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의 대만 이야기] 라이칭더 총통의 ‘대만 독립론’에 깔린 몇 가지 질문

대만 독립론자들 사이에서 과거 중화민국 당시의 역사·정치·문화적 유산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나돌고 있는 데 대해서도 좀더 면밀한 접근이 요구된다. 실제로 대만 내부적으로 중화민국 국부로 추앙받는 쑨원(孫文)이나 그 뒤를 물려받은 장제스(蔣介石)의 흔적을 지우려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는다. 한켠에서는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버리고 아예 ‘대만’으로 바꾸자는 의견조차 대두된다. 국민당과 그 지지자들로부터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대만의 완전한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겠지만, 그러면서도 신해혁명 때부터 기산되는 건국기념일을 자랑스럽게 내세운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본문에서) 사진은 2024년 5월 23일 대만 해병대 66여단을 방문한 라이칭더 총통 <사진=EPA/연합뉴스>

[아시아엔=허영섭 언론인] 대만 독립론이 지난 5월 라이칭더(賴淸德) 총통 취임 이래 본격적인 흐름을 타는 분위기다.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다. 과거 국민당 정부의 기조와는 달리 천수이볜·차이잉원 총통 등 민진당 집권 시절을 거치며 대만의 독자성에 기반한 독립론이 강조되어 왔지만 라이 총통 정부에 들어서는 더욱 다각적인 움직임이 펼쳐지고 있다. 특히 올해가 그의 집권 첫해라는 점에서 전임자들에 비해 훨씬 강력한 추진력을 보여준다는 게 대만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난 10일로 113주년을 맞이한 중화민국(대만) 건국기념일 기념식에서도 라이 총통의 메시지는 직선적이었다. 한마디로 “중공(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을 대표할 권리가 없으며, 대만과 중공은 서로 종속된 관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는 총통으로서 자신의 임무를 언급하며 “대만의 생존과 발전을 보장하며, 주권이 침해받거나 합병되지 않도록 책임지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나의 중국’ 논리를 내세워 대만 침략을 노리는 중국에 맞서겠다는 의지의 표명임은 물론이다. 최근 유엔총회 회기를 맞아 대만 정부가 재가입 움직임을 펼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라이 총통은 이보다 며칠 전에는 중국이 지난 1일로 건국 75주년을 맞았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중공은 대만의 조국(祖國)이 될 수 없다”고도 했다. 대만보다 늦게 세워졌는데 어떻게 ‘어머니 나라’가 될 수 있겠느냐는 간단한 셈법의 논리다. 과거 청나라가 1858년 아이훈조약으로 제정 러시아에 넘겨준 시베리아 지역의 옛 영토를 들어 중국 지도부가 그 땅에 대해서는 돌려받을 생각도 안하면서 대만 침공을 획책하고 있다는 얘기도 그가 새로 꺼내든 내용이다. 불평등조약으로 빼앗긴 옛 시베리아 영토를 돌려받기 전에는 대만을 넘볼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주장이다.

라이 총통이 이끌어가고 있는 이런 독립 움직임이 중국으로부터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이지만 대만 내부에서 부딪치는 마찰도 결코 작지는 않다. 무엇보다 야당인 국민당의 역공세가 간단치 않다. 국민당 지도부는 라이 총통의 독립 노선에 반발해 이번 쌍십절(雙十節) 기념식도 별도로 가졌을 정도다. 마잉지우 전임 총통도 공식 행사 참석을 포기한 채 국민당 모임에 참석해 라이 총통의 ‘2국가’ 이론이 양안 관계를 위협한다면서 그를 ‘트러블 메이커’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국민당은 대륙에서부터 정치적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노선이 다르다 치더라도 일반 국민들의 정서에서도 독립론에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달리 말해서, 중국에 친근감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중국을 ‘조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번 중국 국경절을 맞아서도 중국 소셜네트워크인 웨이보에 축하 글을 올리며 ‘조국’이라고 표현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비단 올해만이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던 일이다. 지난 선거에서 민진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함으로써 현재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된 데서도 부분적으로나마 민진당 정부의 독립 노선에 대한 거부감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안팎의 반발이나 마찰을 떠나서도 독립론을 계속 밀고 나가려면 라이 정부가 스스로 주장에 엇갈리는 몇 가지 논리적 결함에 대해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대만 건국이 중국보다 빠르다는 점을 들어 ‘조국’ 관계를 부정한 것이 하나의 사례다. 대만이 올해 건국 113주년이고, 중국이 75주년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얘기라 여겨진다. 하지만 라이 총통이 중국에 과거 아이훈조약으로 인한 영토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는 사실에서 혼란이 야기된다. 그 자체로 지금의 중국 정부가 청나라 때부터의 법통을 이어받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엔에 있어 중국의 가입일이 1945년 10월 24일로 소급 적용되고 있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중국이 1971년 10월 25일 유엔총회 제2758호 결의안에 의해 대만이 축출되면서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이지만 가입 날짜까지 유엔 창립 당시인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대로 물려받고 있는 것이다. 국제법상의 해석에 따라서는 중국의 권리나 지위가 훨씬 더 앞질러 인정받을 개연성이 다분함을 말해준다. 중국이 이미 영국과 포르투갈로부터 홍콩, 마카오를 돌려받았다는 사실에서도 청나라 당시의 국제법상 권리가 중국에 귀속됐음을 확실히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대만 독립론자들 사이에서 과거 중화민국 당시의 역사·정치·문화적 유산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나돌고 있는 데 대해서도 좀더 면밀한 접근이 요구된다. 실제로 대만 내부적으로 중화민국 국부로 추앙받는 쑨원(孫文)이나 그 뒤를 물려받은 장제스(蔣介石)의 흔적을 지우려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는다. 한켠에서는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버리고 아예 ‘대만’으로 바꾸자는 의견조차 대두된다. 국민당과 그 지지자들로부터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대만의 완전한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겠지만, 그러면서도 신해혁명 때부터 기산되는 건국기념일을 자랑스럽게 내세운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대만이 독립 움직임을 표방하면서도 이토록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노출되는 것은 아직 내부 여론이 크게 갈라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추진 과정에서 부딪치는 불가피한 혼란이다. 본격적으로 독립을 추진할 경우 중국의 무력 침공을 무릅써야 할지도 모른다. 대만의 가장 큰 버팀목인 미국도 대만의 독립을 원하기보다 ‘현상 유지’로 대만해협에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라이 정부가 내부적인 한계를 극복하며 어떤 방법으로 독립 성향을 키워갈지 지켜보고자 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