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A 세미나] 영토분쟁국 언론, 자국 정부 주장 받아쓰기 급급

*다음은 2013년 2월28일 사단법인 아시아기자협회가 주최한 ‘영토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아시아 언론의 역할’ 세미나 발제문입니다.

발제자 : 허영섭(언론인)

댜오위타오(센카쿠 열도)의 분쟁 현황

현재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토분쟁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중국과 일본 사이의 댜오위타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尖閣열도) 분쟁이다. 지난해 9월 일본의 민주당 정부가 동중국해에 위치한 이 열도를 국유화하면서 양국간 분쟁은 더욱 격화되기 시작했다. 5개의 무인도와 3개의 암초로 구성된 열도 가운데 개인 소유로 되어 있는 3개의 섬을 정부가 매입해 국유화하기로 선언했던 것이다.

이러한 결정으로 중국 전역에서 반일 사위가 일어났고, 자동차 등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중국 당국도 댜오위타오 근해에 수시로 감시선을 출동시킨데 이어 항공기까지 진입시켰다. 일본도 이에 대응해 전투기를 발진시킴으로써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영토분쟁이 외교마찰과 교역마찰로, 다시 군사적 충돌 위기로 확대된 것이다.

특히 일본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자민당이 연말 총선에서 3년여 만에 정권을 탈환하면서 의도적으로 극우성향을 강화한 것도 분쟁을 키우는 요인이 되었다. 한국과의 독도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에 중국에서 새로 정권을 물려받은 시진핑(習近平) 총서기의 지도부가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앞세워 맞대응함으로써 정면 대결의 양상으로 치닫게 되었다.

2013년 신년에 들어서는 한때 국지적인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상황까지 이르렀으나 지금은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전군에 전쟁준비 태세 강화를 지시했던 중국은 군사조치 자제 입장을 표명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와 현재 자민당과 연립으로 국정에 참여한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대표가 연달아 베이징을 방문해 해법을 논의하는 분위기다. 해법의 내용보다는 대화가 이뤄진다는 자체가 더 중요하다 할 것이다.

최근 추가로 진전되고 있는 사항이라면 대만의 개입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그 전부터 댜오위타오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해온 대만은 올들어 댜오위타오 섬들에 대한 공시지가를 발표함으로써 자국 영토임을 거듭 선언했다. 고시된 공시지가는 1평방미터에 210 NT(대만달러, 약 7700원)로, 현재 중국과 일본의 양국 구도로 진행되고 있는 영유권 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는 입장 표명으로 분석된다.

대만의 선박이 일본 및 중국 순시선과 동시에 대치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대만 어선 취안자푸(全家福)호가 민간단체 활동가들을 태우고 댜오위타오로 향하자 대만 해양순시선 4척이 자국 어선 보호를 명분으로 따라나섰고, 결국 댜오위타오에서 약 28해리 떨어진 위치에서 취안자푸호가 일본 순시선 8척의 저지를 받았으며, 뒤이어 중국 해양감시선 3척이 나타나면서 긴장감이 고조됐다. 이러한 대치상태는 취안자푸호가 10시간 만에 귀항하면서 풀어졌으나 중국, 일본, 대만의 선박이 이 해역에서 동시에 대치한 것은 처음 벌어진 사태다.

이에 대해 일본측은 중국과 대만이 공동작전으로 나오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지만 대만 정부는 이를 정식 부인하고 있다.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은 대만과 일본 사이의 평화조약(中日和約)을 대륙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한 댜오위타오 문제에서 어떠한 양안협력도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이 앞으로 열릴 예정인 대만과 일본 사이의 어업회담에서 주권문제가 거론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힌 것도 대만의 입장을 단호하게 만들고 있다. 대만은 댜오위타오 해역에 대한 대만의 주권을 전제하되 분쟁은 제쳐둔다는 원칙 하에서 관련 각국이 자원을 공동개발하자는 ‘동중국해 평화안(東海和平倡議)’을 제시해 놓고 있다.

이와 함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월 22일 미국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지난 3년간 일본 민주당 집권기의 다소 소원했던 미일동맹의 복원을 선언한 것도 중국에는 다소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일동맹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전보장에서 중심적인 기초”라며 일본과의 확고한 안보동맹 체제를 강조했다. 동북아 정세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인 북핵 문제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결의한 것이지만 댜오위타오 문제에 있어서도 결속력을 과시한 셈이다.

이에 앞서 미국 의회는 지난 연말 센카쿠가 미일안전보장 조약의 적용 대상임을 명시한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로써 센카쿠가 일본과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만, 더 나아가 미국과의 관계로 복잡하게 얽혀들고 있는 양상이다.

댜오위타오 분쟁의 역사적 배경

댜오위타오는 명나라 때인 15세기 초부터 중국 땅이었으나 일본이 청일전쟁의 와중이던 1895년에 일방적으로 강점했고, 제2차대전 후 미국이 위임통치하던 오키나와 관할에 편입되었다가 1971년 닉슨독트린에 의해 이듬해 관할권이 다시 일본으로 넘겨지는 바람에 일본의 실효지배로 굳어졌다는 게 중국과 대만측의 주장이다. 중국은 댜오위타오가 대만성에 속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대만은 그 중에서도 이란현(宜蘭縣)에 속한다고 내세운다.

반면 일본은 1884년 일본인이 이 군도를 발견했고, 1885년부터 일본 정부가 측량과 조사를 통해 1895년 일본 영토에 편입시켰다는 주장이다. 당시 센카쿠는 무인도였고, 중국 정부가 통제하고 있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내세운다.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일본 정부가 타이완과 펑후제도(澎湖諸島)를 반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열도를 미국이 오키나와 관할에 두었던 것은 원래 타이완(대만성)이 아닌 류큐제도의 부속 도서였기 때문이라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일본에 의해 피해를 입었던 중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으로 양안 분단됨으로써 샌프란시스코 대일 강화조약에서 배제되었던 국제정치적 배경부터가 문제가 없지 않았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이해관계를 건너뛰어 단순한 논리에 입각해 전후 문제가 신속히 처리됨으로써 다시금 영토분쟁이 야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중화민국과 관계를 맺고 있던 미국은 중공의 회의 참가를 반대했고, 영국은 이미 중공을 승인하고 있었으므로 중화민국의 참가를 반대했다. 역시 일본의 침략으로 피해를 입었던 한국도 이 회의에 참가하지 못함으로써 독도 영유권 문제가 빌미의 소지를 남겼고, 따라서 지금까지 그 문제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1972년 중국과 일본은 국교를 정상화하면서도 “우리 세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지혜가 없으니 다음 세대로 넘기자”는 데 서로 동의했던 것이다.

댜오위타오 일대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69년 유엔의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에서 이 부근 해역에 석유와 천연가스가 대규모로 매장되어 있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1996년 일본의 우익단체가 우오쓰리섬(魚釣島)에 등대를 세웠으며, 일본 정부는 현재 이 등대를 지도에 실어 관리하고 있다. 일본의 행정구역상 이 열도는 오키나와 현 이시가키(石垣) 시에 속해 있다.

남중국해에서의 영토분쟁

동아시아의 영토분쟁은 댜오위타오나 독도만이 아니다. 남중국해에서도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 사이의 영토분쟁이 심화되고 있다. 난사(南沙, Spratly), 둥사(東沙, Pratas), 시사(西沙, Paracel), 중사(中沙, Macclesfield Bank) 군도가 모두 해당된다. 중국으로서는 해양자원 확보라는 경제적 측면과 유사시 대양으로 통하는 함대의 출동 경로를 마련하겠다는 군사적 동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1930년대까지 프랑스가 인도지나 반도를 식민지로 거느리며 이 일대를 함께 점령하고 있었으나 태평양 전쟁이 터지면서 일본의 관할로 넘어갔던 복잡한 역사적 배경이 그 근저에 깔려 있다. 그뒤 일본이 전쟁에 패망하게 되면서 인접한 나라들마다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섬으로써 문제가 심화되고 말았다.

난사군도에 있어서는 일본의 패망에 따라 중화민국이 1949년 2척의 구축함을 동원하여 이 군도에서 가장 큰 타이핑타오(太平島)를 점령하고 경계석을 설치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브루나이 등 주변 각국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섬들을 점령하고 수비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시사군도는 바다에 떠있는 수많은 산호초의 작은 섬들이다. 사람들이 거주하지 못하므로 섬 자체로는 거의 가치가 없지만 광대한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매장된 해양자원이 중시되고 있다. 역시 프랑스령의 일부였으나 프랑스가 떠난 이후 월남의 관리하에 속해 있다가 베트남 전쟁중이던 1974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점령했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황옌타오(黃巖島, Scarborough Island)에 대해서도 필리핀과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다.

중국과 대만, 동남아 언론들의 보도 추세

중국과 대만의 언론들은 댜오위타오 문제에 대해 대체로 정부의 입장과 주장에 입각해 보도하고 있다. 상대방인 일본 언론들이 일본 정부의 입장을 거의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토 문제가 국가의 주권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정부 입장과 다른 방향의 논조나 내용은 예상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언론매체들 스스로 국가이익 대변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경우 역사적으로 만주사변과 난징대학살 등 일본 침략에 의한 피해자라는 점에서 일본에 대한 민족적 감정이 언론을 통한 여론으로 그대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그 대표적인 표적이 바로 댜오위타오 문제다. 대만 언론들에 있어서는 댜오위타오가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자신의 영토였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남중국해 영토분쟁을 빚고 있는 동남아 각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보통 ‘남중국해(South China Sea)’라고 부르는 용어도 국가에 따라 ‘동해(East Sea)’, 또는 ’서해(West Philippine Sea)‘라고 부른다는 사실부터가 구별되어야 한다. 난사군도도 베트남권에서는 ’쯔엉사 군도(長沙群島)‘로 불려진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언론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본과의 독도 분쟁에서 정부 입장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정부가 분쟁의 당사자이지만 언론이 그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한편으로는 언론들이 앞장서서 영토분쟁을 확대시키는 측면도 없지는 않다고 보여진다. 언론에도 명백한 국경선이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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