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현스님의 동행] 숨 쉬는 데에도 삼천 가지 품위가 들어있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는 수행자의 모습은 공중에 나는 기러기가 흔적을 남기지 않듯이 깔끔하게 살아야 한다. <사진=국립생태원 제공>

눈이 왔을 때 첫 길을 가는 이 발걸음을 어지럽히지 말자

고타마 싯타르타는 세속 생활에서는 참 평화를 얻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왕궁을 떠나 출가를 결행하여 수행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을 향해 가다가 왕사성 앞을 지나게 되었다. 당시 왕사성의 성주는 빔비사라였다. 그는 싯타르타의 의젓한 모습을 보고 반해서 같이 살면 나라의 절반을 나누어 주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싯타르타가 이 제안을 거절하자, 그렇다면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면 잊지 말고 구제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드디어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된 그는 200킬로미터나 걸어가서 다섯 수행자에게 자기처럼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는 법을 설법하였다. 한때는 깨달음을 얻는 정확한 방법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고행을 포기한 듯한 싯다르타의 모습을 보고 타락하였다고 하여 실망하고 떠나간 그들이었지만, 붓다의 자상한 사랑에 힘입어 아라한이 될 수 있었다.

산자야라는 외도를 따르고 있던 사리뿟따가 그들 다섯 중의 한명인 앗사지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저렇게 위의를 갖춘 이는 틀림없이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라 생각하여 물었더니 앗사지는 긍정하며 자기를 이끌어 준 스승이 붓다라고 하였다. 앗사지의 행동거지 하나에서 사람 됨됨이와 그 수행집단의 수준을 판단한 사리뿟따는 곧장 친구인 목갈라나와 수많은 동료들을 이끌고 붓다에게로 가서 엎드렸다.

이렇게 출가 수행자는 자신의 생각 한 점, 말 한 마디, 동작 하나, 표정 하나도 수행의 정도와 깨달음의 과위를 나타내주는 법어라는 것을 깊이 생각하여야 한다. 그래서 출가자가 가장 먼저 읽고 외우며 마음가짐을 가다듬는 거울로 삼는 『초발심자경문』에 “한 마디 말, 한 가지 동작에도 삼천위의(三千威儀)가 서려 있고 팔만세행(八萬細行)이 깃들어 있다.”고 한 것이다.

중국의 영가 현각대사가 설법하고 있던 육조 혜능대사에게 절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 제 소식을 전하는 엉뚱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육조대사가 “삼천위의 팔만세행을 갖추지 않고 경거망동을 하느냐?”고 크게 꾸짖었다. 영가 현각이 한 행동은 자신의 수행을 드러내는 대장부의 행동 양식이지 무모하고 무례한 행동이 아니었음은 그 뒤에 이어진 둘 사이의 법거량에서 증명된다.

하지만 범부들의 어리석은 눈으로 바라볼 때는 뱀인지 용인지 가려 낼 재간이 없으므로 늘 바른 생각에서 우러나오는 바른 말과 바른 행동을 보여야 한다. 숨을 고르게 하고 호랑이가 사냥감을 노리듯이 정확하게 제대로 살펴보고, 소가 움직이듯이 묵직하고 바르게 천천히 움직이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후학의 교육 자료가 되고 모범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서산대사는 “천지에 눈이 덮인 뒤 맨 처음 길을 가는 이는 발걸음을 어지럽히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복잡다기한 21세기의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는 수행자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더 정갈하여, 공중에 나는 기러기가 흔적을 남기지 않듯이 깔끔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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