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독립론’에서 확대되는 양안(兩岸)의 ‘전쟁 게임’
[아시아엔=허영섭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대만의 육·해·공군 병력이 동원되는 군사훈련이 오는 28일부터 11월 1일까지 닷새 동안 펼쳐진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라이칭더(賴淸德) 총통의 쌍십절 기념사를 빌미로 전면적인 대만 포위훈련을 실시한 데 따른 맞대응 훈련이다. 중국 측이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을 대표할 권리가 없다”는 기념사 내용을 트집 잡아 앞으로도 대만이 독립 움직임을 가속화할 경우 무력 침공을 불사하겠다는 경고장을 날린 데 대해 대만 측 또한 철통방어 태세로 맞선다는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육군 기갑여단과 기계화 보병여단, 공군의 F-16V 및 미라주2000-5 전투기 등이 참여하는 이번 훈련에는 야간 전투 시나리오까지 전개될 예정이다. 라이 총통 취임 후 지난 7월 치러진 첫 번째 한광(漢光) 연례 군사훈련 당시 24시간 전투체제를 점검하려다 예상치 못했던 태풍으로 훈련 일정이 중단된 데 따른 후속 훈련인 셈이다. 해군도 중국 전함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 훈련에 돌입한다. 지난 한광 훈련에서 실전 대응력을 강화하되 ‘보여주기’는 지양한다는 차원에서 훈련 모습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은 데서도 라이 정부의 단호한 의지가 엿보인다.
지난 14일 실시된 중국군 동부전구(戰區)의 ‘연합 리젠(利劍)-2024B’ 훈련 자체가 대규모였다. 최소한 항공기 153대, 해군 및 해안경비대 함정 25척이 동원된 데다 그동안의 어느 침공훈련 때보다 타이완섬에 더 가깝게 접근한 것으로 관측됐다. 중국군 제1호 항모인 랴오닝함 전단이 투입됐음은 물론이다. 이번 훈련을 주관한 동부전구는 중국군 동·서·남·북·중부 등 5개 전구의 하나로, 대만과의 무력분쟁 해결을 책임지고 있다. 동부전구 소속 전투기와 함정들은 평소에도 한 달에 서너 차례씩 전투태세를 갖춘 채 대만 주변을 순회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한 대만 측의 대응도 만만치 않은 편이다. 이번 중국군의 훈련 개시 발표에 앞서 미리 전략적 위치에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를 배치하는 등 만반의 태세를 갖췄다는 것이다. 대만 전투기가 랴오닝 항모에서 발진한 중국 J-15 전투기에 초점을 맞추고 조준하는 모습도 대만 국방뉴스 신문에 공개됐다. 양측의 군사훈련이 단순한 훈련 차원을 넘어 순식간에 치열한 실전 양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개연성을 보여준다. 대만해협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이어 또 다른 화약고로 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양안의 군사훈련 기싸움은 최고 지도자의 행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군의 대만 포위훈련 바로 다음날 과거 격전지였던 푸젠성 둥산다오(東山島)를 시찰했고, 또 그보다 이틀 뒤인 17일에는 전략 미사일부대를 방문했다. 훈련시설을 점검하고 장병들을 격려하면서 임전 태세를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의미를 둘 만한 것은 둥산다오 방문이다. 국공내전 당시 공산당과 국민당 군대가 서로 쟁탈하려던 싸움터로서, 지금도 대만 침공을 상정한 대규모 상륙 훈련장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군은 지난달에도 이곳 해안에서 상륙작전 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이에 맞서는 라이 총통의 행보도 거의 비슷하다. 그는 지난 18일 구리슝(顧立雄) 국방부장을 대동한 채 타오위엔 해군 미사일부대와 공군 전투사령부, 해안경비대를 연달아 방문해 중국군의 포위훈련 때 국가의 주권 수호를 위해 헌신적인 대응을 해줬다며 장병들을 격려했다. 특히 공군 사령부에서는 비행중인 전투기 조종사들과 교신하기도 했고, 해군부대에서는 슝펑 미사일을 배경으로 관계자들과 사진촬영에 응하기도 했다는 게 대만 국방부의 발표 내용이다.
이 슝펑 미사일은 대만 자체 기술로 개발된 무기다. 대만군이 자랑하는 순항미사일로, 유사시 이 미사일로 중국의 싼샤댐을 타격한다는 시나리오도 준비된 것으로 알려진다. 대만은 내부 기술로 잠수함을 개발한다는 계획도 추진중이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따져볼 때 대만 군사력이 중국에 비해 턱없이 밑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결국 전력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전면전 수행은 불가능하며 우크라이나처럼 비대칭 전력으로 맞서야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지정학적 여건상 미국이 마지막까지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대만 국민들 사이에 팽배하다.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가로막는 방어선의 최전선 교두보로서 지리적 역할 때문이다. 따라서 대만이 무너질 경우 한국과 일본, 필리핀 등도 덩달아 위험해지기 마련이며 결국 미국의 세계전략에도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게다가 대만 TSMC가 주목을 받게 되면서 이 반도체 회사가 중국에 넘어가는 것을 서방국들이 그대로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공감대까지 형성되고 있다. 최근 독일 함정과 일본 자위대 구축함이 중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대만해협을 통과한 데서도 서방 자유진영 국가들의 대체적인 분위기가 읽혀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만 국민들이 중국에 예속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홍콩에 대해 ‘일국양제(一國兩制)’의 자치권을 약속하고도 엄격한 내정간섭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모습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대만에 대한 전면 공격을 감행할 경우 대만의 저항도 그만큼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대만이 중국을 결코 이길 수는 없다고 해도 그만큼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결국 서방국과의 군사력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한 중국의 무력시위는 ‘워 게임(War game)’ 차원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대만도 그에 상응하는 태세를 강화하게 될 것임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