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의 대만이야기] 분위기 무르익은 중국-타이완 정상회담

중국과 타이완(대만) 간 정상회담 논의가 한창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타이완 총통이 얼굴을 맞대고 악수를 나눈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분위기가 성숙됐다는 뜻이다. 만약 올해 안에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양안이 서로 포격을 주고받으며 갈라진 지 65년 만에 중화(中華)민족사에 새로운 정치적 통합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왕위치(王郁琦) 타이완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이 지난 2월 중국 난징을 방문해 장즈쥔(張志軍) 중국 국무원 타이완사무판공실 주임과 가졌던 ‘역사적인’ 회동도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예비회담 성격이 짙다. 두 사람은 각각 양안 정부에서 상호 교류정책을 총괄하는 장관급 책임자라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제는 두 정상이 만나는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절차만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올 10월, 내년 4월 저울질

일단 올 10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나 내년 4월 하이난 보아오포럼이 그 기회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두 지도자가 만나더라도 ‘하나의 중국’ 틀을 벗어나서는 곤란하다는 중국의 입장과 회담의 격식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타이완의 입장 차이가 작지 않은 것 같다. ‘시마(習馬) 회담’ 개최 여부가 아직 유동적인 이유다. 정상회담이라는 것이 몇 마디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타이완 내부의 부정적인 기류도 무시할 수 없다. 야당인 민진당은 정상회담 추진 움직임이 중국의 일방적인 통일정책에 따라가는 것이라며 경계하고 있다. 회담이 성사될 경우 오는 11월로 예정된 지방선거에 돌발변수로 작용하지나 않을까 은근히 우려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그동안 줄곧 타이완 독립을 주장해온 민진당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정상회담 논의를 떠나서도 양안의 실질적 교류협력 움직임은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2월 말에는 중국과 타이완 사이에 기상정보협정과 지진관측협정이 새로 체결되었다. 타이베이에서 개최된 타이완 해협교류기금회(海基會)와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海協會) 간 제10차 회의에서였다. 그 동안 양쪽 정부를 대신해 협상창구 역할을 맡았던 것이 바로 민간 차원의 이들 두 기구였다.

이번 협정으로 양안 사이에는 기상이변, 지진 예측과 관련한 긴밀한 정보교환이 이뤄져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게 됐다. 중국과 타이완 모두 홍수나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잦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협력방안이라 하겠다. 특히 대륙에서 불어오는 매연과 미세먼지로 고충을 겪어야 하는 타이완으로서는 이번 협정 체결로 공해 먼지 예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에 체결된 2개 협정은 지난 2008년 마잉주 총통의 국민당이 집권하면서 내세운 친(親)중국 정책에 의해 맺어진 20번째, 21번째 협정이다. 형식적으로 문서에 도장만 찍는 게 아니라 신뢰 바탕 위에서 지속적인 교류협력을 약속하는 협정이란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그동안 발효된 19개 통행·통상 협정 가운데 현실 변화에 뒤떨어진 금융·보건·범죄·농산물 검역 등과 관련한 9개 협정은 새로 개정하기로 약속돼 있다.

통일이 진정 ‘대박’이 되려면

지난해 12월 중국 관광객의 타이완 방문 상한선이 하루 3000명으로 늘어난 데 이어 4월부터 다시 4000명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이 그 결실이다. 지난 한 해 동안 타이완을 찾은 중국 관광객은 290만 명에 이른다. 이런 정도라면 설사 시진핑 주석과 마잉주 총통 회담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양안 교류는 “해결이 쉬운 것부터 시작하여 점차 어려운 문제에 접근한다(先易後難)”는 원칙에 따라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양안 당국이 조만간 논의하기로 돼 있는 주요 안건 중 중국의 항공 승객들이 타이완을 중간 기착지로 삼아 비행기를 바꿔 탈 수 있도록 허용하는 문제도 관심사다. 현재 타이완 여권 소지자들은 중국 공항에서 다른 지역으로 환승이 가능하지만 중국 여권 소지자는 타이완에서 환승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흥미롭게도 타이완이 허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중국 당국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

중국과 타이완은 비자 대신 ‘여행허가서’를 발급하는 방법으로 상대편 국민들의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이 역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서로 별개의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중국인 승객들이 타이완 공항에서 비행기를 옮겨 타는 과정에서 여권을 제시하게 된다면 타이완을 하나의 독립된 나라로 간주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 중국의 우려다.

이런 제약 때문에 해외여행 때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중국 여행객들은 한국이나 일본 공항을 경유해야 하므로 불편이 따랐고, 타이완 공항이나 항공사로서는 상대적으로 적잖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중국 승객의 환승 허용 방안이 거론되면서 타이완 관계당국과 언론매체들이 앞으로 자국 항공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미리 분위기를 띄우는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다. 작은 것 하나부터 문제점을 고쳐나는 사례이기도 하다.

중국-타이완 관계가 모두 본받을 만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미 정상회담을 두 차례나 치르고도 여전히 긴장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북한 사이에 비해 실질적 교류협력이 훨씬 진전되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시진핑 주석과 마잉주 총통의 정상회담 추진 움직임은 그 곁가지일 뿐이다. 남북통일이 진정 ‘대박’이 되려면 분단상태에서 꾸준히 대화의 폭을 넓혀나가는 양안관계를 연구·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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