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의 대만이야기] ‘해바라기 학생운동’이 뭐길래
대만-중국 서비스무역협정 놓고 대만 찬반 시위
대만 타이베이 거리에 해바라기 꽃의 행렬이 이어졌다. 더러는 해바라기 꽃 장식의 브로치를 가슴에 착용하기도 했다. 최근 대학생들에 의해 주도된 시위사태의 상징이다. 현지 언론들도 ‘해바라기(太陽花) 학생운동’이라 이름 붙였을 정도다. 지난 3월18일 대학생들이 입법원을 기습 점거한 이래 대만 정국을 뒤흔들었던 대규모 시위사태는 20여일 만에 겨우 수습되었지만 그 파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번 시위사태는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의 국민당 정부가 추진 중인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신감을 반영한다. 지난해 6월 체결된 양안 서비스협정에 대해 국민당이 입법원 상임위 심의과정에서 비준안을 서둘러 통과시키자 본회의 심의를 저지하기 위해 점거 농성이 시작됐던 것이다. 지난 2008년 집권 이래 양안 교류에 역점을 둔 마 총통으로서는 정치적 리더십을 시험받는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서비스무역 협정은 2010년 체결된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의 마지막 과정에 해당되지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같은 무역 블럭에 참여하려는 대만 정부로서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국제무대에서 정치적 활동이 제한받는 처지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는 노력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ECFA가 체결될 때부터 대만 내부의 여론은 치열하게 갈라지는 양상을 나타냈다. 중국과의 특수한 관계 때문이다. 민진당을 비롯하여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는 야권 세력은 양안 경제협력이 궁극적으로 중국과의 통일을 염두에 둔 것이라며 공세를 퍼부었다. 결국 ECFA가 시행되면서 대만이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이익을 누리게 되었어도 그 혜택이 일부 기득권층에 집중된다는 이유로 성토 대상에서 비켜나지 못했다.
이번 시위에 가담했던 대학생들의 우려와 주장도 비슷하다. 서비스협정까지 발효되면 대만 경제의 중국 종속이 더욱 가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현재 입법원에서 처리중인 서비스협정 비준안을 일단 폐기하고 양안협정 감독방안에 대한 법제화가 이뤄진 다음에 다시 추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시위대는 이러한 문제를 전반적으로 논의할 국민헌정회의 개최 방안도 정부측에 제안했던 상태다.
국민당 고위인사도 협정 반발 움직임
학생들이 입법원 점거농성에 들어간 이후 시위대에 대한 각계각층의 지지성명도 잇따랐다. 교수들과 문화예술인, 도시 근로자들을 중심으로 성원이 끊이지 않았다. 농성 학생들이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도시락 배달 주문으로 지지를 표시하기도 했다. 농민들은 지지의 뜻으로 시위대에 해바라기 꽃을 실어 날랐다.
이러한 와중에서 지난 3월30일 총통부 청사 앞 카이다거란(凱達格蘭) 대로의 광장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는 시민들까지 대거 합세함으로써 밑바닥 민심의 기류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도심 일대에 몰려든 시위대(주최측 추산 50만 명, 경찰측 추산 12만 명)는 마 총통과 장이화(江宜樺) 행정원장의 퇴진까지 촉구하며 서비스협정의 철회를 압박했다.
당시 시위에는 민진당의 쑤전창(蘇貞昌) 주석을 비롯하여 차이잉원(蔡英文), 셰창팅(謝長廷) 전 주석 등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 후보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민진당은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 시위사태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었지만 국민당이 지탄의 표적이 되는 만큼 정치적으로 십분 활용한다는 입장이었다. 오는 11월로 예정된 지방선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앞서 시위대는 한때 행정원 청사까지 점거하려는 시도를 보이기도 했다. 경찰력의 투입으로 시위대의 점거 기도가 무위로 돌아갔으나 이 과정에서 경찰이 과도한 물리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국가폭력’ 문제가 또 다른 쟁점으로 떠올랐다.
입법원 점거사태에 대해서도 공권력을 동원해 즉각 해산할 수는 있었으나 결정의 열쇠를 쥔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의 미온적인 태도가 걸림돌이었다. 왕 입법원장은 사태 해결방안을 논의하자는 뜻에서 마 총통이 소집한 대책회의에도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여기에는 지난해 당적박탈 논란으로 불거졌던 두 사람 사이의 껄끄러운 앙금이 작용했다는 것이 현지 언론들의 분석이다.
‘들백합운동’ 이어 24년 만에 학생 ‘봉기’
왕 입법원장은 더 나아가 양안협정 감독방안이 마련되기 전에는 서비스협정 비준안에 대한 입법원 심의절차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일방적으로 천명함으로써 자신이 소속된 국민당에 등을 돌렸던 마당이다. 일단은 시위대가 요구하는 방안을 수용한다는 뜻이었다. 결국 학생들이 이러한 약속을 받아들여 입법원 점거농성을 풀기는 했지만 정치권 내부에 새로운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학생들의 요구사항과 관련해 마 총통도 양안협력 감독장치의 법제화에는 동의한다고 밝히고 있으면서 이미 체결된 서비스협정을 철회하라는 요구까지는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다. 서비스협정은 시행되고 나서 문제점이 드러난다면 1년 이후에 양안 당국이 다시 논의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으므로 나름대로는 자체적인 보완장치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번 시위가 각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체로는 학생들의 순수성을 인정하면서도 물리적인 점거농성 방법에 있어서는 아쉬움을 드러내는 분위기다. 시위대에 맞서 서비스무역에 찬성하는 맞불 집회가 벌어졌으며, 경제단체들도 서비스협정의 신속한 처리를 정부에 주문하고 있다. 입법원의 강제 점거로 다른 민생법안 처리가 늦춰졌던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제시된다.
한편 이번 사태는 리덩후이(李登輝) 총통 시절의 1990년 3월 ‘들백합(野百合) 학생운동’과도 비교가 된다.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밀려난 직후 발효됐던 계엄령이 38년 만에 해제된 1987년 이후 최초로 일어난 학생운동이 들백합 운동이다. 당시 학생들은 중정기념당 광장에서 연좌 농성하며 정부에 국민대회 해산, 임시조례 철폐 등을 포함한 민주화 일정 제시를 요구함으로써 끝내 관철시킨 바 있다.
그러나 지금은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경험했을 정도로 민주화가 충분히 진전된 상황에서 국민들의 대표인 입법위원들이 처리할 문제에 학생들이 직접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해바라기 꽃을 앞세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던 이번 사태가 앞으로 대만의 정치사 및 학생운동사에서 과연 어떠한 평가를 받을지 주목된다.
안녕하세요 기자님
저는 고대신문 박승아 기자라고 합니다.
이 기사를 보고 저희 신문사에서 이 주제를 다루어 보고 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대만을 직접 방문해 파업에 대한 대학생들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혹시 답변헤주실 수 있으신가요? 제 전화번호는 01080141111입니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