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의 대만이야기] ‘배신당한 포모사’ 투척사건
[아시아엔=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주간] <배신당한 포모사>(Formosa Betrayed). 최근 대만에서 갑자기 유명세를 타고 있는 책이다. 제2차대전 직후 대만을 무대로 미국 외교관으로 활약했던 조지 커(George H. Kerr)가 지은 책으로, 당시 전쟁이 끝나면서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던 대만이 중화민국 정부로 관할권이 넘겨지는 과정과 2.28사태, 그리고 장제스(蔣介石) 독재시절의 백색테러 등이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다.
제목에서 암시하는 대로 대만이 중화민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상대적으로 주민들의 권익이 침해당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개념을 거부하고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는 독립론자들의 필독서로 간주되는 책이다. 제목의 ‘포모사’란 이름부터가 그러하다. ‘아름대운 섬’이란 뜻의 포르투갈어로, 과거 역사적으로 중국 대륙의 통치를 받기 이전으로 회귀하려는 대만 주민들의 염원을 담고 있는 상징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조지 커의 대만 관련 저서는 <배신당한 포모사> 외에도 여러 권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대만의 독립을 고취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중화민국 정부가 대만으로 쫓겨간 이후 그가 장제스와 마오쩌둥(毛澤東)으로부터 동시에 미움을 받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대만을 근거지로 본토 복귀를 벼르고 있었으며, 마오쩌둥의 인민해방군도 그 나름대로 대만까지 장악하려고 공격을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그동안 널리 알려져 있었으면서도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된 동기는 다소 돌발적이고도 엉뚱하다. 최근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의 친(親)중국 정책에 항의하여 한 대학생이 지니고 있던 책을 던지는 사태가 일어났는데, 그 책이 바로 <배신당한 포모사>다. 마 총통이 타이베이 시내에서 열린 ‘국제프랜차이즈협회’ 모임에 참가했다가 리셉션이 끝나고 빠져나가던 참이었다.
당시 행사장 입구에서 여러 기자들이 마 총통을 인터뷰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 기자들 사이에서 책이 던져진 것이다. 책을 던진 장본인은 국립 순얏센(孫逸仙) 대학 1학년 학생으로, 가오슝 지역의 시민단체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옌밍웨이(?銘緯)였다. 총통실 경호원들이 즉각 달려들어 제지시키는 과정에서도 그는 “대만과 중국은 각각의 독립된 나라다”라고 외쳐댔다.
이처럼 대만의 독립문제가 새로이 제기된 것은 마 총통이 외국 언론과의 면담에서 발언한 내용 때문이었다. 독일 라디오방송인 <도이체 벨레>(Deutsche Welle)는 “마 총통이 동서독이 1990년 통일되기까지의 노력을 칭찬하면서 ‘독일 통일이 양안 통일에 있어서도 하나의 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다’며 관심을 나타냈다”고 보도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앞으로 대만이 중국과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 언급으로, 독립론자들에게는 당연히 거부반응을 살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 보도 자체가 오보였다는 사실이다. 마 총통이 베이징에 주재하는 독일 <DPA통신>과 <알게마이너 자이퉁>, 그리고 프랑스의 <르피가로> 특파원들과 동시 인터뷰를 가졌고, 이 자리에서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을 포함하여 독일 통일 얘기가 나온 것도 사실이지만 문제의 발언까지는 없었던 것으로 최종 확인되고 있다.
마 총통의 실제 발언은 “동서독이 서로 관계를 개선해 나가던 과정에서의 교훈을 배우고 싶다”는 수준이었다. 현재 중국과의 양안관계를 이끌어가면서 야기되는 고충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이었다. <도이체 벨레>가 그 발언을 확대 해석하여 엉뚱하게 보도했던 셈이다. 결국 <도이체 벨레>도 이런 실수를 인정하고 문제의 보도를 정정하기에 이르렀으나, 그 보도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독립론자들의 반발을 가라앉히기는 쉽지 않았다.
더구나 비록 부결로 끝나기는 했어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묻는 스코틀랜드 주민투표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실시되었던 마당에 대만 국민들도 덩달아 한층 고무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대만도 앞으로 중국으로부터 전혀 간섭을 받지 않는 완전한 독립국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퍼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도이체 벨레>의 보도는 들끓는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대만이 스스로 독립국가라고 내세우고 있는데도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울타리에 가둬놓고 대만의 독립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다. 대만은 국제행사에 참석해서도 ‘중화민국’이라는 정식 명칭 대신에 ‘차이니즈 타이베이’라는 이름을 써야 하며, 국기나 국가를 제대로 내세우지도 못하는 처지다.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 역대 최대 규모인 400여명의 선수단을 파견했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대만 국민들은 오히려 중국의 간섭이 확대되는 홍콩의 모습에서 자칫 자신들도 그런 식으로 강제 통합되지 않을까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받으면서 ‘1국가 2체제’를 굳게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이다. 행정장관을 선출하는 2017년의 보통선거를 둘러싸고 홍콩에서 “센트럴을 점령하라”는 슬로건 아래 민주화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것이 그런 배경이다.
<르피가로>가 마 총통의 언급을 인용하여 “대만은 엄연한 독립국이므로 홍콩의 사례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양안은 현재 1992년 합의된 ‘일중각표’(一中各表)의 원칙에 따라 서로 중국을 대표한다는 입장도 덧붙여졌다. 마 총통이 앞서 독일과 프랑스 언론들과의 동시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임은 물론이다.
한편, 순얏센 대학생인 옌밍웨이가 마 총통에게 책을 던진 사건에 대해 대만 언론들은 대체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좋지만 물리적인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부정적인 견해들을 나타내고 있다. 과거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2008년 바그다드를 방문해 기자회견을 하다가 현지 언론인이 던진 신발 세례를 받았으며,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지난 4월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에서 연설하던 도중 여성 참가자로부터 신발 투척을 받은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