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의 대만 이야기] 개헌, 내년 1월 총통선거 맞물려 득실 다툼 ‘치열’

[아시아엔=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대만의 여야 정치권이 본격적인 개헌 논의를 벌이고 있다. 현행 헌법으로는 대내외적으로 변화해가는 시대적 욕구에 부응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이뤄진 결과다. 이러한 개헌 논의는 내년 1월로 예정된 차기 총통선거와 맞물려 치열한 득실 다툼을 예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제에 가까운 현행 통치구조를 의원내각제로 바꾸는 방안이다. 총통 한 사람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됨으로써 국정 운영의 허점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그동안의 경험 때문이다. 여당인 국민당과 야당인 민진당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문제점이다.

그러면서도 이에 대한 여야의 입장은 뚜렷이 엇갈린다. 내년 총통선거에서 집권 가능성이 있느냐의 차이가 그 출발점이다. 민진당은 그동안 의원내각제 개헌을 앞서서 주장해 왔으면서도 요즘은 오히려 기존 대통령제 통치구조의 유지를 바라는 입장이다. 이미 대권 레이스에 후보로 뛰어든 차이잉원(蔡英文) 주석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실제로 지금의 정치 상황은 민진당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조짐이다. 지난해 11월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여세를 몰아 승리의 분위기를 굳혀가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차이잉원 주석의 인기도가 60%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국민당은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의 레임덕 와중에서 아직 후보도 결정하지 못한 채 수세에 몰린 듯한 양상이다. 마 총통으로부터 국민당 주석직을 물려받은 주리룬(朱立倫) 신베이(新北) 시장은 불출마 선언을 해놓은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국민당 내부에서는 의원내각제 도입 방안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민진당의 반대를 의식해 2020년이나 2024년부터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는 조건으로 개헌을 하자는 방안까지 제시되고 있다. 내년 선거에서 어느쪽이 집권하든지 간에 다음 총통까지는 기존 헌법상의 권한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하되 언젠가는 통치구조를 바꿔야 하지 않느냐는 뜻이다.

대만 헌법이 의원내각제로 바뀌게 되면 총통의 행정원장(국무총리) 임명에 대한 입법원(국회)의 인준권이 다시 부활된다. 현행 체제에서는 내각을 통할하는 행정원장 임명에 있어 총통이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개헌 논의에 있어 또 다른 문제는 현행 20세로 되어 있는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추자는 것이다. 젊은 세대의 정치적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는 데다 선거 연령을 인하하는 세계적 추세에 맞춰야 한다는 인식이 작용하고 있다. 이 부분에 있어서도 여야의 입장이 비슷하지만 젊은이들이 대체로 진보적 성향을 나타낸다는 점에서는 민진당이 더욱 적극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국민당이 다수석을 차지한 지금 여건에서 민진당이 의원내각제 협상에 있어 양보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개헌 논의는 진전이 없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민진당은 그동안 대만의 독립을 추구하던 입장에서 ‘중화민국’이라는 국호와 영토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으나 이번 논의에선 이 문제는 일단 제외하고 넘어가기로 잠정 합의된 상태다. 독립이냐, 통일이냐까지 논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무척 촉박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입법·행정·사법원과 동일한 자격으로 ‘5권 분립’ 체제를 이루고 있는 감찰원과 고시원의 운영 문제도 개헌의 도마에 올라 있다. 민진당은 이들 조직을 이번 기회에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인 반면 국민당은 조직을 간소화하는 방법으로 업무의 효율화를 기하자는 입장이다. 세계적으로도 ‘5권 분립’ 체제는 대만에서만 독특하게 시행 중이다.

시민단체들도 개헌 논의에 가세하고 있는데, 소수 정당도 의석을 얻을 수 있도록 규정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돋보인다. 총선에서 전체 득표의 5% 이상을 얻는 정당에 대해서만 비례 의석을 배정하도록 돼있는 현행 규정을 2%로 낮추자는 주장이다. 지난 총선에서 1.8%를 득표했으나 의석도 얻지 못했고 선관위로부터 보조금도 받지 못하고 있는 녹색당을 두둔하는 느낌이다.

대만은 과거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 정부가 발족하고도 제2차 대전이 끝나고서야 헌법 제정 작업에 들어가 1947년 12월부터 헌법이 정식 시행된다. 그때까지도 쑨원(孫文)의 삼민주의를 국가 기본사상으로 채택한 임시헌법이 시행되기는 했으나 그조차도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가 북벌에 성공하고 닌징에 자리 잡았던 1931년 처음 제정된 것이다.

하지만 대만의 헌법은 이렇게 시행되고도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국민당 정부가 마오쩌둥(毛澤東)과의 국공내전에서 패색이 짙어지면서 국정이 비상 체제로 운영됨에 따라 헌정이 불가피하게 중단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중화민국 정부가 대만섬으로 천도하면서 내려진 계엄령이 38년 만인 1987년에 이르러서야 해제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만큼 장징궈(蔣經國) 총통의 타계 이후 급속히 민주화가 추진되면서 개헌도 벌써 여러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리덩후이(李登輝) 총통 시절이던 1991년의 1차 개정에서는 총통의 긴급명령권을 제한하는 한편 전시 체제에 해당하는 동원감란시기임시조관(動員戡亂時期臨時條款)을 폐지시켜 헌정질서를 되찾았다. 1994년의 3차 개정에서는 총통 직선제가 도입됐고, 2005년의 마지막 7차 개정에서는 225명이던 입법위원을 절반인 113명으로 줄였다.

따라서 이번에 개헌이 이뤄지면 8차 개정이 된다. 정치계 안팎에서는 가급적 내년 총통선거에 맞춰 개헌 국민투표도 함께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지만 그때까지 타협안을 만들어내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여야 정당이 개헌 자체에 뜻을 두기보다는 선거 전략으로 개헌을 이슈로 내세운 게 아니냐는 시각도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지닌다.

한편, 대만의 개헌안은 입법위원 4분의 1 발의로, 정원 4분의 3 이상이 참석한 가운데 투표자의 4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되도록 되어 있다. 그러고도 마지막으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데 투표수의 과반으로 최종 결과가 내려진다. 대만의 여야 정당이 개헌 협상을 통해 국민들에게 어떠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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