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포엠] 1700년만에 이름 얻은 ‘덜된 부처’
중국 난주 병령사 14호 석굴 ‘덜된 부처’
덜된 부처
실크로드 길목 난주 병령사14호 석굴입니다
눈도 코도 입도 귀도 없는 겨우 형체만 갖춘
만들다만 덜된 불상이 있습니다
다된 부처는 더 될 게 없지만
덜된 부처는 덜돼서 될 게 더 많아 보였습니다
그 앞에 서니 나도 덩달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시작 노트
지난 6월말부터 7월초 시인과 소설가 10여명이 실크로드 여행을 했다. 실크로드는 동서양이 비단과 종교를 매개로 교류하던 문명의 통로였다. 하지만 풀 한포기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사막의 길을 목숨 걸고 오갔던 대상들이 겪었을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사막 곳곳에 석굴을 파고 불상을 조성하며 먼 여행의 무사안녕을 빌었다.
우리는 그들이 걸었던 길을 걸으며 그들이 조성한 천수의 맥적산 석굴, 난주의 병령사 석굴, 돈황의 막고굴, 트루판의 베제크리크 석굴을 순례했다. 이 시는 병령사 석굴에 들렀을 때 만난 석불에 관한 느낌이다. 무슨 사연 때문인지 조성하다 만 이 불상은 다 된 부처보다 훨씬 더 많은 시적 상상력을 주었다. 인생이란 어쩌면 이 불상처럼 완성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걸어가는 도정일지도 모른다는 작은 깨달음이었다.
참고로 병령사(炳靈寺) 석굴은 420년 서진 시대부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돈황 석굴’보다 약 120년 앞서는 셈이다. 420년대는 흉노·갈·강·저·선비 등 다섯 북방민족이 한족(漢族)의 콧대를 꺾고 양자강 이북에 연이어 나라를 건설하던 ‘5호16국’시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시대의 북방민족들은 문화적 자주성을 잃고 한족으로부터 갖가지 압박을 받았고, 노예나 농노 등으로 전락하는 일도 흔했다. 이에 북방민족들은 크고 작은 저항을 거듭했다. ‘덜된 부처’는 바로 이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병령사 석굴에서 만들어지다 말았는지도 모르겠다. (글 사진 홍사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