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의 대만이야기] 중국 주도 AIIB 참여 국호문제가 걸림돌?

[아시아엔=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주간] 대만이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 참여 여부를 놓고 중국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다른 나라들과 똑같은 주권국으로서의 자격으로 참여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현실적인 필요성을 감안할 때 AIIB에 참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면서도 독립국가로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면 굳이 가입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내부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도 ‘하나의 중국’ 개념을 둘러싼 국호가 갈등 요인이다. 대만은 AIIB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국제무대에서 통용되는 ‘차이니스 타이베이(Chinese Taipei)’라는 이름을 사용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중국은 이에 대해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그 대신 ‘타이베이, 차이나(Taipei, China)’라는 명칭을 쓰도록 요구하고 있다. 타이베이가 하나의 국가로서보다는 중화 지역의 한 부분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이름이다.

중국은 이번만이 아니라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대만과 부딪칠 때마다 ‘타이베이, 차이나’라는 이름을 쓰도록 압력을 가해왔다. 현재 아시아개발은행(ADB)에 가입돼 있는 이름이기에 중국측으로서는 이런 주장의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1986년 중국이 ADB에 가입할 당시 대만이 항의의 뜻으로 물러났다가 2년 뒤 복귀하면서 타협책으로 강요된 이름이라는 점에서 대만으로서는 명예스럽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게 문제다. 당시 다른 국제기구에서는 중국 진출로 인해 대만이 연달아 축출되는 상황에서 이렇게 이름만 바꾸는 정도로 ADB 잔류가 허용됐던 것이다.

이에 비해 ‘차이니스 타이베이’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가입되어 있는 이름이다. 대만의 APEC 가입이 허용된 것이 ADB 재가입 이후인 1991년의 일이므로, 이 이름에 대해 더 현재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게 대만의 주장이다. 대만은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행사에 참석할 때도 주로 이 이름을 사용한다. 이번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에도 ‘차이니스 타이베이’라는 국호을 사용하고 있다. 2년 뒤의 하계 유니버시아드를 개최할 때도 이 명칭이 사용되도록 돼있다.

이러한 국호 논쟁은 직접적으로 AIIB의 규약에서도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국은 최근 창립 회원국들 간에 서명된 운영 규약을 통해 “주권국이 아니거나 국제관계 행위에서 책임성이 없는” 신청국에 대해서도 AIIB 참여의 길을 열어 놓았는데, 이것이 앞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있는 대만의 국제적 지위를 격하시키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를테면, 홍콩이나 마카오가 여기에 해당되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이 규정을 통해 중국이 노리는 의도가 무엇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대만 내부에서는 논란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국제적 지위를 떨어뜨려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자신의 관할지역으로 취급하려는 처사”라며 흥분하는 견해가 하면 “우리에게는 적용되는 것이 아니므로 과민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주장이 엇갈린다.

이러한 논란은 내년 1월로 예정된 차기 총통 선거와 맞물려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대만의 주권이 무시되는 상황에서는 AIIB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 있어서는 마잉주(馬英九) 총통의 국민당이나 야당인 민진당이 거의 비슷하지만 민진당이 훨씬 완강한 분위기다. 국민당은 친(親)중국 정책을 표방하는 입장에서 가급적 문제점을 해소하면서라도 AIIB에 가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최근 중국의 전국인민대표회의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된 국가안전법이 기름을 끼얹고 있는 양상이다. 논란이 된 것은 “국가의 주권과 영토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모든 중화민족의 공통된 의무”라는 규정이다. ‘중화민족’의 범주에 홍콩과 마카오는 물론 대만까지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대만을 홍콩이나 마카오와 같은 하나의 자치지역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만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만이 효율적으로 나름대로의 입지를 찾아나갈 여지가 많지 않다는 게 스스로의 고충이다. AIIB 가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자본금 규모가 ADB의 2배 수준인 1000억 달러로, 아시아 지역의 인프라 투자를 위한 활동이 기대된다는 점에서는 가입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당위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는 중국과의 견해 차이를 풀어나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이 AIIB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AIIB가 기존 미국 주도의 국제 금융질서를 개편하려는 중국의 의중에 의해 시작되었기에 AIIB에서 중국의 입김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지분률도 26.06%로 가장 많은 데다 초대 총재도 확보해 놓은 상태다. 중국 재정부 부부장 출신으로 현재 AIIB 임시사무국 국장을 맡고 있는 진리췬(金立群)이 초대 총재로 유력하다.

AIIB에는 현재 57개 창립회원국이 가입되어 있다. 내년 초 정식 활동에 들어가게 되면서 추가로 회원국을 받게 된다. 주요국 중에서는 미국과 캐나다, 일본 등이 빠져 있으나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까지 두루 참여하고 있다. 대만이 비록 창립회원국의 지위는 얻지 못했더라도 앞으로 일반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을지 여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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