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의 대만 이야기] 차기 총통선거, 차이잉원 vs 홍슈주 친미·친중파의 다툼인가?

<사진=위키피디아>

[아시아엔=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주간] 내년 1월로 예정된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민진당이 일찌감치 차이잉원(蔡英文) 주석을 후보로 확정한 가운데 집권 국민당이 훙슈주(洪秀柱) 입법원 부원장을 내세워 추격전을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여성이라는 점에서 누가 당선되든지 간에 차기 총통은 이미 여성으로 굳어진 셈이다. 대만 역사에서 국가의 최고 정치권력이 처음으로 여성에게 넘겨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훙 부원장이 처음 출사표를 던졌을 때만 해도 그가 총통 후보로 결정되리라고는 누구도 거의 내다보지 못했다.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던 주리룬(朱立倫) 주석이나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 우둔이(吳敦義) 부총통 등에 비해 지명도가 훨씬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민진당 위세에 눌려 망설이는 사이에 그가 혼자 출마선언을 하고는 당내의 지지부진한 분위기를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훙 부원장은 후보 선출의 전제조건인 여론조사 관문도 무난히 통과했다. 국민당이 3개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지지도 조사에서 최소 기준인 30%를 넘어 46.2%의 지지율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왕 입법원장은 그가 여론조사 문턱을 넘지 못할 경우를 염두에 두고 “당에서 나를 필요로 한다면 기꺼이 응할 용의가 있다”고까지 출마 의향을 보였으나 기회는 그에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훙 부원장은 올해 67세로 차이 후보(59세)보다 여덟 살이 위다. 둘 다 미혼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차이잉원이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시절 행정원 부원장 등을 거친 데다 2008년부터는 민진당 주석을 맡는 등 정치경력이 화려한 데 비해 중앙정치 경험이 적은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 특히 차이 후보는 지난 2012년 선거에서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에게 패배했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정권을 되찾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그런 만큼 훙슈주의 앞날이 낙관할 수 있는 처지가 결코 아니다. 더구나 차이잉원의 인기도가 50%를 넘게 치솟는 상황이다. 지난해 11월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민진당은 압승을 거두었다. 마 총통이 맡았던 국민당의 주석 자리가 신베이(新北) 시장인 주리룬에게 넘겨진 것이 그 여파다. 임기 말을 앞둔 마 총통의 지지율은 현재 10% 안팎에 머물고 있다.

국민당이 후보를 선출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차이 후보는 벌써 미국 방문을 통해 후보로서의 존재감을 충분히 과시하고 돌아온 마당이다. 백악관과 국무부 청사까지 방문이 허용되는 등 과거 대만의 어느 정치인들보다 훨씬 격상된 대접을 받았다. 민진당이 양안관계에서 ‘하나의 중국’을 거부하고 대만의 독립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미국 정부가 차이 후보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방법으로 중국에 모종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차이 후보는 공식적으로는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는 대신 ‘현상 유지’를 내세운다. ‘하나의 중국’ 개념과 관련해 가급적 중국 지도부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라 여겨진다. 미국 방문을 통해서는 “대만의 2300만 국민과 헌법의 질서 안에서 양안관계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으나 어법이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선거에서 당선되기까지는 최대한 이런 전략을 구사한다는 방침으로 여겨진다.

훙슈주가 파고드는 공격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자신이 당선될 경우 중국과 평화협상을 추진하겠다며 더욱 강력한 친(親)중국 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대만이 처한 현실 여건에서 양안의 평화와 번영을 기약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한다. “현행 헌법은 대만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양안관계에 대한 차이잉원의 명백한 입장 표명을 촉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두 후보의 선거운동이 친미냐, 친중이냐의 다툼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훙 부원장이 “나는 선거에서 당선되기 전에는 미국을 방문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이 그것이다. 차이 후보가 워싱턴에서 후한 대우를 받았음을 의식한 언급이다. 미국 방문을 “면접시험을 보러 가는 것”이라며 차이 후보의 방미를 은근히 깎아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타임>지가 최근호에서 차이 후보를 아시아판 표지 인물로 등장시킴으로써 새로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타임지는 차이 후보의 정치 경력을 소개하며 “신뢰할 수 있고 유머 감각도 갖춘 정치인”이라고 평가함으로써 국민당 진영의 기세를 꺾어놓았다. 차이 후보의 워싱턴 방문 기간 중 미국 언론들이 보여준 호의적 태도의 연장선이라 할 만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당 지도부가 훙 부원장의 방미 방침을 꺼낸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내달 전당대회를 거쳐 정식 후보로 선출되면 8월이나 9월께 미국을 방문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훙슈주는 이에 대해서도 방미 여부는 자신이 최종적으로 결정하겠다며 감정의 간격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에 기대기보다는 중국 측에 더 지원을 요청하는 듯한 느낌이다.

중국이 대만 국민들에 대한 무비자 정책을 갑자기 발표한 것도 선거 분위기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동안 대만 국민들이 대륙을 방문할 경우 별도의 입국허가를 받아야 했으나 그 절차를 내달부터 생략토록 한 것이다. 국민당 지원을 위해 양안 교류를 더욱 활성화하기로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민진당은 이에 대해 “중국 당국이 대만 국민을 마치 이미 반환받은 홍콩 주민들처럼 다루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훙 부원장에게는 이밖에도 넘어야 한 산이 수두룩하다. 당내에서조차 그의 후보 지명에 대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견해가 적지 않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특히 이번 총통선거 시에 입법위원 선거가 함께 진행되도록 돼있다는 점에서 총통 후보가 경쟁력을 지니지 못한다면 입법원 선거에서도 덩달아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현재 훙 부원장에 대한 지지도도 점차 올라가는 듯한 조짐이다. 그가 후보 지명을 위한 여론조사 조건을 충족했다는 발표가 나온 직후 일부 인기도 조사에서는 차이 후보를 앞서고 있다는 결과까지 발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시적인 현상일 수는 있어도 불리한 전세를 단번에 뒤집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선거일이 다가갈수록 격차는 상당히 좁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의 총통 자리를 향한 여걸(女傑)들의 한판 승부를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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