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의 대만 이야기] 유엔 축출 53년, 다시 가입할 수 있을까?

“현재 대만의 국제적 위치를 살펴볼 때 유엔 가입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결국은 2758호 결의안에 대한 유권해석 여부가 관건이다. 하지만 중국의 영향력이 갈수록 거세지는 상황에서 대만의 노력이 추진력을 얻기가 그다지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대만이 악조건을 물리치고 유엔에 가입할 수 있을지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려 있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라이칭더 총통 

[아시아엔=허영섭 언론인] 유엔 재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대만 정부가 올해도 유엔총회 회기를 맞아 국제사회에 유엔결의안 2758호의 유권해석 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1971년 유엔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던 중화민국(대만)을 전격 축출하고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을 회원국으로 인정하면서 채택한 결의안이다. 올해는 특히 대만 독립론자인 라이칭더(賴淸德) 총통이 취임하고 첫 번째 맞는 유엔총회라는 점에서 대만 정부의 외교적 접근 노력은 더욱 적극적이다. 국제무대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앞세운 중국의 고립작전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대만으로서는 절박한 현안일 수밖에 없다.

대만 정부가 문제의 2758호 결의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이 결의안이 중국을 “중화 유일의 합법적 대표(the only lawful representative of China)”라고 인정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명시적으로 대만을 축출한다는 표현은 없기 때문이다. 결국 결의안에 대한 왜곡 해석으로 인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초래됐다는 게 대만의 입장이다. 유엔에서 축출된 지 50여년이 지났지만 이 결의안 왜곡이 시정됨으로써 다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대만은 유엔에서 쫓겨나면서 대부분 국제기구에서도 중국에 밀려 회원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세계보건총회(WHA)의 경우 정회원이 아니라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해 왔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그나마도 보류된 상태다. 유엔본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유엔은 현재 대만 정부 대표단은 물론 언론사 취재진에 대해서까지 본부청사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여권 확인 절차가 필요한 본부청사 관람에 있어서도 대만 국민들은 철저히 봉쇄되고 있다. 문제의 결의안이 그 근거다.

1971년 대만의 유엔 축출 당시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sfOIEjuXFyU&t=6s

1971년 10월 25일, 찬성 76대 반대 35의 표결(기권 17)로 통과된 이 결의안은 중국의 대표성을 인정하면서 당시 대만 총통이던 장카이섹(장제스, 蔣介石)의 이름을 들어 그의 대표(the representatives of Chiang Kai-shek)를 제명한다고 되어 있다. 대만 정부가 주장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대만이라고 직접 언급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표현도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중국이 이 결의안을 근거로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도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대만 측은 강조한다.

이러한 뜻을 받아들여 유엔총회에 참석한 대만의 수교국들이 대리전에 나섰다. 대만의 재가입을 주장하는 연설을 하거나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회원국들의 호응은 별로 신통치 않은 편이다. 더욱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무력 충돌이 전면전 위기로까지 고조되는 상황에서 대만의 주장을 귀담아 들을 여유가 없는 분위기다.

결의안 통과 소식을 듣고 환호하는 차오관화(喬冠華, 교관화)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장과 황화(黃華, 황화) 부부장

그러나 중국 정부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입장이다. 대만 측 주장에 대해 즉각 반박에 나섰다. 유엔총회에 참석중인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지난 30일 일반토론 연설을 통해 “1971년 총회에서 회원국들이 압도적인 표결로 2758호 결의안을 채택했다”며 “이로써 ‘두 개의 중국’이라든지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이라는 주장은 명백히 근거를 잃었다”고 주장했다. 이 결의안이 대만까지 포함한 전체 중화 민족의 대표성 문제를 해결했으며, 따라서 대만은 분리할 수 없는 중국 영토의 일부라는 논리다.

돌이켜보면 ‘하나의 중국’이라는 슬로건은 원래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마오쩌둥(毛澤東) 세력에 밀려 타이완섬으로 옮겨갔을 때부터 채택한 이념이었다. 당장은 쫓겨났을망정 장차 대륙 본토를 수복해 온전한 나라를 이루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대만이 유엔에서 축출되던 때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당시 중공 세력이 커지면서 유엔에서 대만 축출 움직임이 거세지자 미국 측은 대만에 대해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는 중공에 내주는 대신 일반 회원국 자격은 유지하는 이른바 ‘이중 대표(dual representation)’ 방안을 제안했으나 대만 측은 이 제안이 ‘하나의 중국’ 이념에 반한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의안 통과 직후 단상에 올라와 유엔 탈퇴를 선언한 뒤 떠나는 중화민국 외교부장 저우수카이(周書楷, 주서해)

대만 대표단이 2758호 결의안 채택에 앞서 스스로 유엔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미국 측이 제시한 방안이 표결에까지 오르지는 못했지만 ‘하나의 중국’ 슬로건에 국가적 운명이 엇갈린 지금의 대만 처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러한 흔적은 지금도 대만 헌법에 남아 있다. 대륙 영토가 대만 영토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중화민국 정부가 타이완섬으로 옮겨가기 전인 1947년 제정된 헌법 규정이 고쳐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내려오고 있는 결과다. 지금에 와서 대만이 이 규정을 고치려고 손을 댈 경우 오히려 독립 움직임으로 간주되어 중국 측으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을 소지가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다.

현재 대만의 국제적 위치를 살펴볼 때 유엔 가입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결국은 2758호 결의안에 대한 유권해석 여부가 관건이다. 하지만 중국의 영향력이 갈수록 거세지는 상황에서 대만의 노력이 추진력을 얻기가 그다지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대만이 악조건을 물리치고 유엔에 가입할 수 있을지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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