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실크로드’, 그 중심에 미디어가 있다
‘문화교류와 미디어’ 아시아 언론인 좌담…마음 열고 소통하자
아시아 각국 언론인이 문화교류와 미디어의 역할을 논의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아시아기자협회(AJA) 주관으로 9월5일 광주 라마다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아시아문화언론인포럼’이 그것이다. AJA 회원 참석자들은 공식 포럼과 별도로 열린 좌담회에서 새로운 미디어환경과 문화소통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언론인들은 각국의 경험과 사례를 중심으로 아시아문화의 동질성, 문화허브, 미디어 현황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토론 내용을 참석자별로 정리했다.
아이반 림(Ivan Lim·싱가포르·AJA 회장)
“아시아 언론은 민족주의, 종교갈등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보이곤 한다. 유명인 소식만 따라다니는 경향도 짙다. 아시아 문화 공유와 전파를 위해 전문성을 갖추고 집중력 있게 파고드는 언론이 필요하다. 문화와 문명은 삶을 결정하는 요인이며, 세대를 거쳐 내려오는 가치와 규범, 사고방식 등을 총괄한다. 아시아 문화는 유교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는 생활방식이 그 뿌리다. 요즘은 IT기술이 문화전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 가수 싸이는 유튜브를 통해 세계적 스타가 됐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문화가 증폭된 대표적 사례다. 이런 현상은 지나친 센세이션, 인터넷매체 소외계층 등 부작용도 많이 낳고 있다. 여기에 언론의 역할이 있다. 언론이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면서 문제점을 분석?비평해야 한다.”
에디 수프랍토(Eddy Suprapto·인도네시아·RCTI TV 부국장)
“IT기술에 기반한 디지털 미디어가 문화 소통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음은 사실이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은 인쇄매체와 TV, 라디오, 인터넷매체 사이의 벽을 허물고 있다. 인터넷이 모든 인간활동의 중심이 되면서 텍스트와 이미지, 오디오와 비디오가 융합된 멀티 플랫폼 저널리즘이 등장했다. 그러나 가장 널리 보급된 보편적 미디어는 여전히 방송이다. TV가 문화 세계화의 주요동력임은 잘 알려져 있다. TV는 문화전파에 긍정적 기여를 해온 반면 많은 나라에서 지배계층과 산업 엘리트의 대변자 노릇만 한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TV 운영재원을 정부와 대기업에 의존하는 데서 오는 한계다.”
아시라프 달리(Ashraf Aboul?Yazid·쿠웨이트·알 아라비 매거진, 아시아엔 아랍어판 편집장)
“21세기 아시아는 더 밝은 미래를 위해 전쟁과 자연재해로부터 받는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짜 평화가 무엇인지, 문명과 원칙을 존중하는 문화가 무엇인지 보여줄 때가 왔다. 변함없는 지혜, 그리고 다양한 문화를 드러내야 한다. 그런 역할을 아시아문화전당이 할 수 있다.
세상의 변화를 문화로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문화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고 아시아는 그 길을 여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 한국이 앞장서 새로운 아시아문화지도를 만들면 좋겠다. 아시아 문화유적과 유명한 문화관광 정보를 담는 것이다. 사업가들 역시 그런 지도가 유용할 것이다. 나는 고은 시인과 오현 스님의 시를 아랍어로 번역한 바 있다. 아시아문화전당은 더 많은 번역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각국 문화를 평화롭게 향유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ICT가 몰고온 문화소통 환경 변화
소팔 차이(Sophal Chhay·캄보디아·캄보디아 뉴스 편집장)
“미디어와 언론인들은 자국의 문화가치를 확인하고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같은 소셜 미디어가 붐을 이루면서 정보유통과 문화전파는 그야말로 실시간 상황이 됐다. 정보통신기술(ICT)은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을 급속히 변화시키고 있다. ICT는 아시아 각국이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면서 다른 나라와 문화를 공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첨단 ICT를 통해 문화현상을 빠르게 전달해 전통 생활방식과 풍속에 관한 관심을 유도할 수 있다. 미디어는 평화, 공존을 강조함으로써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려는 아시아 공동체의 노력에 기여할 수 있다.”
부주이흥(Vu Duy Hung·베트남·베트남통신텔레비전센터 부국장)
“미디어는 아시아 커뮤니티 간 문화 공유와 이해를 증진시킨다.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문화 간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문화교류는 이점이 많은 반면 그 과정에서 충돌과 불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럴 때 미디어 소통을 통해 화합을 이룰 수 있다. 미디어는 홍콩, 광주와 같은 문화허브에서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막인팅(Mak Yin-ting·홍콩·라디오프랑스인터내셔널 홍콩특파원)
“문화교류에서 미디어의 ‘역할’이란 말은 부적절하다. 정치권력의 지시를 전제로 한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문화교류는 다양하고 자발적이야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홍콩은 아시아에서 가장 자유롭고, 다채로우며, 활발한 문화환경을 갖고 있다. 정부의 역할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또 한가지, ‘아시아 문화’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사실 아시아 문화란 없다. 그렇게 부를 만한 동질성이 없다는 뜻이다. 아시아는 50여개 나라에 지구상 인구의 60%가 사는 육지의 30%, 바다의 8.7%일 뿐이다. 그 방대한 지역의 문화와 종교, 정치체제, 경제, 역사적 배경 등이 판이함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문화관련 기관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도 언론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정부가 할 일이다. 중국 속담에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이 있다. 한국이 문화 허브가 되고자 한다면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고 내보이는 데 리버럴한 접근방식을 터득해야 한다. 다른 문화를 수용할 수 있어야만 문화의 용광로가 될 수 있다. 미국의 텍사스주립 아시아문화박물관과 싱가포르 국립박물관이 그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라훌 아이자즈(Rahul Aijaz·파키스탄·사진기자)
“아시아 문화는 서로 상이해 보이지만 그 뿌리에 동질성이 있고 오랜 교류의 역사를 갖고 있다. 미디어는 그런 점을 발굴함으로써 각 문화 사이의 다리가 될 수 있다. 또한 서로 다른 문화권 사람들을 연결시킴으로써 긴장을 완화하고 갈등을 봉합할 수 있다. 다른 문화를 존중하고 수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세계를 향해 열린 생각의 첫걸음이다. 닫힌 틀에서 벗어나 역사를 바라보고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 대화하라. 그것이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다.”
로잘린 가가네라(Rosalin Garganera·필리핀·온타겟미디어콘셉트 기자)
“미디어는 수용자에게 힘을 실어줄 능력과 책임이 있다. 그런 능력은 오늘날 통신기술이 수용자와 언론을 직접 소통할 수 있게 한 데서 온다. 수용자들은 트위터 등 소셜 플랫폼을 통해 피드백을 보내고 언론인을 곧바로 수용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수용자들이 언론인들에게 높은 수준의 정직성과 신뢰를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언론은 그에 부응하는 진실보도 책임이 있다. 상대성이 높은 문화교류 분야에서는 더욱 정확한 이해와 편향되지 않은 공정성이 요구된다. 아시아문화의 뿌리는 인간을 중시하고 조화를 이루려는 태도에 있다고 본다.”
쿠반 타발디예프(Kuban Taabaldiev·키르기스스탄·국영통신사 KABAR 디렉터)
“중앙아시아는 지정학적으로 실크로드를 통한 무역과 문화교류 통로가 돼왔다. 지금은 인터넷과 언론매체의 힘을 빌어 이런 통로가 크게 넓어졌다. 중앙아시아의 정보통신 환경은 정부의 통제 등으로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이 있다. 정보통신기술 발전은 전 세계를 좀 더 가깝게 묶어주고 있다. 이제 온라인 실크로드가 아시아 문화를 하나의 공간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그 중심에 언론이 있다.”
샤피쿨 바샤(Shafiqul Bashar·방글라데시·국영통신사 BSS 뉴스 컨설턴트, AJA 방글라데시지부장)
“아시아문화 소통에서 미디어가 맡아야 할 역할 몇 가지를 제안해본다. 우선 아시아 각국의 전통문화에 관한 미디어 핸드북을 만들어 언론인들부터 활용하면 좋을 듯하다. 또 언론이 문화 활동가들의 움직임을 좀더 적극적으로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 문화를 소개하는 공간을 넓히고 각국의 문학작품을 번역·소개하는 신디케이션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각국 문화를 담은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각 나라 말로 자막을 넣어 제작해 널리 보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워크숍과 세미나 등을 통한 인적 교류와 정보 소통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기자협회가 할 일이 많다.”
아시아문화 동질성 있나
라드와 아시라프(Radwa Ashraf·이집트·아시아엔 아랍어판 매니징에디터)
“아시아에서 공유할 수 있는 문화는 많다. 예컨대 ‘한류’ 대중문화가 그렇고, 아시아 각지의 수많은 전설과 민담이 그렇다. 민속 속에서 아시아의 저류를 관통하는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도 아시아에는 유럽연합과 같은 국가 간 공동체가 결성돼 있지 않아 소통이 부족하다. 각국 정부와 문화 관련기관, 언론이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우사메 준불(Usame Zunbul·터키·TRT 서울주재원)
“문화와 그 파생상품은 창의성과 독창성이 중요하다. 지금 한류문화가 많은 아시아 나라에 진출해 있지만, 창의성 결여라는 비판과 후속 콘텐츠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이 문화 허브를 조성한다면 이런 부족한 점을 메워갈 수 있는 생산기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적개발원조(ODA) 규모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무분별한 ODA는 제2, 제3의 찌아찌아족 한글보급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화사업은 보이지 않는 파급력과 수익을 가져오는 초장기 기획이다. 한국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계산할 수 있고, 도표화 할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 문화 위에 문화가 있을 수 없으며, 우위를 따질 수 없다. 하지만 문화의 다양성이 존재하고, 풍부한 곳은 끊임 없이 문화가 모이며 용솟음친다. 한국이 계획하는 문화 허브도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