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문즉설 법현스님의 동행] 자비경이 가르치는 547 지혜

[아시아엔=법현 스님?열린선원 원장] 세상에는 여러 가지 믿음의 전통이 있다. 각 나라의 민족마다 각각의 신앙이 있다. 그 가운데는 거대종교로 자리 잡은 것이 있고 자그마하게 씨족신의 형태로 유지되는 것도 있다.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교처럼 유일신을 믿는 종교도 있다. 불교나 유교, 도교처럼 신을 인정하지 않는 종교도 있다. 힌두교처럼 신을 인정하되 수많은 신들을 받아들이는 종교도 있다. 유일신만을 인정하는 종교는 사람의 할 일을 중심으로 살폈을 때는 믿음의 종교이며 신이 하는 일을 중심으로 살폈을 때는 사랑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은 ‘사랑’이야말로 신만이 가진 위대한 권능이자 덕목이기에 그렇다는 뜻이다.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고 이를 이루어줄 수 있는 존재인 신을 믿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것이 사람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자비경’의 547가지 지혜 불교는 유일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불교 안에 신이라는 존재는 있다. 그러나 우주와 사람 등 존재만물을 창조하였기에 그 분의 뜻대로 주재(主宰)한다고 하는 신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럼 불교에서는 무엇을 강조하는가? 바로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우주와 인생에 관한 앎이다.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SakyaMuni)는 개인의 이름인 고유명사가 아니다. 인도의 부족 가운데 하나인 석가(Sakya)족의 성자(Muni)라는 뜻의 보통명사다. 누구나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은 이를 ‘붓다’(Buddha)라고 한다. ‘눈 뜬 이, 깨달은 이, 안 이’라는 뜻이다. 그의 본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Siddhartha)다. 수행해서 깨달음을 얻어 우주와 인생의 진리를 알았으니 붓다라고 하며, 석가족 출신의 성자가 되었다는 것이 그의 이름에 들어있는 뜻이다. 그 밖에도 그가 지닌 덕성을 뜻하는 여래(如來) 9덕(德) 또는 여래십호(如來十號)라는 별칭이 있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또는 부처님이 되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앞에서 부처는 무엇을 알았다는 것인가? 다시는 다음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번뇌가 남아있는 이가 다음 세상에 태어나게 되어있다. 번뇌가 없으면 다음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 다음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태어나지 않은 것을 열반(涅槃, Nibbana, Nirvana)이라고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어떤 존재를 막론하고 태어나서 늙고 병드는 변화의 과정을 거쳐서 죽게 되어있다. 즉, 괴로운 존재이다. 이런 것들을 존재 즉 생각 있는 이(有情=衆生)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는 다른 존재로 태어나지 않는 것을 최고 목표로 삼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 모두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번뇌가 없는 상태가 된다. 그렇기에 어떤 것에도 묶이지 않은 자유로운 상태이다. 이런 엄청난 것들을 알고, 깨닫게 하는 불교는 슬기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추론이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결론이기도 하다. 그럼 사랑은? 사랑은 불교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사랑은 부처님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사랑은 깨달음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단계에 있었을 때를 보살(菩薩, Bodhisatta)이라고 한다. 깨달음을 향해 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부처님이 보살이었을 때의 일들을 수록한 경전이 <본생경>(本生經, Jataka Sutta)이다. 이 경전에는 보살로서 부처가 되기 위해 노력한 일들이 547가지 수록되어 있다. 놀라운 것은 547가지 거의 모두가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남에게 베푸는 것, 말하자면 다른 존재를 사랑하는 이야기다. 부처님이 되는 슬기로운 삶의 중요한 토대이다. 부처가 되는 거의 모든 것에 해당하는 것이 사랑이다. 깨달은 이가 되어 모든 것을 알고 슬기로운 삶을 사는 이가 부처님이다. 그 슬기로움은 반드시 사랑을 실천해야 얻을 수 있다. 부처님이 강조하는 사랑의 실천에 관한 가르침이 아주 많지만 제목도 사랑(자비)인 경전이 있다. 짧지만 그 내용은 아주 알차고 훌륭하다.

‘자비경’ (Karaniyametta Sutta) “고요한 닙바나를 얻으려는 이들은 계(戒), 정(定), 혜(慧)를 잘 닦아, 바르고, 정직하고, 고요하고, 부드러워 교만한 마음이 없어야 한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분주하지 않으며, 생활은 검소하게 감관(感官)은 고요하게, 신중한 태도와 겸손함을 갖되 가까운 이들에게도 집착하지 않는다. 현명한 이들에게 비난을 받을 작은 허물도 저지르지 않으니. 이 세상 모든 중생 평화롭게 행복하길! 살아있는 생명은 누구나 약하거나 강하거나, 작거나 크거나 길거나 짧거나, 중간이든 키가 크든,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태어났거나 태어나려 하는 모든 중생 평화롭고 행복하길!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거나 속이거나 멸시하지 않아야 하며, 미워하는 마음에 몸으로 입으로 고통 주지 말아야 한다. 어머니가 외아들을 제 목숨보다 소중히 지키듯 지극한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온누리 위 아래 옆으로 끝없이 모두를 감싸는 마음으로 자애를 펼쳐야 한다, 원한도 적의도 넘어선 자애를! 서거나 걷거나 앉거나 눕거나 늘 깨어 언제 어디서나 자애마음 닦아가는 생활이 ‘고귀한 삶’이라 설하셨네. 계행과 지혜를 지닌 수행자는 잘못된 견해에 매이지 않으며 감각적 욕망을 다스려 다시는 태(胎)에 들어 윤회하지 않으리.” 슬기(智慧)롭고자 하거든 사랑(慈悲)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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