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현 스님의 동행] 어떻게 살 것인가

한국전쟁 당시 한암(법명; 중원) 스님은 오대산 상원사에 주석하고 계셨다. 스님은 현재 태고종이 되어 있는 당시 조계종의 제2세 종정으로 추대되었으며, 지금의 조계종에서도 제1세 종정으로 모시고 있다. 지금 조계종은 한암, 석우, 효봉 스님의 세 분 초대 종정을 모시고 있어서 세인들의 의아심이 있으나 이는 당시의 사정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다. 어쨌든 한암 스님은 조계, 태고 양 종단에서 모두 추앙 받고 있는 큰스님이다.

한암 스님에 관한 일화가 많지만, 그 중 한국 전쟁 때 스님께서 주석하고 있는 상원사가 인민군의 은신처가 될지 모른다는 이유로 사찰을 불태우려는 것을 막은 일화는 특히 유명하다.

당시 군사 작전에 따라 상원사를 불태우려고 온 국군 장교에게 스님은 “장교님은 군의 임무에 충실하시고 나는 부처님 제자로서 나의 임무에 충실할 뿐이니 괘념치 말고 절을 불태우라.”하시며 법당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선정에 들었다.

국군 장교는 너무나 숙연하여 차마 상원사를 태우지는 못했으나 군사 작전 명령을 무시할 수만도 없어서 법당 문짝만 떼어내 병사들과 함께 태우고 돌아갔다. 뒷날 수복이 되어 돌아와 보니 법당에 한암 스님이 그대로 앉아서 열반에 드신 상태로 계셨다.

그때 열반에 드신 모습을 그 군인이 찍은 사진이 지금도 남아 있다.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자신의 할 바를 다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스님을 생각하면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히말라야 산 속에 진리를 탐구하는 청년이 있었다. 어려서 그는 설산동자라고 불렸다. 그는 커서 부처가 되기 위해 피나는 수행을 하고 있었다. 눈 덮인 히말라야 산록에서 정진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어디선가 청량한 진리의 소리가 들려 왔다.

세상 모든 것은 덧없으니
그것은 곧 나고 죽는 이치일세
諸行無常
是生滅法

청년은 시 읊는 소리를 듣고 무한한 기쁨을 느꼈다. 소리가 나는 쪽을 살펴보았으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 시를 읊었을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나무 위에 사람 잡아 먹는 귀신인 나찰이 있을 뿐이었다. 설마 저런 나찰이 그런 시를 읊었을까 하면서도 청년은 나찰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말했다.

“어디서 그렇게 훌륭한 진리의 소식을 얻었소? 그 소리를 듣고 내 마음은 매우 기뻤소. 아무래도 다음 구절이 있을 것 같은데 그 나머지마저 읊어주실 수 없겠소”

그러나 나찰은 “무슨 소리야? 내가 시를 읊다니······ 나는 그런 적이 없어. 배가 고파 헛소리를 했다면 몰라도.” 하고 뚝 잡아뗐다.

청년은 더욱 더 정중하게 말했다.
“그러지 말고 제발 나머지를 알려주시오. 일러만 준다면 평생동안 당신을 스승으로 잘 모시겠습니다.”

그러자 나찰이 말했다.
“나는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그래 너는 시나 들려 달라는게냐”
청년이 그 말을 듣고 물었다.
“당신은 어떤 음식을 먹습니까”
“내가 먹는 것은 사람의 살덩이고 마시는 것은 더운 피다.”

이 말을 들은 청년은 결심하고 말했다.
“나머지 구절을 들려준다면 내 몸을 당신에게 바치겠습니다.”
그랬더니 나찰이 물었다.
“시 한 구절과 몸을 바꿔?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는가?”

무상無常한 몸을 버려서 금강과 같은 굳센 진리의 몸을 얻자고 생각한 청년은 결연히 말했다.
“내 말을 믿지 못하오? 그러면 내가 나무 위로 올라갈 테니 그대가 나머지 구절을 들려주고 나면 떨어지는 나의 몸을 그대가 먹으시오.”
이 말을 듣고 나찰이 나머지 구절을 들려주었다.

나고 죽음이 없어지면
고요하고 쉬어 즐거움이 되리
生滅滅已
寂滅爲樂

청년은 나머지 게송을 듣고 더욱 환희심이 나서, 다음 사람을 위해 바위 위에 그 시를 다 새겨놓고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몸을 던졌다. 그러자 나찰이 안전하게 받아서 모셨다. 나찰은 제석천이 변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설산동자라는 이름의 청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이다. 이렇게 부처님은 아침에 도를 듣고 저녁에 죽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얻으면 금방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철저한 구도 정신으로 수행을 하셨다. 지금 이 순간 마음 공부를 하고 있는 그대의 이름은 설산인저.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나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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