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의 대만이야기]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 ‘하나의 중국’ 지지···대만에 악재?

[아시아엔=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주간] 최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워싱턴 방문은 결과적으로 미국과 대만 관계의 현주소를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백악관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대만에 대한 지지 방침을 거듭 강조했기 때문이다. “3개의 코뮤니케와 대만관계법에 의거해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한다”는 게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이었다.

이 내용이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사이버해킹 방지 △기후변화 공동대응 △한반도 비핵화 등의 문제에 가려 크게 조명되지는 못했으나 대만의 입장에서는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발표가 나오기까지 두 정상이 회담 테이블에 마주앉아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논의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시 주석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만 문제에 대해 한마디도 거론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서로의 견해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만 추정될 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내용 중에서도 특히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에 주목할 만하다. 1979년 미국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의 관계를 새로 규정하려는 목적에서 만든 법이다. 미국이 대만에 무기판매를 허용하고 대만해협의 유사시에 미군 자동개입을 허용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단교 조치를 취하면서도 대만의 안전보장과 양안관계의 평화적 해결을 실질적으로 담보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처럼 국교가 단절된 상태에서도 미국 국내법으로 대만의 안보를 보장하고 있다는 사실부터가 지극히 예외적이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방위조약이 아닌 국내법으로 외국의 안전보장을 규율한다는 점에서 국제법의 일반상식에도 벗어남은 물론이다. 양국 간의 상호대표부 설치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도 이 대만관계법이다. 미국은 현재 타이베이에 미국대만협회(American Institute in Taiwan)를 설치하고 있으며, 대만은 워싱턴에 타이베이경제문화대표부를 파견하고 있다.

이에 비해 3개의 코뮤니케는 그동안 미국과 중국 정부 사이에 발표된 공식성명으로 대만이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측 주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미국이 양안 문제에 중재자로 끼어들 의사가 없으며, 양안 문제는 외부의 간섭없이 중화인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도 이들 코뮤니케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정식 외교를 맺는 입장에서 상대방의 주장을 배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핑퐁외교가 진행되면서 닉슨 대통령이 1972년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毛澤東)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발표한 ‘상하이 코뮤니케’가 그 첫번째다. 1979년 양국 국교수립에 앞서 ‘베이징 코뮤니케’가 채택됐고, 1982년에는 ‘8.17 코뮤니케’가 발표되었다. 이들 세 차례의 코뮤니케가 중국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반면 대만관계법은 대만의 입장을 두둔하고 있다는 점이 대조를 이룬다.

미국 내부적으로는 대만관계법이 이들 3개의 코뮤니케에 우선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미국이 레이건 대통령 당시 발표된 ‘8.17 코뮤니케’에서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량을 점차 줄여나가기로 약속했으면서도 대만관계법에 따라 무기판매를 계속 추진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이 이들 코뮤니케와 대만관계법을 공식 거론한 것은 대만 관계에서 중국의 일방적인 요구대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대만과 미국은 국방협력을 논의하기 위한 연례 민관 토론회를 개최해 왔는데, 올해도 4일부터 사흘간 일정으로 버지니아 윌리엄스버그에서 토론회가 열린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이러한 공식 언급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대만에서는 물론 미국 정치권에서도 대만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너무 소극적이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제기되던 터였다. 중국을 견제하는 차원에서도 대만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인식이 그 바탕을 이룬다. 특히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한 21세기의 세력판도를 추구하는 상황에서 대만의 지정학적 가치를 새롭게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고 있다.

미 하원 외교위 산하 아시아위원회 위원장 매트 샐먼(Matt Salmon) 의원의 얘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아시아조사연구소(NBR) 컨퍼런스에서 “미국정부가 대만관계법 규정에 충실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며 “앞으로 대만안보와 관련한 이슈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대만협회 대표를 지낸 윌리엄 스탠튼(William Stanton)의 지적은 더욱 신랄하다. 한때 주한 미국대사관 부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던 그는 오바마 정부가 대만을 경시한 점을 들어 미국의 중국 정책을 실패로 규정했다. 최근 타이베이에서 열린 심포지움 주제발표를 통해서다. 중국 정책을 통해 미국의 이익과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확대한 배경에는 경제발전을 통해 중국의 정치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있었으나 그 예측이 틀렸다는 것이다. 중국과의 교역으로 미국이 혜택을 볼 것이라는 가정도 빗나가고 말았다. 결국 대만을 무시하고 잠재력을 과소평가했기에 이런 결과가 초래됐다는 것이 스탠튼의 주장이다. 내년 1월 선거에서 대만의 새 총통이 등장하면 미국과의 관계가 새로이 정립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대만은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 약속을 얻은 반면 바티칸교황청으로부터는 그리 반갑지 않은 소식에 직면했다. 시진핑 주석과 방미 일정이 겹쳤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베이징 방문 의사를 밝히는 등 중국과의 관계개선 의향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대만으로서는 유럽의 마지막 교두보인 교황청과의 관계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대만 내부에서는 프랜시스 교황의 발언을 단순한 외교적 언급으로 간주하려 하고 있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대만의 국제적 위상이 계속 시험받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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