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현 스님의 동행] 더럽혀진 물은 아까워하지 않는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남몰래 착한 일을 많이 하기로 이름난 제자는 라훌라다. 그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가하기 직전에 낳은 아들이다. 우리말의 ‘애물단지’ 정도의 뜻을 가진 ‘라훌라’가 본명이며, 밀행제일은 그의 별호이다. 석가모니가 애물단지를 뒤로 하고 왕궁을 떠나 출가한 것도 대단한 결심이었지만,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뒤 그 애물단지를 머리 깎여 제자로 만든 것 또한 보통 결심으로는 어려운 것이다.
한편,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왕자로서 부족함과 아쉬움이 없었던 어린 라훌라가 어떻게 밀행제일의 수행자가 되었는지도 되새겨볼 문제이다. 당시에 라훌라는 많은 말썽과 문제를 일으켰는데, 이를 안 부처님이 아들 라훌라를 지도하는 모습이 요즘의 세간사와 비교할 수 있어 흥미롭다.
라훌라는 어려서부터 성품은 착했으나 장난기가 매우 심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높은 사람, 교육자 등의 자식이 잘 되기가 쉽지 않은데 라훌라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출가해 아버지인 부처님 곁에 있으면서 때로는 계신 곳을 달리 일러주거나, 부르지도 않은 제자를 찾았다고 하여 골탕 먹이는 등 행패가 심했다.
하지만 그가 부처님의 친아들이었기 때문에 선배 승려들이나 손님들은 나무라지도 못했다. 속으로 또는 뒤에서 비판의 소리를 전할 뿐이었는데 부처님도 드디어 알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라훌라에게 한 대야의 물을 떠오게 한 뒤 발을 씻고 나서 그 물을 마시라고 했다. 마실 수 없다는 라훌라에게 부처님께서는 “수행하는 데 힘쓰지 않고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더럽혀진 물과 같다.”고 꾸짖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더러운 물을 쏟아버린 대야에 음식을 담아 먹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시고는, 거짓말을 하여 속이는 것은 마음의 양식과 도를 담을 수 없는 더러운 그릇이라며 대야를 던져 깨버렸다. 대야가 깨져도 아까워하지 않는 라훌라에게 부처님께서는 “그처럼 보잘 것 없는 삶을 살 것인지, 쓸모 있는 삶을 살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엄하게 이르셨다.
드디어 라훌라는 잘못을 깨닫고 일생동안 착한 일을 많이, 그것도 남이 알세라 아무도 모르게 선행을 한 훌륭한 수행자, 밀행제일이 되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