셨다. 스님은 현재 태고종이 되어 있는 당시 조계종의 제2세 종정으로 추대되었으며, 지금의 조계종에서도 제1세 종정으로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