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의 대만이야기] ‘홍콩 현재’를 보면 ‘대만 미래’ 보인다

홍콩이 영국 지배에서 벗어나 중국으로 관할권이 되돌려진 것은 1997년의 일이다. 1898년 영국이 홍콩과 그 주변 도서 및 해역을 포함하는 ‘신계(新界) 지역(New Territory)’을 임차했던 99년의 기간이 끝남에 따라 영국의 직할 식민체제가 완전 종식된 것이다. 이로써 청나라 말기 두 차례에 걸친 아편전쟁의 결과 홍콩과 구룡반도가 영국에 할양됨으로써 초래됐던 과거의 유산은 말끔히 청산되었다.

그러나 관할권이 반환된 이래 17년이 지나는 동안 홍콩사회의 정치적 마찰계수는 계속 높아져 왔다. 겉보기에는 거의 그대로이지만 자치(自治) 체제를 바라는 홍콩 주민들 의사에 반해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중국 당국의 방침으로 대립이 심화되어 온 것이다. 관할권이 중국으로 반환될 때부터 제기됐던 우려가 서서히 현실로 표면화되고 있는 셈이다.

홍콩 반환 17주년 기념일이던 지난 7월1일 홍콩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민주화 시위가 벌어진 것도 같은 배경에서다. 시내 중심가인 센트럴과 빅토리아 공원에 집결한 시위대는 “홍콩을 수호하자”고 적힌 깃발과 현수막을 흔들며 대대적인 가두행진을 벌였다.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진 이번 시위에는 무려 51만명이 참가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중국 공산당을 타도하자”는 구호까지 등장했던 것으로 미뤄 중국에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음을 말해준다. 홍콩에서는 지난 2003년에도 홍콩 정부가 기본법 23조를 근거로 국가안전법을 제정하려 하자 관할권 반환 기념일을 맞아 약 50만명의 주민들이 가두시위를 벌인 바 있다.

이러한 갈등과 마찰을 가장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 대만 국민들이다. 중국 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일국양제(一國兩制)’의 울타리가 얼마나 진정성을 지닌 것인지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 국민 대부분이 중국과의 통일보다는 현상 유지를 바라고 있으면서도 중국 지도부가 내세우는 ‘일국양제’의 약속을 과연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홍콩 사례를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에도 대만은 중국과 한 차례 비슷한 내용의 설전을 치렀다.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판리칭(範麗靑)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을 통해 “대만의 미래는 대만 동포뿐만 아니라 모든 중국인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고 밝힌 데 대한 신경전이었다. 이에 대해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은 “대만의 미래는 2300만 중화민국 국민이 헌법에 따라 결정할 사안”이라고 천명했지만 감정의 앙금은 여전하다.

대만으로서는 과도한 내정간섭이라며 중국에 정면으로 맞서고는 있지만 ‘하나의 중국’이라는 대의명분만큼은 거부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른바 ‘일중각표(一中各表)’의 원칙이 그것이다. 양안이 서로 중국을 대표한다는 것이지만, 대외적으로는 어차피 대만이 열세일 수밖에 없다. 홍콩이나 마카오와 마찬가지로 대만이 이미 일국양제의 울타리에 들어 있다는 것이 현재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포함한 중국 지도부의 확고한 인식이다.

더구나 그 무렵 대만사무판공실 장즈쥔(張志軍) 주임이 중국 장관급 인사로는 양안 분단 이후 65년 만에 처음으로 대만 방문을 앞두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이러한 언급은 의도적인 속내를 충분히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장 주임은 이번 방문에서 “중국은 대만인들이 선택한 사회적 시스템을 존중한다”고 말했지만 대만 국민들 가운데 그 말을 그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장즈쥔의 방문 일정이 진행되는 동안 과격시위가 잇따랐던 데서도 ‘하나의 중국’을 현실화하려는 중국 지도부에 대한 대만 국민들의 반발심이 확인된다. 그의 방문을 반대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벌여졌으며, 일행이 탑승한 승용차 대열에 페인트가 뿌려지기도 했다.

그의 대만 방문이 홍콩의 반환 기념일과 비슷한 시기에 맞물려 있었다는 점에서도 대만과 홍콩의 처지에 대한 서로의 연관성을 따지려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 대만의 언론매체들은 홍콩 주민들의 반(反)중국 시위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낸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지지하는 분위기까지 드러냈다. 홍콩의 현재 모습에서 대만 사회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우려하는 목소리였다. 야당인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주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홍콩 친구들의 보편적인 참정권을 지지한다”는 글을 띄우기도 했다.

홍콩은 중국에 반환될 당시 사법제도를 비롯해 금융, 경찰, 관세제도를 2044년까지 50년간 그대로 유지하기로 보장받은 바 있다. 자유무역항으로서, 또는 금융거래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그대로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되었던 것이다. 관할권 반환 이후에도 미래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을 가라앉히려는 의도였다.

따라서 1997년 7월 1일을 기해 영국군이 철수하고 중국 인민해방군 부대가 주둔하게 되었지만 자치권은 그대로 인정되었고, 홍콩 달러가 유일한 법정 통화로 계속 유통되었다. 그러나 당시 베이징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이 “100년의 치욕을 씻었다”라고 연설한 데서도 홍콩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려는 중국 지도부의 속내는 충분히 드러나고 있었다.

이제 홍콩의 행정장관을 뽑는 2017년의 직선제 선거를 앞두고 그 속내가 서서히 표출되고 있다. 직선제로 선거를 치르기는 하되 후보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반중(反中) 성향의 후보를 사전에 걸러낸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발해 홍콩 시민단체들은 객관적 요건만 충족되면 누구라도 제한없이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중국 당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행정장관 선거법 개정과 관련한 비공식 주민투표가 진행됐으며, 여기에 78만명이 참여한 데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알 수 있다.

그러나 홍콩 주민들의 집단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지도부의 기류 변화는 아직 감지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720만 홍콩 주민들을 응원하는 대만의 목소리는 계속 높아질 것이다. 대만 스스로의 미래를 걱정하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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