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의 대만이야기] 총통부, 타이난으로 옮겨 가나?
[아시아엔=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위원] 대만 총통 선거가 끝난 이후 지역적 이해관계를 앞세운 갖가지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총통부와 입법원 청사를 남부의 거점도시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두드러진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꽤하기 위해서는 현재 타이베이에 집중된 정치·행정·경제적 기능을 지방으로 분산시켜야 한다는 게 그 요지다. 오는 5월 취임을 앞둔 차이잉원(蔡英文) 당선자의 결단을 촉구하는 은근한 압력이기도 하다.
중앙정부의 기능을 분산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타이난(台南)시가 가장 적극적이다.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행정기관들을 지역별로 골고루 나누어 이전해야 한다는 것이 라이칭더(賴?德) 타이난 시장의 주장이다. 수도 타이베이를 중심으로 정부의 중추 기관들이 대부분 북쪽에 몰려 있으므로 중부 및 남부 지역으로 분산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아니라도 대만에 있어 지역적 불균형은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도시와 농촌, 빈부 격차에 이념적인 성향까지 남북으로 뚜렷이 갈리는 양상을 보여준다. 굳이 따지자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중부 지역의 초우수이(濁水) 강이 그 경계다. 북회귀선(북위 23.5도)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서 기후대까지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인구는 경제 활동을 좇아 계속 북쪽으로 집중되는 추세다.
이러한 지역적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공공기관의 지방분산 작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진작부터 제기되어 왔다. 총통부는 물론 대만 통치구조에서 독특한 골격을 이루는 행정·입법·사법·고시·감찰원 등 5원 청사가 모두 타이베이에 몰려 있어 비상사태의 경우 안보 측면에 있어서도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기구를 분산시킨다고 해도 남단의 가오슝(高雄)까지 고속철도로 연결되어 있어 거리에 따른 소통 문제도 걱정할 것이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 가운데 총통부부터 타이난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라이칭더 시장은 주장한다. 차이 당선자가 선거 공약으로 타이난에 중앙연구원(中央硏究院) 남부지원과 그린에너지 기술센터, 국립중앙도서관 남부 도서관을 설립하겠다고 내세웠지만 그 정도로는 지금의 불균형 현상이 해소될 수 없다는 인식이다. 총통부 외에 노동부, 문화부, 환경보호청도 남부로 이전할 것을 내세운다.
역사적으로 타이난이 정치중심 도시로서의 역할을 떠맡았던 시기가 없지도 않았다. 17세기 초반 네덜란드 군대가 처음 대만에 들어와 남부지방을 통치했던 중심지가 바로 타이난이다. 이후 명나라 부흥운동에 앞장섰던 정청공(鄭成功)도 여기에 근거지를 마련하는 등 청나라 점령기를 거쳐 청일전쟁의 여파로 일본 식민통치의 중심인 대만총독부가 타이베이에 들어서기 전까지 250년 이상 대만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에 비해 입법원 청사는 타이중(台中)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룬다. 린자룽(林佳龍) 시장이 여기에 앞장선 것이 물론이지만 이번에 새로 구성된 입법원 지도부도 이런 주장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쑤자취안(蘇嘉全) 입법원장과 차이치창(蔡其昌) 부원장은 예산지출 감축 차원에서도 입법원 청사의 타이중 이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입법원은 사용료로 타이베이시에 연간 5000만 대만달러(약 18억원)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
임대료 문제를 떠나 청사 자체가 비좁은 게 문제다. 회기 중 동시에 회의가 열릴 경우에는 회의실 확보가 어려울 정도다. 일제 식민지 시절 학교(台北 第二高等女學校)로 사용하던 자리에 입법원이 들어섰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불편함이 기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입법원을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간헐적으로 거론됐으면서도 이미 타이베이 주변에는 땅값아 오를 대로 올라 이전할 만한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흥미로운 것은 국민당 당사도 타이중으로 옮기자는 얘기가 당내에서부터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당이 선거에서 참패한 것이 지방 여론을 무시한 데 있으며, 따라서 지방 여론을 청취한다는 취지에서도 당사의 지방 이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타이중 지역 입법위원으로 행정원 신문국장을 지낸 장치천(江?臣) 등이 이를 주장한다.
천쥐(陳菊) 가오슝 시장도 팔짱만 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오슝이 철강·조선·화학 등 중화학공업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만큼 업무의 효율화를 위해 국영기업 본사를 이전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총통부도 가오슝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으나 협상용 성격이 강하다. 가오슝이 대만의 제2 도시라는 점에서 타이난이나 타이중의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관철시키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앙정부 기관들의 지방 이전이 성사된다면 타이베이를 중심으로 하는 북부 지역은 경제기능 위주로 특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거점도시 사이의 기능 분산은 워싱턴이 정치적 기능을 분담하는 반면 경제적 기능은 뉴욕에 집중돼 있는 미국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오타와와 토론토로 분산된 캐나다, 캔버라와 시드니로 분산된 호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행정기능을 세종시로 이전한 한국의 경우도 비슷한 사례다.
하지만 천쥐, 라이칭더, 린자룽 시장이 모두 민진당 소속으로, 이번 총통선거 승리에 대한 논공행상을 요구하는 듯이 비쳐지는 것이 문제다. 여론이 긍정적일 수가 없다는 얘기다. 중앙행정 기능의 지방분산 필요성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예산상의 문제도 감안해야만 한다. 결국 마지막 결정권은 차이 당선자가 쥐고 있는 셈이다. 국가 백년대계와 관련된 문제가 과연 어떻게 처리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