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의 대만이야기] 타이베이선 머리에 노란 리본을?

반핵 시위대, 완공 눈앞 핵발전소 건설·가동 중단시켜

대만의 반정부 시위가 거의 마무리 완공을 앞두고 있는 제4원전 문제로 다시 옮겨붙었다.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이 이끄는 국민당 정부 정책에 대한 반발이라는 점에서 최근 중국과의 서비스협정 추진에 제동을 걸었던 ‘해바라기(太陽花) 학생운동’의 연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번에도 시위대는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정부로부터 제4원전의 건설 및 가동을 보류키로 한다는 ‘항복선언’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이미 완공된 제1원자로의 경우 안전검사가 끝나는 대로 봉쇄하는 동시에 제2원자로에 대해서는 건설을 중단키로 한다는 것이 대만 정부의 발표 사항이다. 제4원전은 신베이(新北)시 동북부 해안가인 공랴오(貢寮) 지역에 건설되고 있다.

이미 ‘해바라기 학생운동’으로 궁지에 몰린 국민당 정부로선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오는 11월로 예정되어 있는 전국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의 동향을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3월 해바라기 꽃을 앞세워 입법원 청사를 20여일 동안이나 강제 점거했던 대학생 대표들에 대한 법적처벌 방침도 유야무야 상태다.

이번의 원전반대 시위는 린이슝(林義雄) 전 민진당 주석이 촉발시켰다. 반핵 운동가이기도 한 그가 원전건설 중단을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 것을 계기로 시민과 대학생들이 다시 거리로 몰려나왔다. 이번에는 해바라기 꽃 대신 머리에 노란 리본을 단 행렬이었다.

시위대는 총통부 앞의 케타갈란 거리를 비롯한 타이베이 시내 도로 곳곳에서 점거 농성을 벌였으며, 경찰이 살수차를 동원해 이들을 강제 해산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물리적인 충돌이 빚어졌다. 마잉지우 총통이 단식농성중인 린이슝 전 주석과의 면담을 통해 해결방안을 찾으려 했으나 돌파구는 마련되지 못했다. 결론은 후퇴선언이었고, 이에 따라 린이슝도 단식농성을 중단한 상태다.

그러나 이렇게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대만 내부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제4원전이 리덩후이(李登輝) 총통 시절이던 1992년부터 계획이 추진된 이래 복잡한 논의 과정을 거쳐 왔기 때문이다.

일본 대지진 이후 원자력 안전 높은 관심

이미 3300억 대만달러(약 11조3000억원)라는 막대한 건설비가 투입되었기에 지금에 와서 중단하기 어렵다는 사실부터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야당 진영에서 건설을 반대한 것이 사실이지만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집권시에도 한동안 유보 끝에 예산이 다시 배정되고 건설 인력도 오히려 늘어났다. 민진당의 입장이 지금처럼 바뀐 것은 2008년 정권을 넘겨주고서다.

대만 사회에서 반핵운동이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1년 3월 일본의 도후쿠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의 안전문제가 드러나면서부터다. 대만이 환태평양의 활화산 지진대에 놓여 있을 뿐만 아니라 제4원전의 경우 수도인 타이베이에 근접해 있으므로 후쿠시마에서와 같은 원전사고가 일어난다면 대만 전체가 극심한 혼란에 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대만에는 북부 지역의 진샨(金山)과 궈셩(國聖)에, 그리고 남부 지역인 마안산(馬鞍山)에 각각 2기씩 모두 6기의 원전이 가동되는 중이다. 앞으로 제4원전이 추가로 가동되면 원자로는 8기로 늘어나게 된다. 대만의 전력수급에서 원자력 의존률은 18.4%에 이른다.

하지만 앞선 문제점들에 원전폐기물 처리 문제까지 부각되면서 대만의 원전정책이 국민들의 불신감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남쪽으로 떨어진 란위다오(蘭嶼島)에 폐기물이 임시로 처분되고 있으나 이조차도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다. 대만은 그동안 중국과 러시아, 북한, 마샬 아일랜드 등과 폐기물 처리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여 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4원전이 당초 계획대로 운영되지 못할 경우 전력수급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게 대만의 당면 문제다. 새 원전이 2016년부터 가동을 시작하게 되면 설계수명이 임박한 진샨 제1원전은 2018부터 폐쇄될 계획이었다. 궈셩 제2원전도 2022년에는 수명이 끝난다. 이에 따라 제4원전 계획이 중단된다면 2018년부터 제한송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결국 대폭적인 전기료 인상으로 이어져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작지는 않을 것이다. 대만 정부는 장기적으로 태양열이나 풍력 에너지를 개발하여 원자력 수요를 대체해 나간다는 계획을 마련해 놓고는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신재생 에너지 개발계획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정부, 국민투표 염두에 둔 작전상 후퇴 관측

대만 정부가 대외적으로 국제적인 수준의 탄소배출 저감 목표를 이룬다는 전제를 내세워 비핵화를 달성하겠다는 정책을 표방하는 데서도 이러한 고민을 느낄 수 있다. 그린에너지 정책을 추진한다고 하면서도 어디까지나 합리적인 방법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것이니, 바꿔 말해서 당분간은 원전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국민당 정부는 더 나아가 현안으로 떠오른 제4원전의 운명을 국민투표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 대만의 현행 국민투표법 규정에 따르면 총 유권자의 50% 이상 투표에 참가하고, 그 과반이 찬성하면 안건이 통과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이번의 후퇴선언은 국민투표를 염두에 둔 작전상 후퇴라고도 보여진다.

이에 대해서도 민진당과 반핵단체들은 국민투표 방식을 유권자의 25% 찬성으로 통과 여부를 가리자며 맞서고 있다. 투표율 기준을 낮추지 않는다면 국민투표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국민투표 방안이 제시되었으면서도 논의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이 그런 까닭이다. 대만에서는 2006년 현행 국민투표법이 시행된 이래 6번에 걸쳐 국민투표가 시행됐으나 모두 50% 참여율에 미치지 못해 무산되고 말았다.

한편 양안협력정책이나 원전정책 여부를 떠나서도 이처럼 계속되는 시위로 대만에서는 유권자들의 바람직한 의사결집 방법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불거지는 양상이다. 시위가 국민들의 민주적 의사표현의 한 방식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시위 방식의 비민주성이 지적되기도 한다. 법을 무시하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물리적인 시위가 어떻게 민주적인 의사표현이 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지역적 출신 구분에 따라 외성인과 내성인으로 뚜렷이 갈려 있고, 이로 인해 정치·사회적 성향이 대립되는 대만 사회에서 이러한 논쟁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더 진행될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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