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스님 “여기 오늘 당신들 만나러 내가 80년을 살아온 거야”

가을이 깊어가는 11월1일, 조금은 쌀쌀한 날씨였던 만해마을에서 오현스님과 중동언론인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랫줄 왼쪽부터 압데라힘 엘알람 모로코작가연합회장, 나즈와 자하르 시리아 작가, 오현스님, 메틴 핀딕씨 터키 시인, 뒷줄 왼쪽부터 사이다 조흐비 튀니지 방송국 에디터, 라드와 아시라프 AJA 카이로지부 매니징에디터, 모하메드 알라비 오만 Diwan 장관실 미디어 전문가, 아시라프 달리 쿠웨이트 알아라비매거진 편집장.

다음은 지난 주 한국을 찾은 아시아엔(The AsiaN) 아랍어판 창립멤버인 중동 언론인 7명이 아시아엔 한국 직원들과 함께?11월1일 오전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조오현 큰스님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통역은 이번 일정에 동행한 바이올린 연주자 배제니씨가 했다.

11월1일 조오현 스님(오른쪽)이 압델라힘 엘알람 모로코작가연합회장(가운데), 바이올린 연주자 배제니씨(왼쪽)와 책을 펼쳐 보며 얘기하고 있다.

나즈와(Najwa Zahhar, 시리아 작가, 요르단 거주) : “암환자에게 지금 이순간을 행복하게 사는 법에 대해 얘기하곤 한다. 무슬림으로서 명상도 오래 했고, 한국 사찰에 너무나 오고 싶었다. 오현 스님에게서 좋은 기운을 받아가고 싶다.”

아시라프 달리(Asharaf Dali, 알아라비매거진 편집장, 쿠웨이트) : “이번에 아시아엔이 창간 1년을 맞아 아랍어판을 런칭한다.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오현 스님 : “나는 할 말이 많지 않다. 모른다. 언론의 역할은 여러분들이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다. 많이 아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즈와(Najwa Zahhar) : “그러면 우리를 다 좋아하시겠네요?”

오현 스님 : “‘모르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아시라프 달리(Asharaf Dali) : “더 많이 알수록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같다.”

오현 스님 : “우문현답이다. 모르는 사람? 정답은 어린아이다. 두세살 아이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 나는 나이가 많다. 80년 살면서 너무 말도 많이 하고, 소리도 너무 많이 듣고, 눈으로 너무 많이 보고, 귀로 너무 많이 들었다. 나는 더 일이 없고 죽는 일만 남았다. 암스트롱도 이 나이에 죽었다. 모두 죽는다. 그러니 죽는 일도 사는 일보다 힘들다…. (창밖을 보며) 가을 풍경 좋나?”

오현스님이 곱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며 한국의 자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현 스님은 함께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일일이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모로코작가연합회장인 압데라힘 엘알람(Abderrahim Elallam)이 모로코에서 왔다고 하자, 스님은 “나도 모로코에 가보고 싶다. 잘 사냐, 도둑은 많냐” 등을 물으며, “작가회장이니 좋은 글도 많이 썼나? 이력 한번 보내봐라. 만해상 후보가 될 수 있는지 보게…” 했다.

압델라힘 엘알람 모로코 작가연합회장이 오현스님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있다.

그러니 옆에 있던 아시라프 달리(Asharaf Dali)가 “이집트에서는 나도 인기가 많다. 책도 25권 냈다”며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평소 아시라프 달리는 ‘만해문학상’을 받는 것이 소원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이에 오현 스님은 “책 많이 냈다고 훌륭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오현스님과 아시라프 달리 아시아엔 중동지부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 뒤로 터키에서 온 메틴 핀딕씨 시인이 앉아 있다.

중동 언론인들은 오현스님을 만나기 전 법당에서 향도 피우고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나즈와(Najwa)는 “장님들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말했다. 나즈와는 법당에서 시주도 했다.

오현 스님 : “시주라는 것은 날 위한 게 아니다. 시주를 한 그 자신을 위한 것이다. 인도에는 ‘불가촉천민’이 있다. 그들이 돈 달라고 하잖아. 그러고도 왜 고맙다고 그러지 않냐면, ‘왜 내가 고맙냐, 나 땜에 너가 복을 지었는데’ 한다. 나를 유혹하지 말라고 주는 거다. 선행은 다 너희를 위한 거다.”

스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중국에는 사찰이 많고 유럽은 성당이 많다. 지은 사람들은 다 서민, 천민이다. 돈은 신도들이 내고, 기록은 신부, 스님이 지었다고 한다. 지은 사람들이 잘났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 일 시키고 역사적으로는 자기 이름 남기는게 뭐가 잘난 건가. 세상에서 젤 못난 거 아닌가. 이 만해마을도 다른 사람들이 지은건데 내가 지었다고들 한다.”

사이다 조흐비 튀니지 방송국 에디터가 오현스님의 말씀을 녹음하고 있다.

스님은 옆에 있는 물컵을 손에 들어 보이며 좌중에 물었다.

“이 컵이 크냐, 작냐?”

좌중은 조용한 가운데, ‘크지도 작지도 않은 것 아니냐’는 둥 잠시 소요가 일었다.

오현 스님 : “비유일 뿐이다. 옆에 뭘 놓고 비교하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크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작기도 하다. 비교하고 분별할 뿐이다. 원래 크고 작은 건 없다.”

이때 나즈와(Najwa)가 오현 스님의 곁으로 가 손을 꼭 잡더니 명상음악을 하나 부르겠다고 했다. 아마 무슬림 음악이었던 것 같다.

나즈와 자하르 시리아 작가가 오현스님의 손을 꼭 잡고 명상 음악을 부르고 있다.

오현 스님 : “우리의 오늘 만남은 소중하다. 오늘까지 내가 나이 80이 되도록 안 죽고 살아 있는 것은, 오늘 여기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주정하려고 살아 있었구나 싶다.”

스님은 이슬람교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무슬림이 괜찮은 종교야. 종교는 공존해. 몇해 전 영국을 다녀오면서 싱가포르에서 경유하느라고 시간이 좀 있었는데, 그래서 돌아다녀 보니깐, 점심시간에 긴 줄이 서 있어. 나도 그 뒤에 섰어. 손발 씻고 들어가서 옆 사람과 손잡고 절을 했어. 이 사람들 정직해. 나올 때 신문지에 싼 것을 가져가라고 주더라고. 그래서 보니 치킨 2마리잖아. 싱가포르 거리의 나무 아래 앉아서 치킨을 먹었었지.”

오현 스님과 한 방에 옹기종기 둘러 모여 앉은 중동 언론인들과 아시아엔 멤버들.

시인이기도 한 오현 스님은 중동 언론인들에게 영문으로 번역된 시집에 일일이 서명을 해주며, 상징적인 몇 개의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다. 아시라프 달리(Asharaf Dali)는 스님의 영문 시집을 아랍어로도 번역하겠다고 말했다. 오현스님에 대한 아시라프 달리의 평가는 ‘지혜롭고 재미있는(wise and fun)’ 분이었다. 처음에는 한 방에 넓게 퍼져 앉아 있던 사람들은 헤어질 때쯤 되어?모두 오현스님 가까이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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